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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바람 따라 떠나는 기억 여행

태풍들이 오고 간다. 너구리가 가니, 나크리가 지나가고, 이어서 할롱이 바람과 비를 몰고 빠져나간다. 태풍이 올 때마다 어디로 흘러갈지 정확한 방향을 모르니 기상 정보를 주시하라는 뉴스를 흘려듣는다. 인간이 이렇듯 자연의 변화무쌍함만 예측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뇌세포와 몸의 흐름에서도 기억이란 복병이 언제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열기에 젖어든 어느 여름 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 실뱅 쇼메)을 보고 관객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기억이 뒤엉키며 꼬리를 물며 흘러가 잠 못 드는 열대야를 보냈다. 바로 그런 밤, 인간과 함께 살아도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의 야성을 살린 뮤지컬 < 캣츠 >의 ‘메모리’를 듣고 또 듣는다.

“쓸쓸한 거리 / 달빛도 기억 위 홀로 웃고 있네요 / 발끝에 뒹구는 시든 낙엽들도 슬프게 웃네요 / 불빛들은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 어둠이 조금씩 깊어지면 곧 아침이 오겠지요.”

차 한 잔, 마들렌 한 조각이 끌어내는 기억
슬프게 웃는 게 무얼까? 아마도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주인공 폴이 그런 존재일 것이다. 댄스교실에서 미뉴에트 춤을 가르치며 귀족다운 품위를 유지한 채 살아가려는 두 이모와 함께 사는 폴은 피아노로 춤곡을 연주한다. 그런 그는 실어증이다. 폴은 이모들 말을 잘 듣는 착한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뭔가 깊이 슬퍼 보인다. 그가 아래층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기억의 문이 열리고 드라마도 흥미진진해진다. 아스파라거스 차와 마들렌이 마법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차는 풍요롭게 우거진 실내 정원에서 마담 프루스트가 직접 재배해서 만든 것이다.

드라마의 핵심은 폴의 슬픈 미소 뒤에 은닉된 아픈 기억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두 살 때 부모를 잃은 후, 폴은 망각과 함께 말하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귀족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가 되지 말고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밀어붙이는 이모들, 그랜드 캐넌으로 떠나 웅장한 자연을 마주하는 꿈을 가진 레슬러 아버지, 그 가운데 아기 폴에게 하고픈 일을 하라며 격려하는 유일한 존재는 엄마뿐이다. 폴을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그저 ‘사랑 한 숟가락, 꿀 한 숟가락’이 아기에겐 필요할 뿐이라며 노래해 주던 엄마의 잔영, 이제 그것이 아스파라거스 차와 함께 마들렌을 한 조각 베어 물며 복원된다.

이런 장면은 곧 마르셀 프루스트를 불러낸다. 한 잔의 홍차, 그 홍차에 살짝 적신 달콤한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내음과 맛에 실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기억 여행이 시작된다. 17년간 비자발적 기억의 흐름을 따라 써내려간 이 소설은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유명하다. 그 방대한 양에 압도당해서일까. 이 소설은 단번에 읽어내기 힘들어 이십 년째 읽었다 말았다 반복하는 내 인생길의 도전 목록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21세기 눈부신 뇌과학의 성과와 맞물리면서, 이 소설이 기억에 관한 뇌기능 탐구처럼 보이는 점이다.

아프고 힘든 기억도 안고 가는 인생길
후각이 뇌의 편도체에 연결되어 기억이 되살아나는 ‘프루스트 현상’은 뇌의 진화과정 연구에서 수차례 입증된 바 있다. 우리의 뇌는 좋은 향기, 아픈 향기, 저마다 사연이 있는 기억을 끌어낸다. 그런 점에서 후각은 감정과 추억을 자극하며 과거로 이동하는 기억의 타임머신 연료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어떤 이들은 “골치 아픈 과거, 기억해서 뭐하냐”, “현재도 살기 힘든데, 미래를 생각해야지 과거에 집착하면 안 된다.”라고 하지만, 인간 뇌는 과거와 현재, 미래도 연결하는 연상과 감정처리 세포들이 망상조직처럼 연결돼 생명을 유지한다. 아파도 기억에 직면하는 힘이 자아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을 폴을 통해 배운다. 폴이 기억에 직면한 후, 말도 하고 연애도 하니까.

   
 

<명량>(2014, 김한민)에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지휘하며 3백 척 넘는 왜군을 무찌르는 장관. 울고 도는 진도 울돌목은 세월호의 아픔을 연상시킨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기억의 약속을 지키려는 시민운동이 첫발을 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프니까 잊자”는 자발적 망각증은 유사한 아픈 현실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걸려들게 만든다. ‘세월호 기억저장소’ 건립은 기억과 현재, 그리고 미래가 우리 뇌세포처럼 서로 연결된 고리란 점을 깨우쳐 준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유지나  regard1@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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