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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과 외교의 앙상블?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이 오는 9월 중순부터 열릴 유엔 총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아직 북한 당국이 공식 확인하진 않았지만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의 미국 방문은 확실시되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예견된 행보를 두고 한국과 국제사회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때마침 북한의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오는 주말 유럽을 방문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분석에 바쁘고, 언론 역시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일단 1999년 백남순 외무상이 유엔 총회에 참석한 이후 15년 만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리수용 외무상의 뉴욕 방문 자체가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그의 행보는 유엔이라고 하는 다자외교 무대로의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하기도 하며, 평양 당국의 대외전략에 일정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점은 지난 8월 8부터 10일까지 미얀마의 네피도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이 하나의 전주곡이라고 할 만큼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포럼 기간 내내 리 외무상은 “능통한 외국어”, “세련된 매너”, “적극적 태도”를 과시하면서 활발한 외교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포럼 기간에 양자외교도 활발하게 구사한 나머지 북중 외무장관 회담과 북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하였다. 네피도에서 그가 보여준 전주곡이 이런 양상이었다면 뉴욕에서 구사할 주제곡은 더 없이 화려할 개연성이 있다. 2012년 3월 당시까지 외부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뉴욕을 방문하여 보여준 ‘매력외교’를 상기할 만하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외교는 외양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용이 보다 더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리 외무상의 방미를 계기로 북미관계가 변화하는 모멘텀을 얻을 수 있느냐에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분석가들과 한국 언론은 지난 8월 16일에 있었던 미국 정부 당국자 일행의 평양 비밀 방문을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와 북핵문제를 다루는 워싱턴의 고위 관리가 일행에 포함되었다는 추측도 제기되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북미 간에 상당한 수준의 물밑 접촉이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잠깐 북미 접촉의 역사를 돌아보자. 1999년 백남순 외무상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을 백년 숙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세간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말해온 사람들의 입에서는 담기 힘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당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999년 5월에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후에 ‘페리프로세스’라 불릴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앞서 평양을 방문해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부상에게 직접 설명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페리프로세스가 본격 가동되었다. 페리프로세스의 결과, 워싱턴에서 ‘북미공동코뮤니케’가 채택되고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뻔한 진전이 있었다.

지금 워싱턴에 북한을 받아들일 정치적 분위기는 없다. 상층부나 실무 수준 모두에 그럴 여유와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잡혀서 한반도까지 염두에 둘 겨를이 없다. 북핵문제도 중국과 한국에 맡겨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리수용 외무상이 뉴욕에서 북미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절제심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북한은 9월 1일 미사일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금년에만 18차례나 발사체를 쏘아 올린 탓인지 이제 미사일 발사가 예사로운 사건처럼 되어버렸다. 말할 것도 없이 핵시계도 돌아가고 있어서 언제 4차 핵실험을 할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지경이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국가가 되는 데도 유관국들이 심각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은 전에부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위시하여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다만 공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가장 직접적 당사국인 한국 정부마저 현실성이 없는 통일 담론만 되뇌이고 있다.

북일관계도 심상치 않다. 한일관계는 정상회담도 마다한 채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남북관계는 화려한 수사만 있지 실행이 동반되지 않고 진전이 없다.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를 방치한 사이에 선뜻 북일관계는 납치문제를 고리로 삼아 급진전하고 있다. 9월 중순에는 북한측이 준비한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보고서가 나오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고자 온갖 정치적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아베 총리가 북일정상회담을 하고, 평양에 일본의 ‘연락사무소’가 들어서는 일이 벌어져도 놀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한국에 대해 더 이상 초조해하거나 매달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상대방인 한국 정부, 특히 전략가들은 그 반대로 사고하는 것 같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북한이라는 끈을 잡았기 때문에 다급할 것이 없다. 아베 총리가 몸이 달아서 서툰 한국말로 먼저 말을 걸어오는 그런 국면은 과거가 되었다. 북한도 몸이 달아 자존심을 상해가면서 갑을(甲乙)관계가 되는 남북관계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지금 평양은 전통 병법으로 표현하자면 ‘화전(和戰) 양면 전술’, 음악에 비유하자면 무력과 매력외교의 앙상블을 구사하고 있다. 그 앙상블이 북한으로서는 최상의 연주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선전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것이 온통 불협화음이고 예전과 비교해 새로울 것이 없다고 치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너무 소극적이어서 현재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되지 못한다.

   
 

지난 7월 초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방한을 결산하면서 다수의 분석가들이 남북관계 개선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과제라고 이구동성으로 제시한 기억이 새롭다. 한국 정부가 당면한, 한국 정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에 가장 효과가 클 외교안보 과제가 남북관계 개선이다. 동북아 정세가 요동을 치면 칠수록 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데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있습니다.

이수훈  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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