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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의 복원은 아리랑 정신으로남한 사람들도 모르는 경북 영천 아리랑, 어떻게 북한 사람이?

 
아리랑은 우리 민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민요다. 일제강점기 동안 억눌려 왔던 우리 민족의 감정과 분노를 아리랑에 얹어 호소했던 까닭에 구전민요(口傳民謠)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해주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등 아리랑은 종류도 많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한민족의 대표 브랜드, 아리랑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아리랑은 일명 ‘본조(本調) 아리랑’이라 하는데 경기민요 창법으로 세마치장단에 얹혀 부르는 형식이다. 본조 아리랑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인 나운규 감독의 무성영화 ‘아리랑’(1926)의 주제곡으로 불린 이래 모든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으로 부상했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한을 승화하여 열정으로, 화합으로, 치유의 힘으로 구현한 핏속에 흐르는 노래이며 DNA에 내포된 가락이다. 아리랑은 중국의 조선족과 러시아의 고려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불렀고, 170여개 나라에 흩어져 사는 우리 동포들이 가족과 고향을 생각하며 부르고 있다. 아리랑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해 온 친근한 가족 같은 존재다.

소설가 조정래는 식민지시대의 민족수난과 투쟁을 그린 작품을 <아리랑>으로 지었고, 언론인이며 문학가인 미국의 님 웨일tm(Nym Wales)는 1941년 일제 식민지 조선출신의 급진 혁명가 김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는데 그 제목이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였다.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리랑은 각종 제품과 서비스의 브랜드 네임 (brand name)으로 사랑받게 된다. 1958년에 출시된 국내 최초의 필터 담배의 이름이 ‘아리랑’이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리랑 담배는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지원 아래 2003년 조선족 시장을 겨냥해 중국에서 출시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성냥 중에 가장 사랑받는 제품이 바로 ‘아리랑’이었다.


   
▲ 한국 최초의 담배, 아리랑의 변천사


1997년 시작된 외국어로 방송되는 한국문화채널의 이름이 ‘아리랑tv’이고 1999년 발사된 국내 첫 다목적 인공위성의 이름이 ‘아리랑’이다. 2004년 개통된 고속철도의 대 국민 브랜드 네임 공모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인 이름은 KTX가 아닌 ‘아리랑’이었다. 또한 외국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원화로 발행해 판매하는 채권의 이름도 ‘아리랑본드(Arirang bond)’ 이다. 반면 미국은 양키본드, 일본은 사무라이본드로 자국 통화 채권을 명명하고 있다.

‘아리랑’은 우리가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거나 세계와 소통하려고 할 때 국호(國號)나 국기(國旗) 대신 우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무엇이었다. 1991년 4월 29일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여자 경기에서 남북 단일 코리아 팀이 우승하면서 울려 퍼진 것은 남과 북의 애국가가 아닌 ‘아리랑’이었다. 남북은 분단되었지만 ‘아리랑’만큼은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준 순간이었다.



북한식 ‘주체 아리랑’(?)

북한은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집단 예술체조 아리랑으로 다시 만들었다. 아리랑이란 제목 아래 정교한 카드섹션, 대규모의 군무(群舞), 장엄한 음악들이 등장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일제와 미제의 침략으로 고통 받는 인민들에게 김일성이 나타나서 일제와 미제를 무찌르고 경제를 발전시켜 강성대국을 이루고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즉, 우리민족은 아리랑 민족이고 아리랑 민족은 곧 김일성 민족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선군 아리랑’, ‘강성부흥 아리랑’, ‘통일 아리랑’ 같은 그들만의 아리랑을 만들어 정치적인 메시지를 덧붙이고 있다.

북한의 아리랑 축전을 보면 아리랑의 변질이나 정치적인 악용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북한이 아리랑을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새로운 형태로 변주했다고 해서 아리랑의 본질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리랑 고유의 선율이 10%는 살아 있고, 90%는 연주자의 음악적 기교나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 융합되더라도 아리랑은 아리랑이다. 이것이 아리랑이 새로운 아리랑으로 다시 태어나고 아리랑이 곳곳에 퍼져 나갈 수 있었던 일종의 메커니즘이다. 물론 가사에 정치적인 내용을 가미하는 것은 좀 껄끄럽지만 말이다.



‘영천아리랑’에서 희망을 보다

-영천 아리랑-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오

아주까리 동배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멀구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울넘어 담넘어 님 숨겨두고
호박잎 난들난들 날속였소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측은 남한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하며 여러 노래를 각종 행사에서 불렀다. 불린 노래들 가운데 남한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영천 아리랑’이란 노래가 있었다. 여기서 영천은 경상북도 영천지역을 의미한다. ‘영천 아리랑’은 북한에서는 제법 알려진 민요지만 정작 경북 영천 사람 중에 ‘영천 아리랑’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남한의 영천 지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영천 아리랑을 어떻게 북한 사람들이 부르게 되었을까?


   
▲ 북한사람들은 경상북도 영천지역의 아리랑을 어떻게 알았을까?

‘영천 아리랑’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치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영천 주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중국 만주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주민들은 고향 영천이 그리울 때마다 ‘영천 아리랑’을 불렀고 영천 아리랑은 그 후손들에게 구전되었다. 해방 이후 영천 이주민과 그 후손 중 일부가 북한의 평안도, 함경도 등으로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북한에도 영천 아리랑이 주민들에게 자연스레 보급된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영천아리랑이 남한에 알려지게 된다. 타향에서 영천아리랑을 불렀던 영천지역 이주민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천 아리랑’만은 사라지지 않고 이주민들의 고향 경상북도 영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영천 아리랑을 되찾은 영천지역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해마다 ‘영천아리랑축제’를 연다. 경상도의 시골 마을 영천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로 그리고 그곳에서 북한으로, 북한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영천 아리랑’은 끈질긴 민족 문화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권력도, 거대한 타문화권 속에서의 궁핍함도 아리랑의 순수함을 꺾을 수 없었다.


아리랑, 더 넓은 세계와의 융합

아리랑은 더 이상 한민족만의 선율이 아니다. 2010년 SBS에서는 아리랑과 관련된 특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아리랑의 세계화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1990년 미국의 연합장로교회 찬송가에는 아리랑의 곡조에 찬송의 시를 붙인 'Christ, You Are the Fullness'라는 곡이 수록된다. 수록 당시 등재 후보곡만 3천여 곡이었고, 새로운 찬송가로 아리랑 곡조가 담긴 찬송곡이 실리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리랑의 곡조 'Christ, You Are the Fullness'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모인 편찬 위원회의 전원 찬성을 이끌어 내며 찬송가에 그 이름을 올린다. 단순히 가사나 아름다운 선율 이외에 곡조에 보이지 않는 영적(靈的)인 힘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 아리랑 곡조의 찬송 'Christ, You Are the Fullness'


그리고 일본의 한 국회의원 출마자는 선거 유세에서 아리랑을 열창하기도 했고 일본의 한 음악교사는 학교 오케스트라의 학생들에게 수십 년째 아리랑을 가르치고 있다. 아리랑은 이제 우리의 것만이 아닌 세계인의 노래가 되어가고 있다. 아리랑은 성악, 기악, 오케스트라를 막론하고 이 시각에도 수없이 많은 변주곡이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불리고 있다.

아리랑은 남북의 벽을 허물어 주고 우리와 세계가 소통하는 또 하나의 채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리랑은 과거와의 화해,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마음속의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리랑을 보고 듣고 느끼다 보면 통일의 과정에게 겪게 될 문화적 갈등을 극복하고 융합해 나가는 남과 북 그리고 한민족과 세계에 대한 영감(靈感)을 갖게 될 것이다.
 

전병길. 예스이노베이션컨설팅 대표. <통일한국 브랜딩> 저자. 


전병길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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