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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탈북자 전원이 체포되다오영필 감독의 서쪽나라(2) - 낯선. 시간. 속으로.


영화에서 보기만 했던 감옥에 내가 지금 들어가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자유인의 신분이었는데 죄수로 전락하다니. 그 간격은 중국과 한국의 거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망의 거리였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그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하이라얼로 돌아오는 길에 강 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글쎄, 저들과 후에 한국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저들이 무사히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가게 되기를 우리들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김 부장이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이곳은 국경 지대라는 지역의 특성상 외지인이 택시를 탈 때는 경찰서에 신분을 확인하는 규정이 있다. 그럼에도 오후 6시 이후로는 도시로 나가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강 사장, 김 부장, 재영 씨와 나를 태우고 달리던 택시가 신분 확인을 위해 경찰서 앞에 멈췄다. 공안들이 택시 안에 있는 우리를 보더니 잠깐 나오라고 했다. 의례적인 조사인 줄 알았는데 점점 불안해졌다. 경찰서 로비에서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을 멍하니 응시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경찰서 안쪽에 있는 조사실에서 김 부장이 공안의 심문을 마치고 나왔다. 그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이 국경 지역을 향하고 있는 우리를 이미 신고한 상태라고 했다. 공안은 여권을 빼앗고 인근 국경 군부대로 우리를 압송했다.

부대에 도착하자 초병들이 우리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가끔씩 외에는 텔레비전에 마음을 빼앗긴 채 우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저들에게 침묵은 한가로움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일종의 경보음이었다. 조사를 받게 되면 촬영 테이프가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테이프 중 몇 개를 몸속에 숨겼다. 충전기 코드는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깥 화단에 버렸다. 한 장교가 불쑥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초병 중 한 명에게 뒤쪽에 있던 탁구대를 중앙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멍하게 보고 있던 나에게 탁구 칠 것을 제안했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탁구채를 잡았다. 몸을 움직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웃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스파이크를 하려는 순간 몸속에 숨긴 테이프 하나가 떨어졌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웃으며 테이프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자 다른 두 개의 테이프가 떨어졌다. 뭔가 눈치를 챈 듯 그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우리는 중국에 여행 겸 시장 조사를 위해 여러 곳을 다니다 길을 잃어 그만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서로 입을 맞췄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조사는 다음 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모든 심문을 마치자 초병이 우리를 숙소로 안내했다. 양쪽으로 두 개씩, 네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초병은 저녁 식사용 빵과 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자신의 일과를 마쳤다는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우리 일행만 남게 되자 김 부장이 오늘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군인들은 주민들의 신고로 우리가 탈북자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얼마간의 뇌물을 주는 조건으로 내일 오전 7시에 풀어줄 것을 김 부장과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깊은 새벽,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군인들이 김 부장을 무례하게 깨웠다. 그리고 날이 밝고 떠나기로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김 부장은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바깥 공기도 쏘일 겸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저 앞에서 재영 씨의 아내가 붙잡혀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창문 사이로 보이는 탈북자들의 모습. 새벽에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탈북자 전원이 체포된 것이다.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삼엄한 경비로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이 사실을 강 사장에게 알렸다. 그도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근심을 잊기 위해 다시 잠을 청했지만 초병들의 소란 때문에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강 사장은 테이프를 모두 버리라고 했다. 분신과도 같은 테이프를 차마 버릴 수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날씨가 추워 배설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밖에서 보초 서는 초병은 무심하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테이프를 버리는 순간 탁 하는 소리가 났다. 남은 테이프를 버릴 땐 크게 헛기침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엔 온통 테이프 생각만 가득했다. 이번 여행에서 촬영한 테이프는 모두 8개였다. 편집 과정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각각의 테이프에 번호를 적고 간단히 촬영 내용을 적어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8번 테이프는 탈북자들과의 이별 장면이 담겨 있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그것만은 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늦은 오후 화장실에 다시 갔다. 밑을 바라보니 8번 테이프를 포함한 다른 테이프들이 보였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건져 올리지?’ 손을 뻗어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초병에게 바지를 내리다가 실수로 소지품을 빠뜨렸다며 좋은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다. 잠시 후 그가 빗자루 하나를 구해 왔다. 그걸 이용해 어렵게 8번 테이프를 건져 올렸다.

군부대 안의 사무실에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 네이멍구자치구에서 나온 공안입니다. 당신을 중화인민공화국 형사소송법에 근거하여 심문하겠습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사실과 관련되지 않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직 당신은 사실에 의거해 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따뜻한 물 한 잔을 부탁했다. 그렇게 마신 물이 다섯 잔이나 됐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조사가 붙잡힌 사람들을 아느냐는 질문에서 꼬였다. 공안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반복되는 질문에 여전히 모른다고 답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내용 확인을 위해 진술한 내용을 다시 들려 줬다. 손에 인주를 묻히고 진술서 중간 중간에 지문을 찍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늦은 저녁 여러 명의 공안이 느닷없이 숙소에 들이닥쳐 우리의 몸을 차례로 수색했다. 그토록 원치 않던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이다.

강 사장은 미화 만 달러와 비디오카메라와 성경책을 빼앗겼고, 재영 씨는 신발 밑창에 숨겨 놓은 위조 신분증 등을 압수당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중요한 소지품은 호텔에 맡겨 놓았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테이프가 문제였다. 내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던 초병 하나가 어떻게 알았는지 베개 속에 감추어 둔 테이프를 찾아내 공안에게 보여 주었다. 은밀한 부분이 노출당한 것 같은 수치감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제기랄, 될 대로 되라.’ 이곳을 나가리라는 희망이 사라졌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은 홀가분했다.

우리를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가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서너 명의 공안이 차에서 내려 육중한 철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곳이 감옥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건물 안쪽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공안이 그에게 우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했다. 그가 조서를 작성하더니 잠시 후 우리의 몸을 다시 한 번 샅샅이 살폈다. 자해의 위험성을 고려해 금속성 물질과 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압수했다. 우리는 이불 하나씩을 지급받고 각각 배정된 감옥 문을 향해 걸어갔다.


   
▲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서너 명의 공안이 차에서 내려 육중한 철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곳이 감옥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윤경(재능기부)

감옥 문을 열었을 때 마루 위에는 여섯 명이, 바닥에는 두 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마루 맨 왼쪽에서 자던 누군가의 눈짓에 의해 가운데서 잠을 자던 한 사람이 이불 속에서 툭 튀어나와 바닥의 무리들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그가 눈짓으로 나에게 그 빈자리로 들어가라는 사인을 했다. 그 자리가 내 자리임을 직감하고 신속하게 몸을 숨겼다.'

금세 방안은 깊은 침묵의 세계로 돌아갔다. 따뜻한 이불은 피곤한 몸을 숨겨 주었지만 무의식의 세계는 영혼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유인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갇힌 신세라니. 그 간격은 중국과 한국의 물리적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절망의 거리감이었다. <3편에 계속>
 

2001년, 2003년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각각 3개월, 17개월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한 오영필 감독의 수기를 연재합니다. 2011년 제28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우수상 수상작인 <서쪽나라>(홍성사)의 내용 일부를 수정·보완한 것이며, 탈북현장의 긴박함과 한 개인의 깊은 고민을 전달합니다. 오영필 감독에 대한 소개는 하단의 저자소개와 '관련기사' 참고. 

 

오영필. 다큐멘터리 감독 및 작가이다. KBS 뉴스 투데이, 브이제이 특공대에서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고, 2001년, 2003년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각각 3개월, 17개월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했다. 저서로 <서쪽나라>(홍성사, 2011, 제28회 한국기독교 출판문화상 우수상)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금지된 여행>(2009년, 제 7회 기독교 영화제 대상)을 제작했다.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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