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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물리쳐야 할 대한민국의 공적(公敵)은 무엇인가?

민주/진보의 주류적 정서라고 해야 할지, 거리 광장 민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과 크게 충돌하거나 엇박자가 나는 경험을 또 하고 있다. 돌아보니 2004년 탄핵 규탄과 2009년 노무현 서거 국면에서는 완벽히 일치했다. 그런데 2008년 광우병 시위, 2006~11년의 한미FTA 반대 시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부산)시위, 2012년의 국정원 선거부정 규탄 시위, 최근의 수사/기소권이 보장되고 유족 추천 조사 위원이 다수가 되는 세월호 특별법 관철 시위에서는 계속 충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전과 후로 구분될 수 있을 정도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구도 많이 하고 글도 많이 썼고 공개 토론회도 여러 차례 조직했다. 특별한 사건이니 특별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런 생각이 수사기소권을 가진 특별 사법기구 관철로 내달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정부와 검찰, 경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앞장서던 지인들이 좀 있었는데, 세월호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정말로 달라져야 한다는 주의환기 퍼포먼스 정도로 나는 봤다. 특히 피해자/유족들이 추천하는 위원이 다수가 되는 조사처벌 위원회는, 일종의 사적 린치를 보장하는 것이기에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내 가족이 당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원칙이다. 어쨌든 나는 서명운동 등이 특별법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의지와 신념을 담은 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참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하지만 정치적 책임은 크다-박근혜-김기춘의 연락 두절 7시간이 큰 현안(특검사안)처럼 부각되고, 각종 조작설, 괴담이 횡행하고 이런 저런 의구심과 불신들이, 선-악 프레임을 형성하여 특별법 관철로 내달리는 것에 대해 솔직히 놀랐다. 게다가 새정연의 유력 정치인들이 황당한 의구심과 불신에 기름을 붓는 것을 보면서 경악하였다.

도대체 이 나라가 천인공노할 대형 조작을 할 능력이 있기나 한 나라인지!! 정권은 겨우 2~3년이면 레임덕이고, 내부 제보자 권은희 같은 사람에게 국회의원 뱃지를 달아주는 나라인데!! (솔직히 천안함과 관련해서도 개인적으로 해명되지 않는 의문은 많지만, 이 나라가 그런 대형 조작을 할 능력이 없기에 나는 정부 발표를 믿는다. 아니 믿으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사건을 전후하여 정부와 정권 수뇌부가 무능하게 대응한 것은 의심할 여지는 없지만, 이것은 암만 봐도 권력형 비리가 아니다. 검찰이 관련된 비리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자기 자신(검사나 검찰)이나 살아 있는 권력이 깊이 관련되어 있는 사안만 아니면, 뭐든 꽤 날카롭고 깊게 파헤칠 수 있는 존재다.

검찰의 오래된 문제--수사기소권 독점 문제, 검찰 총장에 너무 많은 권능이 집중된 문제, 먼지털기 수사, 경찰과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견제, 상명하복의 기수문화, 전관예우 등—는 어디까지나 제도와 리더십 개혁으로 풀 문제다. 검찰과 청와대에 대한 불신을 근거로 특별사법기구를 만든다면, 1년에도 수십 개의 특별사법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한국의 사법 시스템과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 3륜에 대한 불신에 관한 한 그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지만—솔직히 특별법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변호사들의 빈약한 논리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 이 사건에 관한 한 검찰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지만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수백 명도 넘는 사람을 구속시킨 검찰(합동수사본부)보다 수사·기소권 있는 특별사법기구가 잘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은 대상은 오직 하나, 사건 당일의 정권 수뇌부의 무능한 대응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수사 내지 조사는 정치적 공격 소재는 많이 제공하겠지만, 그것은 사법적 단죄(구금, 수색, 처벌)의 대상이 될 수가 있을까? 정권 수뇌부의 무능 외에 무엇을 더 밝혀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내용은 특별사법기구가 잘 파헤칠 수 있을까? 국회청문회나 국정조사가 잘 파헤칠까? 나는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수사·기소권 있는 특별사법기구는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하여 사생결단으로 싸워서 관철할 방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검찰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광우병 시위 때처럼) 황당한 괴담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막연한 불신을 근거로 특별사법기구를 만든다면, 불신과 괴담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은 시도 때도 없이 특별사법기구 시비 내지 소모적 정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기 십상일 것이다. 박영선 의원의 전격 합의는 이런 판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수사기소권을 가진 특별조사위는 여야 합의도 어렵지만, 설사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우리 사회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깊고 다각적인 성찰, 반성을 가로막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최악의 범죄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지만, 본질적으로 그 동안 별로 문제 삼지 않았던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탈"의 문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어처구니없는 사고 중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사고임이 분명하다. 대형 인명 피해를 초래한 배 침몰 사고만 해도 1993년 서해 페리호, 1973년 한성호, 1970년 남영호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사고 내용을 뜯어보면 세월호 사고만큼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없다. 기상 악화 같은 돌발 변수도 없었고, 육지에서 먼 바다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훤한 아침이었다. 무엇보다도 희생자의 대다수는 위의 지시를 잘 따른 학생과 교사들이었다.

침몰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 상습적 과적과 평형수 감량, 엉터리 화물결박, 출항 전 안전점검 소홀, 비상시 대비 교육훈련 태부족, 선장 및 선박직 승무원의 직무능력과 직업윤리,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등)을 포함한 해상재난 대응시스템의 난맥상, 해경의 장비와 훈련 부족 등은 업계 이해관계자라면 대충 아는 일상적, 관행적 악덕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무슨 암세포나 독버섯 같은 극소수의 부주의나 업무태만 혹은 부정부패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선주, 선원, 해상교통관제 요원, 해경, 규제감독 당국의 일상 행위 자체가 기름 줄줄 새는 주유소 옆에서 불장난하는 격이었고, 이것이 불운을 만나 대형 화재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사건의 인과 고리를 찬찬히 살펴보면, 깊이 성찰, 반성해 봐야 할 굵직한 요인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기업윤리랄까 상도의 문제가 있다. 승무원은 직업윤리-직무능력-근로조건-면허증 문제가 있다. 이것은 유병언 일가에게 독박을 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경 역시 직업윤리와 직무(해난구조) 능력 문제가 있다. 해수부, 해운조합 등 규제감독기관의 직업윤리와 실력 문제도 있다. 그 뒤에는 관피아 시비를 낳은 공무원 임용-인사-감사 제도가 있고, 더 뒤에는 국회와 대통령과 정부부처의 규제=정치 품질 문제가 있다. 이 규제는 소비자, 해운회사, 규제감독당국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태를 규율한다.

배는 바다 위에 떠 있듯이, 해운회사와 연안해운시장은 수많은 규제감독과 시장원리(소비자 심리 및 선택) 위에 떠 있다. 그 이면에는 3300여개의 섬이라는 천혜의 자연자원을 개발하는 한편, 그 섬에 살거나 다녀가려고 하는 수많은 도서민 및 관광객들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해양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는 요금을 내고 배를 탈지, 비행기(저가 항공)를 탈지, 섬에 갈지 말지를 선택하며, 해운회사는 충분한 선택을 받아서 이익을 내야 한다. 도서민들에게 배는 발이요 생명선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승객과 해운회사와 승무원이 만족하는 규제를 만들고, 감독을 하고, 적정한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악마와 정부의 무능을 성토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특별사법기구로 파헤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와 후속 수사, 감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정부의 규제감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제주노선 독점 허용과 요금 규제 패키지가 수많은 변칙, 편법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선령 제한 완화는 그 파생물이다. 꼭 필요한 안전 규제는 이행을 강제하는 감독 자체가 너무 부실했다. 또 현실적으로 지키기 힘든 탁상 규제도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규제와 정책의 품질 문제다. 이는 두 정당이 주도하는 한국 정치의 품질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능을 극명하게 드러낸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두 정당이 오랫동안 갈고 닦아서 내 놓은 작품이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특별히 정부와 정치와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도 약하고, 왕따-이지메 때문에 사실과 과학에 근거한 전문가의 소신 발언도 드문 나라다. 그만큼 과학적 상식에 반하는 괴담, 음모론, 조작설이 SNS망을 타고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우발적 사고를 상대편이 자행한 살인이나 학살로 규정하는 선동도 횡행한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농민 2명에 대해서 그랬고, 쌍용차 정리해고 후 발생한 20여명의 자살자에 대해서도 그랬다. 모든 문제를 선악의 문제나 진보-보수간 정치 투쟁 문제로 변질시켜, 자신의 주장과 태도는 선으로 상대방은 악으로 규정하며 결사항전을 호소하는 뿌리깊은 문화가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붓듯이 책임 질 사안에 대해서는 책임 떠넘기기, 축소, 은폐, 조작 시도도 횡행한다. 게다가 여론은 말할 것도 없고 사법기관조차 여론에 휘둘려 과잉 처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4년 8월 현재 160여명이 넘는 구속자는 그 징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국민이 눈물과 분노로 지켜봤고, 검증이 불가능한 괴담도 난무하는 세월호 참사는 인과의 연쇄고리를 찬찬히 엄밀히 살펴 근인과 원인을 밝히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

단적으로 그 동안 참사를 초래한 핵심 원흉으로 지목된 유병언 일가, 규제감독 담당자와 관피아, 비정규직과 선령제한 완화 정책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실사구시적으로 그 책임과 영향을 규명해야 한다. 이는 정권 수뇌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대형 참사라 할지라도 엉뚱한 데 책임을 돌리고, 감정적으로 처벌을 하는 것은 도리도 아닐뿐더러, 국가와 사회의 기본 질서를 바로 잡는데 역행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결과가 너무나 참혹하기에 '악'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보면 세월호 참사는 오랜 무사고, 무탈 경험에 근거한 설마주의, 대충주의, 편의주의, 남에게 미루기(폭탄돌리기)의 산물인 측면이 크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해경에 구조를 미뤘고, 기관장 등 승무원들은 배만 타면 술이나 먹고 잠만 퍼자는 면허증 대여 선장일지라도, 명색이 선장이니까 책임질 순간에는 선장의 결단과 지시를 기다렸다. 123정으로 달려온 해경은 순찰과 단속이 주임무였기에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장비도 훈련도 부실했고, 까딱하면 구조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상황이고 해서다. 사실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나 먼저 살자주의'와 지독한 근시안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괴잠수함에 받쳤든, 박근혜 대통령이 사건 당일 비서실과 7시간 동안 연락 두절 상태였든, 세월호 참사의 뿌리에는 이런 일상적, 관행적 일탈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일상적, 관행적 일탈이라고 해서 봐주자는 것이 아니다. 일탈(범죄)은 강경하게 처벌해야 하지만—그래도 과잉 처벌이 횡행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유병언 도피를 도운 졸(말단 집행자)들이 그렇게 중죄인들인가?--범죄의 원인에 대해서는 더 강경하게, 더 발본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우리 시대의 진짜 거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다. 둘째는 악의 평범성 내지 모호함을 부인하고, 뭔가 크고 힘 있어 뵈는 놈 또는 남에게만 독박을 씌우려는 경향이다. 셋째는 사건이 크게 터지면 일탈(범죄)을 가혹하게 처벌하면서도, 그 깊은 뿌리 내지 원인에 대해서는 파헤치지 않는 행태다.

단적으로 지금 박근혜정부는 유병언일가와 관피아,특히 해피아에 과도한 책임을 덮어씌우려 한다. 진보는 박근혜정부와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고 자의적으로 규정한 보수정권에 책임을 덮어씌우려 한다. 진보와 보수가 합의한 것은 안전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관련 예산, 인력, 직급을 늘리고 올리는 것뿐이 아닐까 한다. 진보도 보수도 세월호 참사의 궁극적인 책임은 규제 품질과 정치 품질 문제라는 사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보다 더 심각한 참사를 지금도 만들어 내는 세계 최악의 출산률과 자살률, 그리고 양극화, 일자리, 저성장, 청년들의 지독한 기회 부족 등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이런 참사 아닌 참사 역시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은 신자유주의나 보수 권력-자본 복합체 같은 거악의 소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박한 욕망, 기대와 약간의 오버가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예컨대 산업연관표 등을 통해 한국의 총부가가치(gdp)의 분배구조를 살펴보고, 1인당 GDP 대비 산업,직능별 처우 수준 등을 살펴 보면,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국가라는 성벽(보호막)을 가진 20%의 성안 사람(주로 대출 금리 10%이하)과 시장경쟁에 완전히 노출된 80% 성 밖 사람(주로 대출금리 20%이상)으로 양분되어 있다.

20%는 혁신 능력이 있는 기업의 임직원이거나, 노조처럼 단결력이나 직능협회 및 공무원처럼 로비력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우리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이나, 실제 하는 일에 비해서 너무 높고 안정적인 권리, 이익을 누린다. 이것은 선진국의 동일 직능(직업)과 비교해보면 안다. 민간중소기업 수준과 비교해 봐도 안다. 20% 성안 사람에는 공무원, 교사, 대기업 및 공기업 정규 직원과 국가가 수량과 업역을 정하는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산업과 도심 요지에 부동산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과보호, 과소 의무/부담(세금 등) 상태다. 한번 들어가면 중간에 나오지 않고 정년까지 가기에 함부로 늘리지 못한다. 일감이 없어서 구조조정이라도 하려고 하면 ‘해고는 살인이다’고 절규하며 결사 항전을 벌인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20%의 풍요와 80% 및 청년의 빈곤과 기회 부족은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전자는 이를 세월호 참사에서 처럼 자본의 탐욕(신자유주의)과 권력의 자본 편향, 무능 탓이라 생각하며, 자기 책임은 없다고 소리친다. 20%가 정상이고 80%는 자본과 보수 정권에 많이 빨려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는 현실에 대한 무지거나 사기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위해 수사·기소권을 가진 특별사법기구를 만들자는 분들은 우리 시대의 행동하는 양심이자, 특별히 가슴이 뜨거운 사람임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사건의 인과 고리를 차분히 따져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오는 데 필수불가결한 차가운 이성까지 겸비한 것 같지는 않다. 돌아보면 분단과 전쟁, 외환위기, 양극화, 최악의 자살률, 출산률, 성장률 등 근대 100년의 한민족의 고난은 가장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차가운 이성을 겸비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한다.

   
 

내 탓이요 하면서 더 추상화해서 책임을 모호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직 사건의 인과고리가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 참사를 만든 평범하고 일상적인 악덕은 적지 않게 밝혀졌기에, 이것이라도 깊고 집요한 성찰을 통해 뿌리 뽑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그 핵심은 국가재난 대응 시스템과 더불어 이해관계자들이 상생하는 합리적인 규제감독을 포함하여 3300개의 섬과 긴 해안선을 대한민국 발전의 디딤돌로 활용하는 해양, 해운 전략이 아닐까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회디자인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회디자인연구소에 있습니다.

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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