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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문화와 한국병

임 병장 탈영사건에 이어 또다시 윤 일병 사망사고가 터졌다. 세간에는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이라는 결코 웃지 못 할 소리도 들린다. 이에 군은 다시 모병제를 논하는 등 진부한 방식들을 되풀이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연이은 군내 강력사고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 내 뿌리 깊게 자리한 구조적 모순에 기인하는 측면이 더 크다. 세월호 사건 그리고 임 병장 총기사건,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등 오래도록 이어지는 일련의 가슴 아픈 사건들을 바라보며 필자는 우리 사회 내 뿌리 깊게 잔존하는 전쟁문화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보통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라면 군대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흔히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남자가 된다는 말들을 듣곤 한다. 사실 이 말은 폭력적이다. 군대에 가지 않은 남성은 이런 문화에서 소외받는 일방적 어법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군 전역 이후에도 예비군 훈련과정을 통해 군대에서의 경험들을 사회 속으로 확대, 촉진시켜 나간다.

대학 내에서는 일컬어지는 ‘학번’은 사실 ‘군번’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군에서 전역한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생 상호간 선후배 결정의 근거로써 작용하고 있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구호를 통해 조직문화를 애국심과 결부시키며 서로의 존재를 안위시키고 권력 순응적 자아로 성장되도록 만들어간다. 결국 이렇게 우리나라 남성들의 대부분은 청년 시절을 병영문화 속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 내 깊숙이 침투한 전쟁문화는 조직적 단결과 승리를 위하여 리더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주의를 낳았고, 개인의 개성을 함몰시키는 집단적 조직문화를 낳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쟁에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습과 선제공격의 기술은 북한식 ‘속도전’과 남한식 ‘빨리빨리’ 문화를 낳았고, 치열한 경쟁구조는 오직 승리만이 요구되는 결과지상주의를 낳았다. 이러한 속도와 빠름의 문화는 결국 그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비열한 편법을 낳았고, 부정을 일삼는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라는 타락의 결과로 발전한다. 늘 전쟁을 대비해야 하는 전쟁문화는 지속된 긴장으로 인해 조직 내 피로도를 높여 사고의 탄력성과 과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나아가 전쟁문화는 인간에게 피(彼), 아(我)만이 존재하는 정글의 법칙 속에 살아가기를 요구하였고, 이는 먹고 먹히는 폭력적 먹이사슬 속에서 상대방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생명경시의 풍조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빠름을 강조하는 전쟁문화의 긍정적 성과도 있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서양의 나라들보다도 몇 십 배나 빠른 근대화와 자유화, 민주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상 유래 없는 문명의 진보와 물질적 풍요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 외신들도 눈부신 우리 경제성장의 원인을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성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풍요는 정신세계를 포괄하는 총괄적 가치의 개념인 ‘문화’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한국인들의 피폐한 정신문화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성형강국으로 대변되는 외모지상주의와 무절제한 비만인의 증가, 쇼핑 중독으로 인한 쾌락의 추구, 연애의 과정을 무시한 혼인 중개회사의 증가, 바쁜 일상 가운데 여가의 실종으로 나타난 일중독과 이로 인한 결혼 정년기의 연장, 성격차이를 원인으로 한 이혼율의 증가와,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율과 낙태율의 증가, 쉽게 질리고 빠르게 변하는 대중문화, 늘 새것, 최신 제품만을 선호하는 허영심, 편리함만을 쫒는 일회용 물건의 증가, 각종행사에서 귀빈소개만 반시간이 넘게 걸리는 허례의식, 과도한 상품포장으로 인한 내적 무력함과 이로 인한 쓰레기의 증가, 여행지에서 사진부터 찍는 조급증, 컴퓨터, 스마트폰 등 IT 강국이라는 슬로건 이면에 투영된 진실은 빠름의 속도지상주의 갖는 피폐하고 고독한 내면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만성적 한국병의 발현인 것이다.

   
 

지난 세월호의 비극적 참사 그리고 이후 지속되는 일련의 군내 강력사고들은 폭력적 전쟁문화와 분단구조가 가져온 가장 심각한 정서적 폐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월호도 임 병장도 윤 일병도 어찌보면 우리사회 내 뿌리 깊게 자리한 내적 모순으로 인해 언젠가는 일어나야만 했던 운명적 결말일지 모른다. 이제는 한국병 극복을 위해 냉전의 유물인 전쟁문화 그리고 분단구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이다.

 

이장한/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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