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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북한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집중이슈]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3)

남북대결 이전에 남남(南南)갈등 해결이 더 근본이고 요원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철이 아니어서 잦아들긴 했지만 종북(從北)논란(과거엔 ‘친북’親北 논란)은 언제든 남남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불씨로 잠재해 있다. 정권 비판마저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황당한’ 종북논란은 제외하고 제대로 된 종북논란, 그러니까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를 유코리아뉴스가 짚어보기로 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대북 정책의 적절성은 물론 종북논란의 진위 여부를 규명해주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코너는 정해놓은 논조에 원고를 맞추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 다양한 주장의 글을,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논조’의 코너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누구인가?’에 대한 주장, 논문, 서평, 인터뷰 등 모든 종류의 글을 환영한다. 글은 간단한 필자 소개와 함께 ukoreanews@gmail.com으로 보내면 된다. -편집자 주

분단과 함께 만들어진 반공영화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한국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분단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이다. 현실문제이다 보니 그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고 그 이야기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분단영화’라는 독특한 장르의 영화가 시작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곧 이어 분단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많은 분단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영화는 대부분 선전영화로 반공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최초의 분단영화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인 만들어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1949)이다. 이 영화는 해방 이후 좌우가 극한 대립을 이루고 있던 시기에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처남, 매부가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을 보여주며 앞으로 닥칠 전쟁의 비극을 예견하고 있다.

1950~60년대에는 반공을 기반으로 한 분단영화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패전한 빨치산의 이야기를 다룬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1955)은 1950년대 분단영화를 대표한다. 1960년대 수많은 분단영화들이 제작됐지만 그 중 한국전쟁 직후 한 가정의 비극을 그린 유현목의 <오발탄>(1961), 북한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다 문제가 되었던 이만희의 <7인의 여포로>(1965), 군인의 의리와 인간애를 강조한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전쟁 속에서 신과 인간을 주제로 삼은 유현목의 <순교자>(1965), 분단의 비극을 두 남편과 한 여인이라는 멜로적 요소와 결합시킨 김기덕의 <남과 북>(1965)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분단영화이다. 1950~60년에는 전후 복구와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많지 않아 동네 극장들은 큰 호황을 누렸다. 분단영화는 시대적 분위기와 반공영화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시민들의 거의 유일한 문화 수단이었던 영화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 결과물로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갔다. 분단영화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한국 최고의 영화상인 ‘대종상 영화제’엔 지난 1987년까지 반공영화 부분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 영화 포스터. 똘이장군, 태백산맥, 웰컴투 동막골, 간첩 리철진(왼쪽부터)

1970년대에 들어서는 텔레비전 보급이 늘어나는 등 다양한 문화도구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영화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분단영화 역시 60년대처럼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아울러 국산 영화가 봇물처럼 밀려오는 미국 할리우드 액션물을 따라가기가 당시로서는 버거웠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미국영화 수입과 분단영화 사이에는 일종의 인과관계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는 영화법을 개정해 분단영화에 대한 심의를 강화했다. 한편 민족의 주체성 확립과 애국애족의 국민성을 고무·진작시키는 영화를 우수 영화로 선정했다. 그리고 그 혜택으로 외국영화 수입권을 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분단이나 정부시책을 홍보하는 영화를 많이 제작하는 영화사에 외국영화 수입권을 주는 이 제도에 따라, 외화 수입을 위해 작품성보다는 영화를 위한 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중 상당수가 분단과 반공을 소재로 했다. 이때 영화들은 반공을 강조하는 국책에 따라 남북 간 대결의식을 강조하고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며 북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북한과 북한 사람은 증오와 혐오, 공포, 정복의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1970년대 반공영화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아울러 1970년대 후반부터 <로보트 태권V> 같은 어린이 만화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똘이장군>으로 대표되는 반공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기도 했다.

변화의 바람이 불다
1980년대 들어 분단영화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신군부가 등장해 군사정권이 계속되었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일명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물결이 일어나며 영화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의 반공정책 아래 다양한 반공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이산가족 찾기를 소재로 한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같은 새로운 시각으로 분단의 문제를 바라보는 작품들도 등장했다.

한국영화에서 분단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빨치산의 이야기를 다룬 <남부군>이 개봉한 이후부터다.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를 목격했다. 때문에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염원이 가득했다. 문화예술계에서 이러한 염원은 문학 분야에서 먼저 표출되었고 나름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들이 출판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은 문학에서 영화로 이어지는데 이태의 실록 수기 남부군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부군>으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1994>으로 이어진다. 남부군과 태백산맥은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 구분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외침이기도 했다.

분단영화가 일대 변화를 겪게 된 것은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였다. 남북 분단 소재를 첩보액션물로 활용한 이 작품은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오도된 이념과 사상의 ‘꼭두각시’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확신과 대의에 대한 충성심은 관객들에게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이후 북에 대한 묘사는 이념적인 측면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됐다. <간첩 리철진>(1999)은 남파된 간첩이 택시 강도를 당하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허점이 많은 인물을 보여줬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생계형 고정간첩도 등장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여기에 더해 남북한 사람들이 우연히 모여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북한 사람이나 북한 출신 인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던 당시에 총을 든 남북한의 젊은 병사들이 한 곳에 모인다는 설정은 굉장한 파격이었다. 남북의 사람들이 우연히, 기묘하게 한 곳에 모인다는 설정은 이후 분단영화의 한 공식이 되면서 <웰컴 투 동막골>(2005), <만남의 광장>(2007), <의형제>(2009)까지 이어진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를 거쳐 2005년부터는 탈북자들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태풍>(2005)에서는 남북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해적이 된 탈북자가, <국경의 남쪽>(2006)에선 사랑하는 연인을 북에 두고 월남한 청년이, <크로싱>(2008)에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은 남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발표에 이은 <쉬리>의 흥행이나 1차 남북 정상회담 전후 <공동경비구역JSA>가 일으켰던 붐 등 분단 소재의 영화는 남북한 간 정세 변화나 시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북한 핵문제, 식량부족, 탈북자 문제 등도 분단영화에 반영됐다. 분단 관련 영화는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국 영화의 큰 흐름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0년 이후에는 그동안 공포의 대명사였던 간첩이 ‘생계형 간첩’ 등으로 재조명 되면서 간첩 소재영화의 새장을 열기도 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간첩>, <의형제>, <붉은가족>, <동창생> 모두 간첩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이 영화들이 과거의 간첩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간첩을 남한에 적대적이고 무자비한 모습이 아닌 소시민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꽃미남 배우들이 간첩 연기를 하고, 간첩을 판타지 캐릭터로 묘사하는 등 분단 현실을 너무 간과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통일 영화에 대한 꿈을 꿔야 할까? 한국전쟁, 간첩을 다룬 소재도 의미가 있겠지만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미래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또 지나온 세월 남북 간에 놓인 장벽을 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영화들이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새로 만들어질 통일 영화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생각과 논의를 한층 더 증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물론 현실의 남북관계와 통일 준비는 녹록하지 않지만 말이다.

예스이노베이션 경영컨설팅 대표

전병길  holi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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