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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나라’와 ‘선조의 나라’: 군대 폭력의 악순환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4월 6일, 대한민국의 국군 병영 안에서 조폭집단에서도 생각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그 병영은 마치 조폭의 으슥한 뒷골목처럼, 교도소의 감방처럼 외부와 단절되었다. 지리적으로는 본부와 약간 떨어져 있고, 위계적으로는 폭력에 물든 하사와 병장의 통제 하에 있으며, 심리적으로는 부모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고참의 협박 때문에 외부와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병영에서는 조폭의 뒷골목보다 교도소의 감방보다 더 강력하게 폭력이 행해진다. 군은 ‘무력’을 행사하는 합법적 계급사회이고, 그 계급에 ‘군기’라는 이름의 폭력을 허용했으며, 지난 수십년 동안 폭력을 대물림해왔기 때문이다. 감방보다도, 교도소보다도 못한 이곳에서 갓 전입한 신참을 고참들이 죽도록 때린다. 뱉은 가래를 먹게 하고 치약을 입에 틀어넣는다. 맞다가 의식을 잃으면 링거를 꽂고, 깨어나면 다시 구타한다. 결국 그 신참은 사망했다.

군대폭력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수십년 된 적폐중의 적폐이다. 내무반의 일부 선임병은 후임에게 전우가 아니라 적이다. 내무반의 후임병은 일부 선임에게 전우가 아니라 노예이다. 그러나 이 노예와 노예주를 가르는 기준은 오직 짬밥, 군에 들어온 시간의 길이이다. 군대에서의 훈련은 힘들지 않다. 힘든 것은 내무반 생활이다. 쉼과 자유와 위로가 있어야 할 곳에 고통과 강압과 증오가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군의 존재이유가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군은 왜 존재하는가? 침략을 막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왜 존재하는가? 외침을 막기 위해서다. 외부세력과의 전쟁에 대비해 군대를 조직하고 군인을 징집하며 계급을 정하고 훈련을 한다. 진정하게 전쟁을 대비하는 조직이라면 전우애를 기를 수밖에 없고 전우애를 기르기 위해서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해야 한다. 선임이 후임을 노예로 대하고 화풀이의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군내 폭력의 악순환, 오래된 적폐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군내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학교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병영을 고립된 감방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옴부즈만을 도입하고 휴대폰을 지급해야한다. 장교와 하사관들이 더욱 세밀하고 철저하게 병영생활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장군에서 장관에 이르는 군지휘부가 군인권에 대해 확실히 행동하도록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개병제를 모병제로 바꾸고 군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보수적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일보의 양상훈 논설주간은 독특한 주장을 편다. 양상훈 주간은 8월 7일자 컬럼에서 윤일병 사건의 근본원인은 미국에 대한 우리군의 뿌리 깊은 ‘국방 의존증’에 있다고 본다. 그 논리는 이렇다.

‘언젠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군대 폭력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대폭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생사를 가르는 위협 앞에서 전우애없이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군대에는 절박함이 있다. 우리 군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우리에겐 미군만 있으면 괜찮다는 믿음이 모두의 마음에 깔려 있고, 군의 중추인 장군들의 몸속부터 국방 의존증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미군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제일 먼저 무너질 사람들이 장군들이다. 위기의식과 절박감이 없는 군에는 생명을 지키는 전우애가 생길 수 없고 내무반도 휴식처가 될 수 없다. 기강과 전우애가 빠진 내무반은 사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은폐공간이 된다. 지난 60년간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나라를 지키는 일만은 남이 아니라 내가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양상훈 주간은 결론에 도달했으나 해답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 해답은 ‘어떻게 내 나라를 내가 지킨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 얻어진다. 답은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없이는 결코 그 마음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전시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 아무리 많은 군대와 국방비와 첨단무기를 운용하더라도 그것은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이다. 윤일병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이는 8월 7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미국에서 열린 제2차 한미고위급회담에서는 전작권환수를 2020년 이후로 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무현 정부시기에 한국은 2012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시기에 환수 시기는 2015년 말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다시 2020년 이후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이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60년도 아닌 70년이 지나도록 작전통제권 하나 환수하지 못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고 그 군대는 한국 국군이다. 한국군의 장성들과 자칭 안보전문가들은 북한의 위협을 막을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외친다. 미 의회조사국은 이러한 한국의 아우성에 대응해 지난 7월 초 발간한 한미관계 보고서에서 "한국의 당국자들은 북한 위협에 대처하는 데 있어 한국군이 완벽히 준비돼 있지 않으며 북한이 전작권 전환을 한미동맹 약화로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2020년 이후 북한 위협에 대비한 한국군의 대응 능력이 구축되는 시점에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능력은 왜 아직도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능력은 어떻게 갖추어지는가? 가공할 예산이 소요되는 미사일선제타격시스템인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 구축되어야 대응능력이 갖추어지는가? 아니면 전작권을 환수하여 우리의 나라는 우리가 지킨다는 결사(決死)의 정신이 있어야만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이 길러지는가?

일찍이 이순신 장군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제시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 내 뒤에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필사적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서인세력들이 그랬다. 그들은 명나라 군대를 믿었기 때문에 감정에 좌우되었고 결국은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죽이려 했다. 이순신이 죽어도 명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만 믿고 결사의 군대를 만들지 않는 세력은 바로 선조와 같은 세력이다. 안보책임자들은 나태해졌고, 지휘관들의 군기는 해이해졌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들이 신주처럼 생각하는, 수조원의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첨단무기(KILL CHAIN, KAMD)는 병정놀이와 이권을 위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들은 오직 진급과 출세만 신경쓴다. 군의 계급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권을 취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일 뿐이다. 병영은 죽을 각오로 전쟁을 준비하며 전우애를 다지는 곳이 아니라 권력놀음의 장이 되어 폭력이 악순환되는 곳이다.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군출신 안보전문가이고 군 장성들이다. 그래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결사반대하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70년이 지나도록 환수하지 못하는 나라, 70년이 지나도록 치명적 군내폭력이 끊이지 않는 나라, 북한보다 경제력은 무려 40배나 강하고 인구도 두 배나 많으면서도 아직도 자기 힘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지 못하는 나라, 이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이순신의 나라’가 아니라 ‘선조의 나라’가 된 것은 무사안일과 권력놀음으로 작전통제권을 70년이 되도록 환수받지 않으려 하는 세력 때문이다. 이들은 70년간 무사안일 속에서 직무를 유기했고 결국 수많은 사병들을 폭력의 희생물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군부세력에게 일갈했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배기찬  baekic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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