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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더라도 절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세요"오영필 감독의 서쪽나라(1) - 어둠을. 향한. 여행

 

2001년, 2003년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각각 3개월, 17개월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한 오영필 감독의 수기를 연재합니다. 2011년 제28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우수상 수상작인 <서쪽나라>(홍성사)의 내용 일부를 수정·보완한 것이며, 탈북현장의 긴박함과 한 개인의 깊은 고민을 전달합니다. 오영필 감독에 대한 소개는 하단의 저자소개와 '관련기사' 참고. 



떠나기 전 강 사장은 지도를 펼쳤다. “국경을 넘으면 강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가야 됩니다. 강에 도착하기까지는 대략 세 시간을 걸어야 해요. 만약 일행 중 일부가 잡히더라도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절대로.”

크리스마스이브. 중국 선양(瀋陽)의 시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거리를 걷는 동안 한국의 아이돌을 모방한 발랄한 십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심가의 한 백화점 앞에 가까이 갈수록 신나는 테크노 음악이 묘한 흥분을 일으켰다. 그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마냥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놀랍게도 무대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모두 한국의 댄스음악이었다. 그 행사를 주최한 회사는 한국의 모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라고 현지 코디가 슬쩍 귀띔해 주었다. 행사 담당자에게 “중국에 부는 한류 열풍에 관한 취재를 하러 왔다”면서 명함을 건넸다. 그는 이곳 선양에 온 지 5년차 된 그 회사의 과장이었다.

그는 회사를 직접 소개하는 것보다 한국과 관련한 행사를 하는 것이 매출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1년 전부터 이 회사는 중국의 젊은 유망주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조금 전 무대에서 춤추던 댄서들이 내려왔다. 선양에서 아이돌의 활동은 어떤지, 팬클럽 규모는 어떤지,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 문화의 매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단순히 경쾌한 리듬만이 아닌, 그 가사에 담겨 있는 자유로운 표현들과 정서를 좋아한다고 했다. 짧은 취재였음에도 중국에서 부는 한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좁은 복도 사이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옌지(延吉)까지는 열네 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행이기에 침대칸 표를 구입했다. 끝없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차 소리는 마음을 한층 감성적으로 흩어 놓았다. 날이 새고 옌지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내릴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역 부근 예식장 앞에 도착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검정색 파카를 입은 강 선교사님이었다. 그를 따라 골목길을 들어가니 5층 건물의 아파트가 보였다. 한 아이가 현관문을 열었다. 탈북자 몇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강 선교사님은 조선족 한 분을 소개했다. 강 선교사님은 신변 보호 차원에서 앞으로 자신은 ‘사장’으로, 중국에서 우리를 도와줄 그 조선족은 ‘김 부장’으로 부르라고 했다. 강 사장은 아침 식사 후 탈북자들이 머물고 있는 또 다른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에도 여러 명의 탈북자들이 모여 있었다. 강 사장은 그들에게 준비해 온 중국인 신분증을 나눠 주었다. 이름, 출생지, 주소 등을 적고 한 사람씩 사진을 찍었다. 그는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국경을 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과 몽골의 국경 지대 둥치(東汽)였다. 저녁 무렵 일행은 완전무장을 하고 강 사장의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떠나기 전 그는 중요한 안전수칙을 상기시켰다.

“반드시 조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 낯선 사람과 절대 대화를 나누지 말 것. 이동할 때 다른 조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것.”
이번 여행에 참여한 북쪽의 인원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재영 씨와 그의 아내, 아들 민호, 딸 민숙. 류미화 씨와 그녀의 딸 경희. 뱃속에 아들을 임신한 수영 씨 부부. 인숙 씨와 그의 어린 아들 원철이. 전일 씨, 인영 씨, 호영 씨 등이다. 특별히 3년 전에 탈북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재영 씨는 북한에 있던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번 여행에 동참했다. 류미화 씨도 그의 동생과 어머니가 이미 탈북해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을 돕는 강 사장은 여행의 모든 경비와 안전을 책임지는 리더였고, 중국 국적의 조선족인 김 부장은 이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무를 담당하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 나는 이들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후 여섯 시. 우리는 하얼빈(哈爾濱) 행 열차에 올랐다. 임산부는 몸이 힘들었는지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쉽게 잠이 들었다. 안전을 확인하고 자리에 돌아와서야 강 사장은 긴장을 풀었다. 그는 젊은 시절 호텔업에 종사하여 승승장구하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사업의 실패로 가정의 위기까지 경험하고서야 하나님께 돌아온 그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중국을 여행하던 중 국경 부근에서 식량난으로 굶주리다 중국에 건너 온 ‘꽃제비’들을 보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가 경험한 탈북자들의 실상이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선한 부담으로 다가와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탈북자들의 사연들과 목숨이 위태로웠던 체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대화 말미에 이렇게 위험한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듣자 반사적으로 내 마음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님, 저도 당신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머리가 아닌 입이 아닌, 나의 마음으로 나의 손으로.”

여행 둘째 날.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얼빈 역 앞에 두 개의 고층건물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일행의 표정엔 피곤함이 역력했다. 일단 몸을 녹이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다. 완자가 들어 있는 따끈한 국물을 마시니 비로소 허기가 느껴졌다. 이번 여행은 어찌 보면 허기를 채우는 여행일지 모른다. 육신의 허기, 자유의 허기 그리고 영적인 허기까지 말이다. 중간 도착지인 하이라얼(海拉爾)에 가기 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식당을 나와 삼삼오오 택시를 탔다.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 호텔에 묵기로 했다. 네 개의 방을 잡고 네 명씩 한 방을 사용했다. 배터리를 충전해 놓고 촬영한 테이프는 빼서 가방에 보관했다. 이틀 만에 60분짜리 테이프 여섯 개를 찍었다. 정신을 집중해 촬영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눕혔다. 숨 가쁘게 진행되던 그간의 상황들을 머릿속에서 되감아 보았다.

이번취재에 참여하게 된 것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우현 선배의 권유 때문이었다. 방송 프로듀서인 그는, 한참 방황하던 20대 중반 내 신앙적 감수성에 큰 영향을 끼친 멘토와도 같은 분이다. 내수동교회 청년부 시절 영화에 심취해 있던 나는 선배가 소개해 주는 영화 목록을 빠짐없이 챙겨 보았을 뿐 아니라 신학,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그의 글에 푹 빠져 있었다. 선배를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종종 카페에 모여 신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겨울 날 그는 내게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좋은 영화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서툴게라도 무언가를 찍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거야.”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용산전자상가에서 빅터 90이라는 소형 카메라를 샀다. 내 손에 카메라가 있기 전과 그 이후의 삶은 확연히 갈렸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면서 맨눈으로 볼 때는 쉽게 지나치던 길가의 전단지, 담배꽁초, 폐지 줍는 할머니, 거리를 떠도는 도둑고양이 등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킬수록 세상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 그렇게 촬영한 습작들을 그와 함께 보면서 편집이란 것을 배웠다. 나의 공식적인 첫 작품은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재완이 형의 하루 일상에 관한 <어느 날>이란 작품이다. 그 작품이 몇몇 영화제에 상영되는 것을 계기로 취미로 시작했던 이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2001년 겨울 KBS <인간극장>이란 휴먼다큐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였던 우현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탈북 소녀에 관한 다큐를 제작 중인데 그 소녀의 한국 입국을 도왔던 선교사님께서 중국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국행을 카메라에 담아 탈북자에 관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내용의 전화였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은 자연재해로 국가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어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그 와중에 중국과 접경 지역에 살고 있는 함경도 주민들을 중심으로 1차대규모 탈북 현상이 일어났다. 탈북자들의 심각한 인권유린의 실상들이 국내외 언론에 집중 보도되면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NGO 단체들이 생겨났다. 탈북자들에게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주력하는 곳, 탈북자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곳, 신앙 훈련을 하여 다시 북한으로 파송하는 곳, 한국행을 준비하는 탈북자들을 돕는 곳 등 모양은 다르지만 동기는 모두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의 표현이었다.

우현이 형의 제안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괜찮은 작품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탈북자를 취재하는 순간 나도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강 선교사님의 연락처와 주소를 받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알고 보니 강 선교사님은 우현이 형이 만드는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의 출연자이기도 했다. 탈북자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수고에 작품을 시작하기로 했다. 선교사님은 내게 출국 날짜를 알려 주었다. 곧바로 여행사를 통해 여권을 준비하고 내가 속한 프로덕션 관계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가는 길에 중국에 부는 한류 열풍에 관한 취재를 부탁해 그 일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새벽, 옌지에 도착하여 강 선교사님과 합류하였다.

호텔 1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들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웠다. 아이들은 이번 여행의 심각함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호텔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경희가 머리를 자르고 싶다며 전일 씨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이렇게 긴장되는 상황에서 머리를 자르겠다니 아이들은 두려움을 모른다. 객실에 들어갔더니 임산부를 중심으로 서너 명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솔직히 이번 취재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예수님을 영접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이었다. 이곳에 온 첫날부터 이들은 강 사장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는 탈북자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가옥을 구입하여 기본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했다. 탈북자들은 그곳에서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인간의 타락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인한 구원에 대해 배우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이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은 육체적 고난으로 인한 심령의 가난함 때문인 듯했다.

호텔을 나서기 전 김 부장이 내 가방을 프런트에 맡기자 호텔 직원이 보관증을 건넸다. 다음 행선지는 중국의 내륙 도시 야커스(牙克石)였다. 매표소 앞에서 역무원들이 꼼꼼하게 짐을 검색했다. 그것을 본 일행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될까 두려워 역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얼마 후 재영 씨와 그의 가족이 매표소 앞에서 머뭇거리다 표를 끊고 역 안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많지 않아 플랫폼을 향해 뛰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김 부장이 역무원에게 물어 야커스 방향을 찾았다. 조금만 늦었다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전일 씨가 문을 열었다.
“원철이네 가족이 기차를 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 떠날 것인가? 강 사장의 굳게 다문 입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일단 먼저 떠납시다.”

사정은 이랬다. 전일 씨가 원철이네 가족의 표를 원철이에게 주었는데 그 표를 원철이가 재영 씨 아들 민호와 장난치며 놀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이번 일로 일행들의 심리가 동요되지 않도록 강 사장은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김 부장에게 지시했다. 김 부장은 하얼빈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철이 가족을 하룻밤 재워줄 것을 요청했다. 얼마 후 김 부장 친구로부터 원철이네 가족을 만났다는 연락이 왔다. 옌지를 떠난 지 3일 만에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 하이라얼에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인 둥치로 가기 전 하룻밤을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호텔에서 강 사장은 지난 팀이 국경을 넘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영상을 보는 이들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국경 부근 이별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는 서러움의 눈물인 듯했다. 전일 씨는 지금의 심정을 묻는 질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엔 택시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았다. 잘 빠진 벤츠 옆에 느릿하게 걸어가는 나귀의 모습이 보였다. 과거와 현재의 중국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 날 새벽 하얼빈 역에서 놓친 원철이네 가족을 기다렸다.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파 속에서 그들을 확인하는 순간 반가움의 탄성이 흘러 나왔다. 호텔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수영 씨는 그들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식사대용으로 김 부장이 컵라면과 빵, 소시지, 사과 등을 푸짐하게 샀다.
“국경을 넘으면 강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가야 됩니다.”
강 사장은 다시 지도를 펼쳤다.
“강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세 시간을 걸어야 해요. 만약 일행 중 일부가 잡히더라도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절대로.”
일행들은 서로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강 사장이 대표 기도를 했다.

“주님, 이들은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의 여정은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여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자 하는 영적 순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가운데서 지켜 주신 것처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들의 삶을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이라얼에서 둥치까지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흔들리며 네 시간이나 달렸다. 달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드넓은 벌판의 광활함과 해질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느닷없이 신세한탄이 튀어 나왔다. ‘이토록 평화로운 시골 거리를 이들은 왜 비장한 심정으로 달려야 할까?’ 벌판만 보이던 도로 너머로 희미하게 도시가 보였다. 도시가 점점 커질수록 평온했던 마음이 흔들렸다. 강 사장이 둥치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버스에서 내리자 사방엔 어둠뿐이었다. 김 부장은 앞쪽에서 길 안내를 했고, 강 사장은 중간 지점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전체를 조율했다. 그는 일행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다. 강 사장과 김 부장, 재영 씨 그리고 나는 떠나는 이들을 걱정하며 한 사람씩 포옹을 했다. 하늘의 별은 더없이 반짝거렸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경상도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듯 북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이웃을 만났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 위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이다. 그 위험 속에 자신들이 원하는 안정된 삶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그렇게 그들은 밝은 빛이 숨어 있는 어둠을 향해 조금씩 소멸되어 갔다.


오영필. 다큐멘터리 감독 및 작가이다. KBS 뉴스 투데이, 브이제이 특공대에서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고, 2001년, 2003년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각각 3개월, 17개월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했다. 저서로 <서쪽나라>(홍성사, 2011, 제28회 한국기독교 출판문화상 우수상)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금지된 여행>(2009년, 제 7회 기독교 영화제 대상)을 제작했다.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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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2-15 15:51:08

    하이라얼에서 둥치까지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흔들리며 네 시간이나 달렸다. 달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드넓은 벌판의 광활함과 해질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느닷없이 신세한탄이 튀어 나왔다. ‘이토록 평화로운 시골 거리를 이들은 왜 비장한 심정으로 달려야 할까?’   삭제

    • hephzibah 2012-02-15 15:49:46

      “주님, 이들은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의 여정은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여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자 하는 영적 순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가운데서 지켜 주신 것처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들의 삶을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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