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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없다(2)

서늘바람이 대지를 식히는 이 즈음, 꼭 한번 치르고 가는 의식 같은 게 있다. ‘지나간 여름날’을 추억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 오는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계간지 만들고 협동조합 치다꺼리하느라 덥고 지루했던 지난 여름 어느날, 선물처럼 반짝 여름휴가가 찾아왔다. 1박 2일간 갔던 장봉도로의 교회 수련회. 장봉도는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배로 30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이다. 무작정 설레었던 것은 이 섬이 뉴스에서만 보던 백령도, 연평도 등이 속한 옹진군과 같은 행정구역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장봉도로 향하는 선상에서. 삼목선착장을 출발해 장봉도에 도착하는 내내 갈매기 떼들이 환영인파를 이룬다. ⓒ김종원

여느 서해안이 그렇듯 장봉도 주위에도 하루 두 번 널따란 개펄이 펼쳐진다. 꽃게며 망둥어를 잡겠다며 아들 녀석을 데리고 보기 좋게 개펄로 돌진하지만 1시간 정도 지나면 빈 조개껍질 몇 개 주워 보기좋게 백기 들고 돌아왔던 경우가 예전 서해안 개펄의 몇 안되는 기억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수년간 장봉도에서 식당을 하셨던 분이 교회 집사님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지휘, 감독에 따라 개펄을 가로질러 1㎞를 훨씬 더 들어가 그물을 쳤다(실상은 먼저 온 선발대가 새벽 2시에 그물을 미리 쳐놓았던 것이다). 이제 정확하게 열두 시간을 기다려 물이 되 찼다가 빠지는 때를 기다려 수확만 하면 될 것이었다.

열두 시간 후(정확하게는 10시간 후), 칼국수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일행은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조금 더 빨리 개펄로 향했다. 깜깜한 밤에 친 그물을 찾느라 한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그물을 발견해 냈다. 아직 물이 빠기기 전, 그물을 살짝 들쳐올렸다. 세상에나! 50m 정도 되는 그물엔 손바닥만한 꽃게며 광어, 서대(난생 처음 봤다)가 거의 1m 간격으로 다닥다닥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버둥거리다 오히려 그물과 더 뒤엉켜버린 꽃게,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떼어 내면서 문득 든 생각. 나처럼 이 꽃게도 무더운 여름을 보내러 저 해주 앞바다나 멀리는 대동강 하류 남포 앞바다 어디 쯤에서 놀러왔다가 재수없게 걸려든 건 아닐까. 아니지, 그래도 꽃게 너네는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 우리보다 훨 낫다, 뭐 이런 생각에까지 미치니 우리네 인간이 더 불쌍해지는 것이었다.

2년 전엔가, 압록강부터 두만강 물줄기를 중국 쪽에서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국경이란 걸 처음 봤다. 북한, 그러니까 조선과 중국의 국경이 강줄기를 따라 그대로 철조망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한 사람으로서 그 위로 넘어가면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는 무시무시한 철조망. 그런데 눈에 익은 호랑나비며 물새들은 마치 그 철조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철조망이 상관없다는 듯 잡초들도 철조망 위며 옆이며 아무렇게나 뻗어나가 있었다. 분단무상(無常)이 저절로 차올랐다.

남북한을 갈라놓은 국경, DMZ는 어떤가. 말은 비무장지대지만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 지뢰 매설지역이 여의도의 334배란다. 거기다 대포, 미사일, 군인 등은 또 얼마나 서로를 겨누고 있을 것인가. 서로의 침략을 막겠다며 안전과 평화를 위해 비무장지대를 중무장지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토끼나 꿩, 노루, 멧돼지들은 생태로를 따라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고 있다. 밤이면 멧돼지는 잠깐 먹이 구하러 내려왔다가 다시 DMZ를 통과해 올라가고, 꿩들은 세끼들을 데리고 잠깐 산야로 외출했다가 다시 밤이면 DMZ를 통과해 내려오고. 그들에게 남북은 그저 한 둥지이고, 한 서식지일 뿐이다. 수십년 전 헤어졌던 가족, 친척, 친구를 오매불망 그리다 죽어가는 지금의 북조선·대한민국의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 얘기가 길었다. 분단이 하도 한심하고, 통일의 신호가 하도 안보여서 우화 아닌 우화를 썼다. 지난 호처럼 이번 호 제목도 ‘통일은 없다’다. 자연스럽게 두 분 독자의 ‘지적’에 대한 해명도 될 것이다. 두 독자는 “남북 교류가 계속됐더라면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필자가 인용한 한 전문가의 발언에 대해 “논리의 비약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혹시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쓴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다시 읽어봤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논리적 비약은 아니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윤일병 사건, 입시지옥 혹은 청년실업도 분단 문제와 직결돼 있다. 군대 내 구타 사건, 중고등학생들의 입시문제나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가 어떻게 분단(혹은 통일)과 직결돼냐고?
그건 이렇다. 통일 되면, 즉 통일한국의 적정병력수는 적게는 24~28만 명, 많아도 대체로 50만 명 미만이다. 예비역 장성들 설문조사에서도 30~35만 명을 적정병력으로 꼽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67~8만명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게 되고, 군대는 자연스럽게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가 될 것이다. 군대 가기 싫은데 더 이상 억지로 끌려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군대 내 복지나 인권 등의 처우는 개선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입시문제나 청년실업 문제는 대상이나 형식은 다르지만 성격은 같다. 결국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정치학회가 통일부에 제출한 ‘통일편익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통일 과정에서 10년간 재정(통일비용)을 지출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남한의 경우만 보면 51만~58만 명, 남북한 통틀어 101만~119만 명의 신규 취업자수 증가를 가져온다. 이는 남한 청년실업자 수의 약 2배, 남한 전체 실업자수의 약 절반을 취업시키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이래도 분단이(또는 통일이) 청소년들의 입시지옥, 청년들의 무취업·무결혼·무출산이라는 3무의 고통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10·4 합의를 실천했더라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남북 공동응원단은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를 거쳐 베이징으로 갔을 것이다. 그게 이어졌다면 지금쯤 초중고 학생들 수학여행은 대부분 기차 타고 금강산, 백두산, 평양, 만주나 시베리아, 유럽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도 없이 부실덩어리 배 안에서 짐짝처럼 실려가다가 참사를 당해야 했던 세월호 아이들은 없지 않았을까. 이 논리가 지나친 비약일까.

또 한 독자는 남북경협 기업이 800개라는 보도기사를 제시하며 ‘수천 개’는 과장된 표현 아닌가? 라고 물었다. 필자가 가진 2013년 10월 15일자 정청래 의원 국감 보도자료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남북경협 피해규모’에 대해 금강산 관광기업 747개, 남북경협 기업 1148개, 도합 1895개로 되어 있다. 여기에 공식조사에서 빠진 숫자까지 하면 남북경협 기업 숫자는 2000개를 훨씬 넘는다. 그래서 ‘수천 개’라고 했던 것이다. 혹 그 ‘수 천’이 5천이니 7천 정도를 연상시켰다면 필자의 불찰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자. 통일은 없다. 반대로 통일은 있다는 징표가 있는가? 통일의 조건은 흔히 3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시스템, 그러니까 남북 교류나 협력의 법적·제도적 틀이 갖추어졌느냐는 것, 두 번째는 통일의 주역인 남북한 주민들의 의지, 마지막 세 번째는 남북 통일을 인정하고 지지할 국제사회(특히 한반도 주변 4강)의 분위기다.

첫 번째 조건은 어떤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달 8일 발표한 2014 남북통합지수를 보면 지금 남북한은 최악의 관계다. 2013년 현재 남북통합지수는 190.9(총 1000점 만점), 2008년 남북통합지수를 측정한 이후 최저치다. 남북간 정치영역의 단절이 가져온 결과다. 이것은 두 번째 조건인 주민들의 통일 의지도 꺾어놓고 있다. 2014 남북통합지수에 따르면 의식통합지수는 그 전 해보다 하락했고, 의식통합지수와 직결된 사회문화영역의 통합단계는 5년째 걸음마 단계인 2단계(전체 10단계)에 머물러 있다. 세 번째 국제 조건은 더욱 안좋다. 남북간 대화와 평화를 조장해도 시원찮은 판에 미중간, 중일간 온통 갈등과 대결 양상만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로서는 남북이 화해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빠져들고 셈이다.

한반도의 하늘, 땅, 바다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와 멧돼지, 꽂게에 기대어 이 답답한 상황을 그저 토로해보는 것이다. 과연 통일은 있는가!

*이 글은 <빛과 소금> 9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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