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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한이 남긴 한국외교의 숙제

1978년 12월 공산당 11기 3중 전회(全會)에서 개혁개방으로 ‘역사적 노선 전환’을 선언한 중국은 이듬해인 1979년 2월 17일 베트남을 전면 침공한다. 북베트남(월맹)과 미국이 전쟁을 펼치던 시기에 앞장 서 북베트남을 지원했던 중국이 공산주의 형제국가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벌인 것이다. 30년 가까운 맹방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통일 이후 빚어진 양국 간 첨예한 국가이익의 대립이 연출한 결과이다. ‘中·베트남 전쟁(혹은 중월전쟁)’은 과거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중국이 대외관계에서 ‘이념’보다는 ‘국가이익’을 더 중시하게 된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물론, 중국이 이와 같은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데에는 미중관계 개선이 한 몫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이 낙후된 자국 군대에 충격을 받고 이후 경제발전과 국방현대화가 포함된 4개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그 뒤로 대외정책에 있어서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주변국 및 서방과의 마찰을 줄이고 국제협력을 적극 추진하는 등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여곡절을 거친 중국은 마침내 2010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G2국가로 등극하게 되었으며, 이제 많은 유력 경제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늦어도 2030년을 전후하여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국방력 증강을 수반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중국의 부상(浮上)에 맞서 새로운 대응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회귀전략을 추진하면서 자신들의 군사적․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파트너로서 일본을 활용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추진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오히려 종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군사강국인 러시아를 동북아 군사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삼아 군사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이렇듯 미․중 간 각축 외에도 2011년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국유화 결정으로 불붙기 시작한 중일 간의 갈등 그리고 과거사 인식 및 독도문제 등을 둘러싼 한중일 3국 간 갈등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오랜 숙제인 북핵문제의 장기화,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고리로 한 북․일 관계 개선 조짐, 그리고 아시아에서 동진(東進)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의 경제협력 확대 등 다양한 형태의 합종연횡이 이루어지면서 동북아시아는 격랑의 파고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35년 전 중국카드를 활용하여 소련을 견제하려고 했던 미국이, 이제는 일본을 앞세우고 여기에 한국을 가세케 하여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고 하는 동아시아 전략구도의 근본적 변화가 자리한다.

이렇듯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공식, 비공식 회담을 가진 후 돌아갔다. 북핵문제에 대한 양국 간 공조방안 확인 외에 한중 FTA의 연내 타결 합의,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미세먼지․재난구호 분야 협력 합의 그리고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 확대 등 합의가 이번 방문의 주요 성과로 꼽히고 있다. 이 밖에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대표되는 양국 간 해상경계선 확정을 위한 협상 재개 합의 역시 향후 지속적 우호관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원만한 타결이 기대되는 사안이다. 양 정상은 또한 양국관계의 미래상으로 ‘4대 동반자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은 외형상 양국 정상 간의 인간적 신뢰와 존중이 묻어난 만남으로 전례 없이 양호한 양국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면 어쩐지 개운하지 않고 불안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도 숨길 수 없다. 그것은 한국과 중국 모두 북핵문제나 일본의 역사도발 및 우경화에 대해 공동의 우려와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변국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안보의 상당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현재 불편한 관계에 있지만 오랜 우방인 일본을 완전히 외면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이와 같은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는 한국외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한국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와 분수령에 처해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전통적인 한미일 3각 동맹에 줄 서주기를 기대하는 미국과, 경제협력에 상응하는 보다 성숙한 정치․외교적 관계로의 발전을 기대하는 중국과의 사이에서 지혜로운 원칙과 공존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는 점을 각인시켜 준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주도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이니시어티브’나 북한의 SOC 확충을 위한 재원조성 측면에서 긍정적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이의 참여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오랫동안 중국을 의식하여 참여에 난색을 표해온 미사일 방어체계에는 한국의 지속적 참여를 종용, 한국을 한미일 3각 안보동맹의 틀에 붙잡아두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결코 한국과 미국의 국가이익이 전적으로 합치될 수만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장기적인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외교원칙을 설정하고 미국과 중국의 이익 균형점을 찾아 서로 양립할 수 있는 능동적인 균형외교가 절실하다. 전통적인 북중관계의 특성을 감안할 때 만일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한중관계가 미국의 견제나 요구에 의해 훼손될 경우, 한반도는 다시 신냉전질서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용의 안보비용과 통일환경 악화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은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한국외교의 반경을 좁히며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못한 채 현재와 같은 대결구조가 지속될 경우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전략구조에 함몰되게 되어 한중관계 악화와 함께 북핵문제의 장기화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외교적 주도권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추원서/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소장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KOLOFO) 소식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추원서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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