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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8) '떠나라'라는 음성이 들리다제주극동방송 설교를 통해 탈북을 결심하다

나는 이렇게 말씀에 빠져들면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해야 이 진리들을 전부 깨달을 수 있을까. 예수님 한 분의 공생애 활동을 기록한 사복음서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가.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잠 17:8).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뇌물이 좋다는 건가, 나쁘다는 건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이 남조선이었다. 남조선에는 기독교방송국이 어디에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주파수까지도 알고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라디오에서 1566kHz를 맞추고 음량을 조절해보니 신통하게도 제주극동방송을 통해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밤 1시경부터 새벽 4시 반 혹은 5시까지도 잘 들렸다. 나는 그때부터 평양을 떠나기 전까지 1년 동안 빠짐없이 제주극동방송을 들었다.  낮에 부대에서 일을 하면서도 밤을 기다렸고, 새벽 1시가 되면 이불 속에서 라디오로 한국의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었다.

윤덕수 목사님의 설교는 얼마나 정열이 넘치던지, 그리고 김동호 목사님은 북한 노동당의 힘 있는 일꾼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그때 한국에서는 IMF에 직면하면서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 때였다. 그때 김동호 목사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승용차를 탔으면 이제는 버스를 탑시다. 버스를 타고도 안되면 걸어 다닙시다"라고 설교하셨다.

IMF를 맞아 이렇게 설교한 한국의 목사님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말 그대로 나는 혁명적인 설교라고 생각했다. 김득중 교수의 4복음서 강의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목사님의 예수님의 양성에 대한 설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이며 신이었다는 설교는 나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는 첫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곽선희 목사님의 "여성들이 교회에 나올 때 너무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오지 마세요. 그리고 손톱을 길게 기르고 다니지 마세요. 나는 어머니가 어렵게 일하면서 손톱이 길면 일하기가 힘이 들어 손톱이 자라날세라 깎고 깍고 하시던 것을 보아서인지 손톱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요"라는 설교를 들으면서 나도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나는 이 외에도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의 영혼속에 믿음이 자리잡고 그것이 서서히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늘 힘이 솟았다. 또 무엇 때문인지 나의 삶은 즐거웠고 기뻤다. 이전에 밀려오던 권태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불 속에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설교가 끝나고 나서 찬송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 찬송은 꼭 나를 위해서 만들어졌고 나를 위해서 불러주는 것만 같았다.

특히 찬송가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데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자니 몹시 괴로웠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내 손으로 직접 처형하거나 탄압하는 현장에 가담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무신론자로 살아왔다는 것이 죄송했다. 그러나 찬송가를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점차 '맞다. 내가 공산주의를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공산주의를 먼저 해보지 않았더라면 또 주체사상을 먼저 배우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성경을 보다가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으며 또 목사님들의 설교가 나의 마음판에 와닿을 수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지만 이미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셨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지난날을 종합적으로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삶을 종합해 보면 볼수록 하나님이 나의 모든 삶을 다스려 왔다는 것이 분명했다.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려고 그렇게 원했던 것도 바로 오늘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만일 내가 군인이 아니었더라면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정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한국으로 인도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오늘을 아시고 계셨다고 나는 믿는다. 

군대에 입대할 때 군과 도에서 두 번씩이나 신체검사에 떨어진 나를 군대에 입대시켜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또 땅굴을 파다가 우리 소대가 다 죽었는데 나만 살리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또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왜 7이라는 숫자를 좋아했는지 그것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내가 신비주의자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초월한 그 어떤 존재가 있을 수 있다"라고 단정하고 살아오게 하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목사님들의 설교가 끝나고 찬송가가 뒤따라 나올 때 왜 눈물이 나지 않았겠는가. 나는 원래 노래를 잘 못한다.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서 나 온자 스스로 배운 노래가 찬송가 455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였다. 혼자 라디오를 통해 배워서 부르고 또 부르니 정말로 십자가 밑에 짐을 다 내려놓게 되었다. 찬양의 힘을 날마다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처음에는 성경을 읽는 지적인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더 확실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이 성장해가도록 도우신 분이 성령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성경을 내손에 잡게 해주신 분, 그리고 성경을 읽게 하신 분 , 그리고 성경 안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는 것, 이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신 분도 성령님이라고 확신하자 처음에 지적으로만 깨달았던 말씀이 온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그리고 인간이었다"는 것을 확신한 것이 바로 이불 속에서 한국의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곤 한다.

이때부터 나는 시간만 있으면 성경을 읽고, 또 밤이 되면 설교방송을 듣고, 길을 걸어갈 때에도 나 혼자라면 제일 먼저 내가 배운 찬송가 455장을 흥얼흥얼 불렀다. 두 번째로 배운 찬송 493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도 계속 부르면서 다녔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에도 나 혼자 있으면 찬송을 불렀고 오직 생각나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당에서 받은 나의 직책상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겉사람은 노동당이요, 속사람은 하나님의 영 속에서 사는 처지가 되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반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나 혼자만 알아서는 안 된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일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 생각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한편 이런 일을 감당하려면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너무나 빈약하다. 그러니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배울 수 있는 통로는 오직 제주극동방송밖에는 없었다. 극동방송도 평양에서는 새벽 1시경부터에서 4시 반, 감도가 좋아야 5시까지밖에 들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 시간에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아무리 듣고 싶어도 매일, 빠짐없이 들을 수도 없었다. 부대 근무에 동원되거나 또 훈련이 있을 때에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부대에서 또는 부대 사무실에서 듣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그때 하나님께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 기도는 하지도 못하고 그저 항상 나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그리고 보고 싶은 하나님, 그 하나님만을 사모하면서 혼자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불러보는 것이 유일한 나의 기도였다.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하니님께 알려 드리는 것, 그것이 나의 기도 생활의 전부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제일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은 김득중 교수님과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 저분들의 강의와 설교를 이렇게 전파를 타고 오는 것만 듣게 하지 마시고 저분들 밑에 직접 가서 들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였다.

그런 소원을 하나님께 기도드린 지 한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영락교회 하충엽 목사님을 한국에 입국해서 일을 하던 기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목사님의 설교를 평양에서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그는  놀라며 정말이냐고 거듭 확인했다.

그후 영락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제 2남선교회에서 김득중 교수님을 초빙하여 강의를 청강할 때 나도 참가하게 되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 남선교회 회장님은 나에게도 간단히 무슨 이야기든 하라고 하셔서 "평양에서 김득중 교수님의 강의를 방송을 통해 들으면서 하나님께 전파로 듣게만 하지 마시고 저분들 앞에서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소원을 하나님께 올렸는데 오늘에야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라고 말했더니 김득중 교수님 역시 깜짝 놀라셨고, 제 2남선교회 회원들도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야 겠다고 생각을 한 그때부터 늘 집에 들어가 자리에 누우면 나에게 누가 분명히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점점 "너는 떠나라, 떠나라, 떠나면 분명 도와줄 분이 계시다"라는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음성은 정말로 세미하였다.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나에게 그런 생각과 음성을 주실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고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말로 타당하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나님은 천국이었고 보화였으며 인생의 영원한 가치였고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내 생의 전부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팔아 그 천국을 사기로 결심하였다. 성경을 읽고 방송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깨달은 그때로부터 정확히 1년 2개월만에 하나님은 천국의 보화를 사도록 나에게 역사하셨다.

북한 사람들은 평양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나 나는 평양을 팔았다. 또한 장교가 되면 정치장교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나는 그 정치장교도 팔았다. 조국이 통일되기 전에는 내 어깨에서 별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손에서 총을 놓지 않겠다고 김일성에게 충성의 맹세를 했었는데 이제는 별이나 총, 맹세, 모조리 다 팔았다. '하나님'이라는 보화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보화를 사서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평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시 태어난 인생, 새로운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그때 내 나이 47세. 이제라도 하나님을 위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당과 김정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정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축복이 아닐 수 없었고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좀 더 젊었을 때 30대쯤 하나님을 알게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은 전도서 3장 1절 말씀으로 즉각 응답하셨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시간과 나의 인생도 다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의 목적과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인간임을 깨달았다.  살아도 죽어도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인데 47살이든 17살이든 뭐가 다르겠는가.<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에 나온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심주일 목사(부천 창조교회 담임)

심주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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