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통일은 없다(1)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번 글은 통일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내용이다. 통일을 꿈꾸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글은 통일 관련 다른 주제의 글이 들어가는 게 맞다. 관련 자료도 차곡차곡 모아놨던 터였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글을 써내려갈 용기가 필자에겐 없었다. 그 자료들을 다 팽개치고 선뜻 ‘통일불가론’으로 주제를 잡은 건 필자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계간지 막판 작업을 하며 눈에 띈 두 가지 대목 때문이다. 하나는 대만과 중국이 정치적 대결 대신 경제적 교류를 통해 실제적인 통일을 이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통일 이전 서독과 동독이 지자체간 결연을 통해 풀뿌리 교류를 해왔고 이것이 통일과정과 통일 이후 서로를 결합시키는 끈끈한 접착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대만-중국, 동독-서독관계에 비춰본 남북
잘 아시다시피 대만과 중국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군부와 민중이라는 쫓겨난 세력과 쫓은 세력이라는 특성상 철천지 원수 사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 고인이 된 한 학자에 따르면 대만의 어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중국을 원수처럼 그린 대목은 눈을 씻고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게 정상이건만, 북한을 원수처럼(북한도 남한을 원수처럼) 대하는 게 정상이 되어버린 우리네 정서와는 너무나 달라 그 이야기를 읽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늘날 대만과 중국이 실제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서로의 실체를 인정한 그런 최소한의 기초가 사회적으로 공인(公認)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북한을 원수로 여기는 것도 모자라 정치적·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종북’(從北)이라며 사회적으로 생매장시키고 있는 게 우리가 지금 숨쉬고 있는 2014년 남한 사회의 민낯 아닌가.

남북 통일의 롤모델처럼 회자되고 있는 독일은 이미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통해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고, 1980년대부터는 지자체간 교류도 시작했다. 1989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0년 10월 양독(兩獨)의 정치적 합병은 그냥 상징일 뿐이었고 이미 1970년대부터 사람, 서신, 언론과 정보, 물자와 돈이 오고간 실제적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취한 5·24조치는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외국에 눈을 돌리게 하면서 북한 경제를 성장시켰고, 되레 수천 곳의 남한 남북경협 기업들만 도산에 빠뜨렸고, 수년째 남북교류의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이 때문에 남북경헙 기업들, 남한 내 대북지원 및 통일 관련 단체들은 지금 질식사 상태를 맞고 있다.

거기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폭발하고 있고, 사회·경제적 활력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호’ 자체가 침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전혀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통일 관련 학술대회에서 한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김대중 정부의 6·15 남북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선언을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대통령까지 중단 없이 실천했더라면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남북간 도로 및 철도 연결, 대대적인 민간교류의 확산으로 수학여행도 배타고 제주도 가는 게 아니라 기차 타고 신의주나 백두산을 갔을 거니까. 상상력으로 그려본 미래였지만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헷갈리는 요즘 남북한
요즘 남북한의 행태를 보면 솔직히 헷갈린다. 북한은 연초부터 ‘적대관계 단절’ ‘대결 중단’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 등 유화적이고 파격적인 제안들을 해오는데, 우리는 그저 애써 무시하고 있으니까. 북핵 문제 해결을 비롯해 제도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6자 회담 재개에 대해 중국과 북한은 ‘하자’고 하고, 남한과 미국은 북한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하지 말자’고 한다. 서로간에 켜켜이 쌓인 오해와 갈등이 있다면 일단 만나서 탐색전을 하든 본론을 꺼내든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는 게 일반 상식일 것 같은데 말이다. 도대체 지금 누가 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고 누가 더 한반도의 대결을 원하는 세력인지 너무나 헷갈린다.

그러면서도 이 정부가 이해는 된다. 어차피 정치권은 자신들이 위기에 빠지면 나라보다는 정권의 안보를 위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통일대통령’ ‘통일대박’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거창한 말로 국민 여론을 모으려 하고, 그러다 보면 국민들의 목소리보다는 자신들 이너서클의 기획과 의도로 정부를 끌고가기 마련이니까. 이런 정부에게 무슨 국민이니 민족이니 하는 숭고한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있겠는가.

그래서 정부보다 더 중요한 게 민간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나는 절망하는 것이다. 민간이라고 한다면 언론도 있고 시민단체도 있고 다양한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오랜 남북분단이라는 장벽과 5·24조치라는 초법적 조치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 시대가 어두울수록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해 왔다. 목회적 사명이 교회 내 양들을 향한 것이라면 예언자적 사명은 교회 밖 양들, 그러니까 사회와 역사를 향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꽉 막히고 그 속에서 숱한 양떼들이 숨이 막혀 질식사하고 있건만 한국교회의 주류는 눈을 감고 있다. 입을 닫고 있다. 아니, 오히려 엉뚱한 데로 눈을 뜨고 입을 열고 있다. 남북을 영원히 가르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쪽으로 말이다.

통일 향해 눈감고 입닫은 한국교회
북한을 위해, 통일을 위해 기도하니까 할 일을 다했다고? 믿음대로 기도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과 기도는 죽은 것이나 매 한가지다. 북한의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했다면 그 어린이들에게 실제로 빵을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믿음이고 진짜 기도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행동하려면 굉장한 용기와 헌신이 필요하다. 북한에 빵을 지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어느 통일단체를 통해 북한에 빵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보라. 5·24조치가, 그 조치의 해석권을 가진 통일부가 ‘불가’라고 할 테니까. 통일을 위해,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한 대로 행동해 보시라. 어마어마한 국가보안법이 떡 버티고 있을 테니까.

믿음대로, 기도대로 산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마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사회에서 행동하는 크리스천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그 어느 구석에서도 통일의 기미를 찾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세미나 현장에서, 강의나 책으로 통일의 꿈을 쏟아내는 많은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될 수 없다. 희망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고난과 저항에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생각까지 할 때가 있다. 통일을 위해 올인하는 지금 같은 직업 말고 생업을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파트로 통일을 위해 일하는 건 어떨까라고. 통일을 말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공허해진다. 솔직히 위선자가 되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 글은 <빛과 소금> 8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관련기사 icon통일은 없다(2)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