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남남갈등을 넘어서[집중이슈]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2)

남북대결 이전에 남남(南南)갈등 해결이 더 근본이고 요원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철이 아니어서 잦아들긴 했지만 종북(從北)논란(과거엔 ‘친북’親北 논란)은 언제든 남남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불씨로 잠재해 있다. 정권 비판마저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황당한’ 종북논란은 제외하고 제대로 된 종북논란, 그러니까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를 유코리아뉴스가 짚어보기로 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대북 정책의 적절성은 물론 종북논란의 진위 여부를 규명해주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코너는 정해놓은 논조에 원고를 맞추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 다양한 주장의 글을,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논조’의 코너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누구인가?’에 대한 주장, 논문, 서평, 인터뷰 등 모든 종류의 글을 환영한다. 글은 간단한 필자 소개와 함께 ukoreanews@gmail.com으로 보내면 된다. -편집자 주

2001년 만경대 방명록 파문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남남갈등(南南葛藤)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벌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대북관에서 창조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내에서의 진보와 보수 간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집에서 유코리아뉴스가 다루고자하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지금 북한은 대한민국에게 분명히 정치·군사적으로 대결 상태에 있는 경계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현실이 북한 인식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을 바라봄에 있어서 우선 건전한 안보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전히 북한은 적화통일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통과 같은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은 우리와 한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가지고 있는 북한인식과 우리의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의 민족이요, 다시 하나 되어야 할 동포입니다. 따라서 서로 적대감을 해소하고 민족애를 바탕으로 통일의 동반자 관계로 북한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이중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바람직한 대북관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통일준비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한인 사회에서의 북한인식은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은 대체로 상반된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어 왔는데, 하나는 외재적 접근법이고, 또 하나는 내재적 접근법입니다.

우선 외재적 접근법은 전통적인 관점입니다. ‘외재적 접근법’은 북한이라는 대상을 객관적·외부자적인 시각에서 분석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북한 체제의 전반적 현상을 관찰합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가 전체의 이익이란 명목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북한 사회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로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장년층 이상의 세대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을 지칭할 때 ‘빨갱이’, ‘북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북한의 3대 세습체제를 아주 싫어합니다. 북한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봅니다.

또한 김정은 정권과 일반 주민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력을 이용하여 개인 우상화를 일삼고 주민들을 압제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과 그의 추종자들은 응징하고 추방해야 하지만, 그 정권 아래 핍박당하고 있는 주민들은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도주의적인 대북지원도 ‘퍼주기 논리’로 거부합니다. 결국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지원하면, 그 지원물품들이 주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독재정권의 수명만 늘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북한을 외면한 결과가 북한의 중국에 대한 예속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위기를 자국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서 이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되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을 그냥 내버려두면 망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흡수통일 될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북한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은 내재적 접근법입니다. 수정주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정주의란 지금까지 사실로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지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이론이나 학설을 수정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1980년대부터 기존의 냉전적 북한연구를 넘어 북한에 대한 내재적 이해가 한국 사회에서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라는 대상을 분석할 때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북한체제가 설정해 놓은 이념과 논리를 기준으로 북한 사회의 현상을 분석해야 제대로 된 북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북한 주민들이 최고 지도자에 대해 맹목적인 복종을 하는 이유를 ‘내재적 순응성’에서 찾습니다. ‘내재적 순응성’이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자연스런 복종을 의미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북한 사회는 상대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며, 그 생존 가능성도 높게 보입니다.

이런 내재적 접근법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밝혀 주었습니다. 하지만 외재적 접근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인 만큼 북한체제의 긍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해왔습니다. 또한 북한 사회 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폐쇄성과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독재성, 그리고 출신성분에 따른 불평등성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북한의 경제난의 원인과 책임에 대해서도 서로 견해가 다릅니다. 진보진영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같은 국제정세의 흐름과 사회주의 경제 구조의 본질적인 한계, 그리고 수해와 같은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북한의 경제난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당국은 나름대로 경제난 극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인해 경제난이 가중되어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보수진영은 위기의 원인을 북한당국에게 돌립니다. 북한당국이 김일성 부자의 개인우상화에 엄청난 재원을 낭비했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부문에 과다한 지출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민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일부 고위 당직자들만 호의호식하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가 바로 북한사회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대북관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석학적 접근을 제안합니다. 현대 세계에서 해석학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기술을 성경 해석에 사용해왔고, 판사들은 새로운 사건에 옛 법을 적용하려 할 때 이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해석학은 시간이나 공간이 다른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듯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해석학을 북한 인식에 적용하면 지금까지의 외재적 접근, 혹은 내재적 접근의 한계를 뛰어넘어 통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됩니다. 북한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의 관계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이 피를 나눈 동포입니다. 지금과 같은 남북의 분단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민족사적 당위성이 북한 인식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 문제를 더 이상 분열의 영역으로 남겨둬서는 안 됩니다. 이런 해석학적 접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명재상이었던 황희(黃喜) 정승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이 길을 걷다가 두 사람이 혈투를 벌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황희 정승은 그 중 한 사람을 불러 그렇게까지 싸운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황희 정승은 “그랬구나, 자네가 옳았네.”하고 그 사람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반대편 사람을 불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음, 자네가 옳았네.”하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옆에서 황희 정승을 수행하던 시종이 묻습니다. “아니, 대감님. 이놈도 옳다하시고 저놈도 옳다 하시니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네 말도 옳다.”

황희 정승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런 배려와 폭넓은 이해가 그를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이야기 할 때에도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종교적 유일체계는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와 민주적 사회의 가치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북한체제는 이미 자신들이 추구하려 했던 이상세계와는 전혀 동떨어진 폐쇄적이고, 불공평하며, 폭력과 감시가 아니고는 유지할 수 없는 체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확신의 바탕 위에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관용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이 보다 나은 길을 찾도록 돕는 일을 감당할 수가 있게 됩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방법만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분들이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에 대해 잘못된 방법이라든가, 악한 정권을 돕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는 등의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다 큰 틀에서 보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빌 2:3)는 성경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먼저 남남갈등을 뛰어넘을 수 있을 때, 한반도 통일의 날이 앞당겨질 것입니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힘으로 눌러서 이기는 통일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통일을 이루어야 우리 민족에게 밝은 미래가 오게 될 것입니다.

 

오성훈/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Ph. D., PN4N 대표, 예심교회 담임목사

오성훈  lovenor@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