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국내
찬양사역자 주혜련 씨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 진출했을 때, 히딩크 감독의 말이다. 선수와 국민 모두가 ‘이만하면 되었다’는 듯 샴페인을 터뜨리려 할 때, 여기에 만족하지 말라며 다시 긴장의 고삐를 쥐었다.

10일 저녁 목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주혜련(33)씨도 당시 그 경기장에 있었다. 2002년 탈북해 막 남한을 둘러볼 때였다. 표가 없어 경기장 주변만 서성이다 환호성 소리에 끌렸을까, 경기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경기장 내부 골대 근처까지 이르렀다. SBS중계팀 사이에 끼어 카메라를 메고 들어간 것. 역사적인 경기를 코앞에서 본 것이다.

이제 막 탈북한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그녀의 이런 당돌함, 자신감이 오늘의 주혜련을 만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일주일에 3일은 국방부에서 라디오를 진행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화장품 공장에서 일한다.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공장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이익이 꾸준하다. 주말에는 부산까지 내려가 찬양 사역을 한다. 탈북자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노래도 했다. 극동방송 복음성가경연대회에서도 본선에 진출했다. 탈북자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이쯤이면 잘 정착하고도 남는 듯한데, 그녀는 인터뷰 내내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했다.


   
▲ 이쯤이면 잘 정착하고도 남는 듯한데, 그녀는 인터뷰 내내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했다.


- 이제 막 탈북한 20대 초반의 여성이 티켓도 없이 월드컵경기장에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남한 사회를 너무 얕잡아 본 것 아닌가?
가족들과 내기를 했다. 경비가 삼엄했다. 계속해서 표 검사를 하더라. 어떻게 들어갈까 경기장을 둘러보는데 취재팀은 표를 검사하지 않고 들어가게 했다. ‘이거구나’ 싶어서, SBS 취재팀이 들어갈 때, 카메라 하나 들고 일행인 것처럼 들어갔다. 박지성에게 싸인볼도 받았다. 50만원에 팔았다. 박지성이 더 인기를 끌줄 알았으면 더 보관할 걸 그랬다. 아버지께서 그게 뭐냐고 자꾸 버리라고 하시는 바람에…. 어쨌든 남한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그랬는지, 여기(남한)도 별것 아니라는 것 과시하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 원해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응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때 살던 집은 100평이었다. 지금은 28평에 산다. 남한에 와서야 이런 현실을 알고, 말도 안 된다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 자의는 전혀 없었나?
나중에 아버지에게 설득되기는 했다. 남한에 가면, 남한 연예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당시 <첫사랑>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배용준에 꽂혀 있을 때다. 배용준 볼 수 있겠구나, 했는데 와보니까 역시 거짓말이었다.


주 씨는 어린 시절 100평이나 되는 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어릴 때부터 성악을 배웠다. 북한은 재능이 있으면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키워준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전문가들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 주 씨도 북한 양강도 9군단 선전대에서 성악 가수로 활동했다. 김정일에게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을 받은 적도 있다.

- 군대의 선전대에서는 어떤 노래를 불렀나?
노래가 전투적이다. 감정에 맞추는 노래를 쓰거나 부르지 않는다. 주로 김정일 찬양하는 노래나 전투적인 노래를 듣고 부른다. 전쟁에 대한 노래도 많이 한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평화롭다. 북한은 아직도 칼을 갈고 있는데…. 긴장감이 다르다.

- 남한 주민들은 전쟁에 대한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북한처럼 너무 긴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남한도 반대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 이름은 다 알면서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의 희생자 이름은 모른다. 연예인 이름만 안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군대에 가겠나. 청소년들 50%가 연예인 되겠다고 하더라. 한명도 군인이 되겠다는 사람은 못봤다. 느슨해도 너무 느슨하다는 생각이 든다. TV도 문제이다. 채널마다 연예인들만 나온다. 어느 프로 하나 군인들 조명하는 게 없다. 다 사랑 이야기이다. 천안함에 대한 이야기는 만들 수 없을까? 북한은 80%가 전쟁영화이다. 6.25때 전쟁영화이다. 남한 사회는 돈이면 최고인 것 같다. 돈 버는 연예인도 나라가 있어야 연예인인데….

- 군대, 군인에 대한 애착이 있을 것 같다.
북한에서 군인이었으니 당연하다. 5년간 군생활을 했다. 권총 250미터 사격에 소질이 있었다. 권총 분해 결합으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 없을 거다. 남한 군대에 위문공연 갔을 때 연대장님과 10만원을 걸고 그쪽 부대에서 분해 결합이 제일 빠른 장교와 대결한 적이 있었다. 그분이 1분 5초 나왔고, 내가 58초 나왔다.

- 전 부대 비상사태 감이다. 북한 여군 출신이 58초 나왔다는 게 알려지면 모든 군인들이 그 시간안에 맞춰야 했을 거다.
그냥 조용히 넘어갔는데 나중에 <스타킹> PD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 있었던 군인이 제보했던 것 같다. 전 부대에서 제일 빠른 사람과 나를 대결시킨다 했다. 나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리셨다. 그게 뭐 자랑이냐고…. 결국 못나갔다. 후회한다.


   
▲ 찬양사역자 주혜련 씨. “한 사람이 쏜 화살은 한 사람의 심장만 뚫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부른 시와 노래는 만 사람의 가슴을 뚫을 수 있다.”


이렇듯 다재다능한 주혜련 씨이지만, 본업(?)은 찬양사역자이다. 극동방송 복음성가경연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해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1등 하신 건가요?” 넘겨짚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참아왔던 한(恨)을 쏟아냈다.
“13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고, 상이 8개였다. 한 사람이 두세 개씩 상을 휩쓸어가기도 했는데, 나는 하나도 못 받았다. 교회에서 200명이 응원을 오고, 동생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여럿 응원을 오셨는데 너무 창피했다. 상을 못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북한발성법이 심사위원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단다. 북한발성법이 복음성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통일을 대비한다면서 북한의 발성법이 감점의 이유라니, 너무 속상했다.”


- 북한 발성법과 남한의 발성법이 어떻게 다른가?
한국은 배호흡과 후각호흡을 주로 쓰는 데 북한은 흉부호흡과 배호흡을 같이 쓴다. 그게 좀 다르다. 그래서 북한의 노래 <휘파람>은 장혜진보다 내가 더 잘 부를 수 있다. 노래 실력은 둘째 치고,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을 많이 흘린다. 진정성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성가경연대회가 <나는 가수다> 방식의 심사였다면, 내가 1등이었을 것이다.

이런 주 씨의 자신감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지날 때였다. 어디선가 자신의 노래가 들렸다. 어느 노숙인이 주 씨의 노래 <주님 얼굴 비추소서>(성가경연대회 참가곡)를 틀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 노래 좋아하시냐는 주씨의 질문에 그의 대답이다.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고, 이 노래 틀어놓으면 사람들이 돈을 많이 줘~”

이 노래는 다름 아닌 주 씨의 자작곡이다. 북한의 주민들을 떠올리며 만들었으니, 더욱 절절하게 들리는 게 당연하다.

깊은 골짝 캄캄한 어둠속에
목메여 부릅니다 소리쳐 부릅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그 어디로 가랍니까
날 찾는 주님 음성 얼마나 애타실까
날 향한 주님 마음 그 얼마나 아프실까
용서해 주옵소서 긍휼내려 주옵소서
오 주여 오셔서 우리를 구하소서
오 주여 오셔서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에 빛난 얼굴 이곳으로 돌리사
우리로 영원히 구원받게 하소서
우리로 영원히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영원히 찬양하게 하옵소서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쏜 화살은 한 사람의 심장만 뚫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부른 시와 노래는 만 사람의 가슴을 뚫을 수 있다.”
주 씨는 “찬양사역자로 활동하다가,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봉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찬양사역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이나 탈북자를 돕기 위해 화장품 공장도 더욱 키워야 한다. 충분한 듯한 그녀가 아직도 배가 고픈 이유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범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hephzibah 2012-02-15 14:50:55

    “한 사람이 쏜 화살은 한 사람의 심장만 뚫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부른 시와 노래는 만 사람의 가슴을 뚫을 수 있다.”
    대단한 여성 주혜련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