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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은 홀로 높지 않다

과연 그것이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 다산 정약용은 어떻게 그토록 방대한 연구업적과 저작을 이루어 남길 수 있었을까. 그것도 정치·경제·철학·역사·지리·언어·문학·의술·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말이다. 지난 17일 열린 학술모임은 그에 대한 해답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학술 모임의 제목은 “다산학단과 방산 윤정기”였다. ‘다산학단’이란 다산을 비롯하여 그가 강진 유배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을 합하여 지칭한 것이다. 방산 윤정기는 다산의 외손자이며, 다산학단의 계승자로 간주된다. 방산이 태어난 지 200년을 기념하여 실학박물관, 방산선양회 그리고 다산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것이다. 실학박물관은 지금 방산의 유품에 대해 특별전시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산연구소로서는 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이기도 했다.

연원이 있는 다산의 강학 방식
학회치고는 대단히 많은 사람이 참석한 가운데, 실학의 지역적 양상과 교류, 다산학단의 면모, 방산 윤정기의 시와 서예 등을 개별 주제로 한 발표가 있었다. 그 가운데 정민 교수는 다산의 문답형 강학에 대해 발표했다. 문답형 강학은 제자의 수준에 따라 쌍방향으로 이뤄졌고, 일종의 공동연구였다고 평가했다. 스승인 다산의 기획과 제자들의 주체적 참여 속에 토론이 이뤄지고, 그 결과물이 책자의 형태로 엮어졌는데, <승암예문>, <다산문답>, <소학주관문답> 등이 그 예였다.

“이러한 다산의 문답형 강학의 학문적 연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날 발표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정민 교수를 대신하여 발표문을 읽은 박수밀 선생의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정민 교수는 성호 이익에게서 찾는다고 전했다. 그렇다. 성호 이익은 제자들에게 ‘불치하문(不耻下問)’을 강조했다. 불치하문이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래의 주장을 묵수하지 말고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것을 공부의 요령으로 삼았다.

그런데 학문적 주제에 관해 묻고 답하면서 학문적 이해를 심화시키고 그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모습은 가까운 어디선가 본 듯하다. 바로 다산이 임금으로 모셨던 정조의 <경사강의(經史講義)>가 그것 아닌가. 이 책은 정조가 젊은 신료들과 사서육경에 관해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는 학자군주답게 184권 100책으로 구성된 방대한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경사강의>가 56권에 이른다.

학문의 방식만이 아니라 주제의 면에서도, 성호와 정조가 다산에게 끼친 영향은 확연하다. 가령 기술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세상이 넓을수록 더 낫다는 다산의 유명한 기예론, 언론기능을 언론기관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 등 이미 성호의 글에서 등장한 아이디어가 한둘이 아니다. 정조의 영향도 심대하다. 정조가 정치의 과제를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으로 제기한 사실을 다산은 감동 어린 어조로 상기하며 그에 대한 응답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정치론을 전개했다. 다산의 학문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어디 성호와 정조뿐이겠는가.

위대한 사상과 인물, 평지돌출 없어
그렇다면 이제 그가 끼친 영향으로 눈을 돌려보자. 다산의 제자 가운데 주목받는 사람으로 이강회가 있다. 이강회의 저작으로 <유암총서>가 남아 있는데, 외국 선박에 대한 관심, 수레 사용에 관한 주장 등 이른바 북학파(또는 이용후생학파)와 방불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주장이 하늘에서 떨어졌겠는가 땅에서 솟았겠는가.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이용감’ 설치를 주장하면서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의 주장에 근거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이 제자 이강회에게 이어진 것이다. 변방의 한 젊은이가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책을 논설했던 데는 그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다산에 대한 연구 방향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본다. 종래 근대화론에 입각해 오로지 이에 부합한 주장과 해석만을 취하던 협애한 관점에서 벗어나 그의 학문이 지닌 풍부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동안 다산 일개인에 집중되었던 관심을 종으로 횡으로 확대해 학문적 영향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이번 학술 모임도 그런 맥락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본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인물이든 평지돌출이란 있기 어렵다. 학문적 위업이나 위인의 출현은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다. 두루 자락을 드리우고 많은 산물을 제공하는 큰 산을 보라. 여러 높은 봉우리가 경쟁하듯 비호하듯 둘러 서있다. 높은 산은 홀로 높지 않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정치학 박사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김태희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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