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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롤러코스터, 기왕이면 재미있게 잘 타고싶어요"연극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의 김동철 극단 '예배자' 대표 인터뷰

북한 수용소 이야기를 담은 연극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가 26일 바라아트홀에서 공식적인 연장공연 일정을 마친다. 아직은 통일 그리고 북한에 대한 관심이 낮아서 그런지 관객이 한 명 두 명 온 날도 있단다. 그래도 그 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공연하고, 한명도 오지 않는 날에는 함께 예배드린다는 극단 <예배자>팀. 이 팀을 이끄는 김동철(39) 대표를 25일 '멎은 땅에도...'의 공연장이기도 한 서울 압구정 바라아트홀 앞 카페에서 만났다.

건빵바지, 회색빛 셔츠, 푸른색 탐스 신발,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겉모습에서부터 그가 영락없는 '배우'임을 말해주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배우 윤문식을 만난 건 운명 같은 거였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휩쓸려 강원대 회계학과에 진학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중간에 때려치고 대학로 연극단에 합류했다. 청소하고 술시중 들고 '밑바닥'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연배우도 하고 그에게 20대는 밑바닥을 거쳐 승승장구하던 시절이다.

그러다 30대가 되면서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살이 빠지고 자주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어느 날 무대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늑막염이었다. 모태신앙이지만 그동안 구석에 처박아뒀던 신앙을 다시 꺼냈다. 지금은 그에게 신앙은 연극을 지탱하는 힘이자 연극의 이유, 작품의 모티브다.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도 지난해 초 기도하던 도중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을 이루려다보니 작품으로 엮게 된 것이다.

20대 시절 불같았던 배우 도전기를 거쳐 서른 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지나 마흔을 앞둔 그의 말과 표정은 참 차분해 보였다. 마치 인생의 골짝과 가파른 오르막길, 정상마저 다 지나 편편한 땅에 이른 것처럼. 그는 이제 자신의 재능으로 통일을 준비하겠다고 말한다. 다음 작품 역시 흥미진진한 통일 이야기다. 배우이면서 연극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김동철 대표와의 인터뷰를 보시라.

   
▲ 극단 <예배자> 김동철 대표. ⓒ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예배자>가 북한을 주제로 한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13년 1월 1일, 무슨 주제로 연극을 만들지 기도했다. 뜻밖의 응답은 바로 ‘북한’이었다. 북한에 관한 주제는 처음이었다. 나부터도 북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거의 없었다. 물론 친형이 북한 선교사였지만, 가슴까지 확 와닿진 않았다. 단지, 만약에 형이 북한에서 선교하다 죽으면 슬프겠다는 정도였다. 그건 형의 사명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다 새해 첫날 첫 번째 기도제목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음을 받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기도를 하게 된 거다. 주변에 북한에 대해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 몇 명이 모여서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고, 북한 선교사님을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 선교사님과 교제하면서 북한의 실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길 듣게 됐다. 그리고 이런 걸 작품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선교사님의 부탁을 받고, 지난해 6~7개월간 자료를 모았고, 지난해 10월에 대학로에서 공연하게 됐다. 당시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아줬고, 공연기간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올해도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20명의 출연진과 스텝이 필요했다. 우리 힘으로 준비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이 작품이 다시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그러던 중에 평화한국 허문영 박사님이 세이레 기도회 기간 동안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고, 이 작품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4년 6월 13일에 시작한) 이 작품을 원래 6월에 끝내려 했으나 힘들어도 연장공연까지 가보자 결정했다. 그래서 7월 들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관객이 두 명, 한 명 있던 날도 있었다.

- 한 명 관객 앞에서도 공연했나?
내 모토는 ‘연극은 사람 앞에서 하는 공연이 아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다. 하나님 앞에 서는 훈련인 거다. 관객이 한 명도 없을 때도 딱 하루 있었다. 그 날은 같이 모여 예배드리면서 배우들에게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자며 격려하기도 했다. 한번은 어떤 북한 선교사님이 오시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따로 만나자고 하더라. 그래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님이 본인에게 주신 마음을 꼭 나누고 돌아가야 한다면서.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원치 않고, 직접 느끼기를 원한다.” 선교사님의 말을 배우들에게도 그대로 전했다. 우리가 함께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자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2만 6천명의 탈북자가 내려와 있다고 한다. 내가 북한사람들을 만나보니 진짜 쉽지 않더라. 성격도 괄괄하고, 무대뽀 정신까지. 그런데 2만 6천명도 못 품으면서….

   
▲ 극단 <예배자> 김동철 대표. ⓒ 최승대 기자

지난해 이 작품의 마지막 무대에 올라가기 전날 아침, 아내와 기도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편지 같은 마음도 그랬다. “내가 너희들에게 원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 예배다. 지금 통일이라는 문제가, 동서남북이 다 찢어져 있는 이 상황은 결코 너희들 뜻대로 풀 수 없다. 하나님 때에 복음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 모든 게 준비되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을 배우들에게도 전했고,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알려줬다.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곳을 전혀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어쩌면 오기로 7월까지 밀고 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외면하지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는다는 걸 믿는다. 극장에서 이런 작품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적자가 많이 났나?
경제적인 적자는 많이 났는데, 배우들은 많이 회복됐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영혼의 회복이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7월 26일에 마치고 끝내는 거였는데, 몇 일 전에 아내가 내게 '기도를 잘 못한 것 같다'고 하더라. 왜냐면 내가 상영기간을 정할 때 하나님 뜻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가야 되는 거라면 계속 이어갈 거다.

   
▲ 25일 서울 압구정 바라아트홀 앞 카페에서 가진 김동철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러스팅한 모습 ⓒ한재진

-이 작품의 스토리는 북한 수용소에서 믿는 자를 통해서 북한의 관리가 변화되는 과정을 그렸는데?
북한은 우상숭배가 가득한 나라다. 이 작품은 그곳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다가 죽었지만, 그 열매는 계속 맺혀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순교의 피 또한 계속 흐르고 있다.

-혹시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게 뭔지? 어떤 특정 가족의 이야기 혹은 어떤 자료에서 따왔나?
이 작품의 모티브는 북한 선교사와 인터뷰하면서 나왔다. 녹음한 인터뷰 내용을 가지고 몇 명의 지인들과 같이 기도하면서 이 작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에 바탕을 둔 건가?
거의 90% 이상이 사실이다. 여기에 가상의 인물 한두 명만 넣었을 뿐이고, 대부분은 실제 이름을 다 사용했다.

-김동철 대표도 배우로 참여했나?
나도 원래 배우 출신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중간첩 역할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지하교회에 숨어 들어가서 교인들을 돕는다. 결과적으로 도강할 때, 그 현장을 덮쳐서 그들을 고문한다. 아주 악한 역할이다(웃음). 작년에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기풍 역할을 맡았다. 지도원 출신인데, 결국 변화되고 순교까지 한다. 올해는 몸이 좋지 않아서(주인공 역할은 못하게 됐다)...

-지금 건강이 안 좋은가? 어디가 아픈가?
늑막염으로 처음에 쓰러졌다가 그때, 주님을 만났다. 10년 전이니까 30세였던 당시에 나는 모태신앙이었지만,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그러다 5년 전 신학교에 다니게 됐고, 수업시간에 분당샘물교회 피랍사건 내용을 접하게 됐다. 이걸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에 연락을 했고, 여러 이야기와 자료를 모아서 그 작품을 대학로에 올렸다. 그런데 2주 공연이 전부 매진됐다. 제목은 <땅 끝에 서다>였다. 공연을 하다 보니 살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공연 중에 10kg이 넘게 빠지더라. 맡은 배역 중에 순교 장면이 있어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분명 영향이 있었을 거다. 아무튼 쓰러졌다. 쓰러져서 병원에 가니 큰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결국 대학병원에 가보니 골수 쪽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혈액을 만드는 물질 두 개가 생성이 잘 안된다더라. 그래서 그날부터 지금까지 수혈을 받고 있다. 매일은 아니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 그렇게 배터리를 충전시켰다가 다 쓰면, 또 가서 충전하고 그런다(웃음).

-배역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순교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너무 허랑방탕하게 인생을 살아서 주님께서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려는 것 같다. 이걸 통해서 아픈 자들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 극단 <예배자> 김동철 대표. 환하게 웃지만 심각한 늑막염을 앓고 있다. ⓒ 최승대 기자

-경제적인 적자가 나면, 아무리 소명이 있다 해도 회의가 들 텐데.. 그럴 땐 어떻게 하나?
나도 낙심하고, 하나님께 원망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횟수가 줄어든 것 같다. 하반기에 오병이어 페스티벌이란 성극단 페스티벌이 열린다. 다른 성극단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공연을 못하고 있다. 다른 성극단들에게 최근에 이런 이야길 했다. “난 살아남고 싶다. 이 산이 높다고 하지만, 더 높은 산에 가보고 싶다. 주님과 더 깊게 연합하고, 좀 더 주님을 깊게 바라보는 훈련으로써.” 배우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작품이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 이거 가짜 아닌가. 우린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할 뿐이다. 더 중요한 건, 주님을 놓치지 않는 거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을 붙드는 훈련이다.
연기 좋아하면 연기하고, 뮤지컬 좋아하면 뮤지컬하면 된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다. 배우란 직업은 무대 위에 서다 보니 자기를 뽐내게 된다. 하나님은 대학로에서 잘나가던 배우였던 날 단번에 확 꺾으셨다. 그때 내 모습을 알았고, 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해주겠다고 결단했다. 그래서 여기 극단에서도 그걸 전하고 있는 거다.

-대학로에서 잘 나가던 배우라 하셨는데, 과거 잘 나갈 때 어떤 역할을 맡았나?
주인공 역할을 많이 했다. 셰익스피어 소설의 햄릿,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의 비프 역할까지. 그때 내 인생의 계획표는 화려했다. 30세엔 뭘 하고, 35세엔 아르코 대극장에 서고, 그 다음엔 영화로 진출해야겠다면서. 서른 살 즈음부터 좋은 역할을 맡았다. 최근에 대학로에 다시 들어갔다. 10년 만이다. 그래서 난 아내에게 “좋은 사람들과 <예배자> 안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중보자 역할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로에 있는 선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고, 아내와 상의 후에 대학로로 가게 된 거다. 거기서 별로 할 게 없다. 앉아서 그냥 선배들 있는 데서 기도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를 하면서,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는 건가? 어떤 작품인가?
<나비효과 24>다.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88만원 세대, 직장인, 명예퇴직자, 학생 등 인간 군상들이 나와서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거기서 느낀 건 하나였다. 그 작품 안에는 답이 없다. 대학로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그 작가도, 유명한 연출가도 역시 답을 못 내린다. 그래서 난 배우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작품은 공허하다고. 거기엔 길도 없고, 생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거기 중보자로 앉아 있다. 하나님 앞에선 예배자로, 세상에선 중보자로 살고 싶다.

-신학을 30대에 시작했다면, 원래 전공은 뭔가?
강원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다들 그 ‘회계’가 주님에 대한 ‘회개’인 것 같다고 한다(웃음).

-김 대표는 원래부터 연극배우의 꿈이 있었나?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난 강원도 사람이다. 그 당시 23년 전 만해도 연극은 거의 없었다. 제일 친한 친구의 큰 아버지가 윤문식 선생이다. 그래서 학교 축제때 당시 유명했던 극단 미추가 학교 강당에 왔었다. 그때 윤문식 선생님, 최주봉 선생님, 박인환 선생님, 김성녀 선생님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다 왔다. 내겐 신세계였고,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 이거다!”란 생각이었다.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면 너무나 좋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 때 연극배우를 했던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께 연기하려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알려달라고 했고, 혼자 똥폼 잡으면서 셰익스피어 작품 보고 연습했다. 그러다 회계학과에 들어가게 된 거다. 갑자기 회계학과에 들어간 이유는 남들이 대학이란 곳에 가니깐 나도 한 번 구경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철학은 뭐든 해보는 거다. 해보고 아니면 마는 거다. 그래서 대학에 갔는데 재미가 없었다. 대학은 구경했기에 후회 없이 자퇴했다. 그 다음에 아버지 몰래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 대학로에 가서 밑바닥생활을 시작했다.

-극단에서 밑바닥생활을 한다는 건 뭔가?
매일같이 청소했다. 군대와 비슷하다. 규율이 군대보다 빡셌다. 선배들이 극장에서 자는 날이면, 아침에 라면 끓여냈고, 술시중까지 다 들어줘야 했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선배는?
이름은 밝히기 어렵다. 하여튼 다들 술고래다.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브라운관과 영화관에 나오는 모습과 실제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

   
▲ 극단 <예배자> 김동철 대표. ⓒ 최승대 기자

-연극하다보면, 영화계로 빠져서 잘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유혹은 없었나?
그런 유혹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예배자>에 대한 가치에 더 우선을 두고 있다. 지금은 그런 부분이 잘 안 보이지만, 과거에 뜨거운 열정만 가지고 가방 하나 메고 다닐 때는 많이 힘들었다. 대학로에 우연찮게 나가면, 저녁에 선배들이 술 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난 완전 ‘또라이’였다. 한창 잘 나가다가 갑자기 도닦는 사람처럼 변한 모습이 그들에겐 그렇게 보였을 거다. 이제 막 방송을 시작한 선후배들을 보면, 나보다 연기도 못했던 애들이란 생각에 눈물이 나면서 막 미쳐버릴 정도였다. 그러다 회의도 들고, 자괴감에 빠졌다. 그래서 교회 와서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하면, 다시 회복됐다. 지금은 그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걸 보지 못하고, 술 담배에 찌들어서, 그 안에 있는 모습이 너무 불쌍한 거다. 지나온 시간은 아깝지만, 앞으로 기대되는 일들이 더 많다.

올해 하반기에는 장신대 교수님들과 준비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 기독교 문화예배다. 거기에는 영화감독, 음악감독, 우리는 연극과 뮤지컬 파트로 맡아서 각 분야의 리더십들이 모인다. 뒤죽박죽 섞여 있는 세상과 문화를 어떻게 하면 최고의 퀄리티로, 최고의 영성으로 예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9월에 시작될 첫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대안적인 예배인가?
문화예배다. 미국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예배가 아직 없다. 이걸 통해 문화와 말씀을 잇겠다는 거다. 30분간의 스킷을 통해 음악, 무용, 영상 전문가가 모여 질 좋은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된다.

-기독교 문화운동에서도 자연스럽게 김 대표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 같다.
기독교 문화라는 건, 말씀 앞에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다. 문화 자체를 좇아가려고 덤비면 중심축은 무너지게 돼 있다. 감사한 건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고, 연극도 오래할 수 있어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지금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기도하고 있다.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
신학대학원에서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있다. 나는 문화 쪽엔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신학적으로 깊이 알아야 말씀과 접목시킬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생명은 말씀이고, 문화는 수단일 뿐이다. 베드로에게 그물을 줬다면, 내겐 이걸 준 거다. 이건 사람을 낚는 거지, 영혼을 살릴 순 없다.

-가장 존경하는 배우는?
배우로는 최민식이고, 신앙으로는 차인표다. 차인표는 냉정하게 배우로서의 매력은 없지만, 신앙으로는 본받을 점이 많다. 만약에 내가 그쪽으로 갔으면 난 분명히 변질됐겠구나 싶다. 한번은 인터넷을 통해 차인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톱스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니 저 자리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친한 영화감독님이 내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은 적이 있다. 연기 잘하는 배우, 성품이 좋은 배우 중에서 말이다. 난 성품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만 위해서 살아왔다. 서른 살까진 연기가 내 목숨이었다. 10대 때부터 십수년간 그걸 보고 달려왔는데, 주님을 딱 만나니 가치관이 확 바뀐 거다. 그동안의 나는 쓰레기처럼 살았던 거다. 내가 성공해서 밟아야 된다고만 여겼던 거다. 배우란 직업이 어찌 보면 비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다. 선택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선택권이 없는 거다. 그래서 항상 조바심을 가지고 살다보니, 사단의 유혹도 많고, 어려움도 많이 겪게 된다. 그래서 그런 걸 보면서 성품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이 밭을 갈아주시는 것 같다. 지금 이제 지경을 조금씩 넓혀주셔서 방송에도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내게 마흔 살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나?
서른 아홉이다. 예전부터 가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흔 살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기다린다는 게 돌이켜보면, 연기가 목숨이었던 사람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되는지 몰랐다. 그때마다 꺾이면서, 순종하자, 순종하자고 다짐했다. 지금 돌아보면, 한편으론 대견하단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하나님이 어디로 움직이실지 모르지만, 어디든 그 안에 가서 중보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이다.

   
▲ 극단 <예배자> 김동철 대표.

-영화나 방송 쪽도 마음에 준비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 최종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모양일지는 모르지만, 선교사가 될지, 일반 목회를 할지 모른다. 그냥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재미있게 잘 타고 싶다.

-연극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젊은 데도 불구하고, 인생의 쓴맛, 단맛 여러 가지 맛을 경험한 것 같다. 연극 말고 또 어떤 걸 경험해봤나?
해볼 건 다 해봤다. 그중에서 ‘닥트’ 알바한 적이 있다. 공기청정할 때, 대형건물 천장에 있는 닥트를 열고 보면, 거기 안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보인다. 그걸 닦아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10년 전에는 노가다도 해봤다. 청담동에 있는 아이파크도 내가 지은 거다(웃음). 그래서 가끔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에게 내가 지었다고 웃으면서 말하곤 한다. 또 대학로에서 술장사도 하다가 8개월 만에 엎어지기도 했고, 우유배달도 해보고... 하여튼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런 경험들은 생계를 위한 거지만, 연극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일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한때는 연극과 일을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삶의 에너지를 100으로 치면, 일을 하면 그 에너지가 준다. 연극에 쏟아야 될 에너지를 다 못 쏟는 거다. 그런데 일반사람들이 보면 연극배우들이 나태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있다. 온전히 100으로 해놓고 거기에 템포를 맞추는 게 연극배우다. 영화배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보니깐 그게 아니었다. 내가 삶을 열심히 살지 않았던 거였고, 내 삶을 방치시킨 거였다. 심지어 내 자신에게 거짓말 하고 있었던 거다. 그 다음부터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다. 예전엔 아동극이 들어와도 배우가 어떻게 그런 걸 하냐고 말하면서, 배우는 절대 그런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젠 아동극이 들어오면, 너무 신난다. 야호, 아싸(웃음) 이러면서 한다. 되더라. 그전엔 가치관이 그렇게 돼 있어서 이런 일은 못 했다. 지금은 모든지 주는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작품 구상을 많이 할 텐데.. 통일이나 북한과 관련해서 이런 걸 해보면 좋겠다는 게 있나?
특급 비밀이다(웃음). 아주 재미있는 통일 판타지(fantasy)를 그린 연극을 만들라는 마음을 주셨고, 이미 기도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도움의 손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너무 상처투성이였다. 남한 사람들,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도 완전 상처투성이다. 공허해 보인다. 으리으리한 궁궐 속에서 답답한 닭장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이 나라는 어떤 걸로도 통일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복음적 통일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우리의 주된 테마다. 이 사랑을 작품에 어떻게 하면 잘 녹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어디다 내놔도 종교와 상관없이 같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대해 달라.

-언제쯤 올릴 계획인가?
아직은 미정이다. 작품을 쓰면 9월말쯤 나올 것이다. 기대가 많이 된다. 이 작품도 대한민국을 생각하고 썼다. 많이 예뻐해 달라. 앞으로 사람들에게 질 좋은 작품을 알리고 싶고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실력이 안돼서….

-겸손의 말씀(웃음).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를 안 본게 후회가 된다. 빨리 와서 봐야겠다.

 

성상현 기자  jacksu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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