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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도 상(賞)이 없고 잘못해도 벌(罰)이 없다니

이제나 좋아질까, 저제나 좋아질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살맛 나는 세상은 오지 않으니 하늘에는 구름만 가득하고 마음에는 답답함만 쌓여갑니다. 구름이 걷혀 활짝 빛이 나는 세상은 언제쯤 올 것이며 답답한 마음은 언제쯤 상쾌한 마음으로 바뀔 것인가요.

동양의 문화전통으로 전해오는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어떤 경우 그처럼 명쾌한 역사와 사회의 진단인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 ‘권선징악(勸善懲惡)’, ‘일벌백계(一罰百戒 )’ 등 수없이 많은 성어들은 그렇게 실천되고 실행만 되어지면 마음이 흔쾌해지고 기쁘고 즐거울 때가 많습니다.

살맛 나는 세상이란 호화찬란한 세상만이 아닙니다. 그저 소박하게 잘한 사람은 칭찬받고, 잘못한 사람은 비난을 받거나 벌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간단한 일이 요즘 세상에서는 되어지지를 않아, 이렇게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마음만 계속되니 웬일인가요. 엄청난 잘못으로 세상이 뒤집힐 지경의 큰 사건이 일어나도 누구 하나 잘못했다는 판정으로 비난받거나 처벌받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고, 자신에게는 매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공(公)과 대의(大義)를 위해 참으로 훌륭한 일을 했건만, 별로 칭찬도 받지 못하고 또 대접도 받지 못한다면, 그게 어디 살 만한 세상인가요.

“대저 사람에게 공무를 담당하게 하는 법은 오로지 권(勸)·징(懲) 두 글자가 있다. 공이 있는데도 상이 없으면 백성을 권면할 수 없고 죄가 있는데도 벌이 없으면 백성들을 징계할 수 없다. 권면하지도 않고 징계하지도 않으면 모든 백성들이 해이해지고 온갖 일이 무너지게 된다. 이것은 모든 벼슬아치나 모든 이속(吏屬)들에 이르기까지 다를 바 없다. 지금에는 죄지으면 벌을 주지만 공이 커도 상은 없다. ······” (吏典:考功)

『목민심서』에서 다산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잘못하면 벌을 주고, 잘하면 상을 주는 일, 이런 것조차 하지 않고서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할 수 있을까요.

근래에 나라에는 국기를 흔들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가 잘못에 해당될 만큼의 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권선징악, 상선벌악이라는 만고의 진리가 빛을 발하지 않는 세상, 이러니 모두가 우울하고 답답해서 상쾌하거나 명쾌한 생활을 못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인사청문회를 시청하다 보면 아무리 큰 죄를 지었지만, 당시는 관행이었으며 지금 생각하니 잘못했다며 국민께 ‘사과’한다는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니, 이런 고관대작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이끌어가게 된다면 어디에서 사회적 정의를 찾을 수 있고 잘못한 사람들이 경각심이라도 가지고 살아간단 말인가요. 철판처럼 두꺼운 얼굴이 아니고서는 고관대작의 지위에 오를 수 없는 세상, 누가 바르게 살고 옳게 살면서 맑은 세상이 오면 대접받으리라는 희망이라도 지닐 수 있겠습니까. 잘못한 사람은 내치고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권면하는 세상이 온다면 더운 여름 날씨도 견딜 만할 것 아닙니까.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석무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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