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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외교' 통해 한국외교를 재설계하자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4.06.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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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세우기하는 미국과 중국
최근 동아시아 곳곳에서 해상영토와 EEZ, 과거사문제 등을 둘러싸고 외교적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들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유례없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게 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 특히 제2의 경제대국에 오른 중국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넘보고 전후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의 변경을 시도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도광양회, 유소작위를 넘어 적극작위(積極作爲)로 나아가며 현상변경을 시도하는 데 비해, 미국은 금융위기에 이어 재정적자의 누적 때문에 국방예산을 2013년부터 10년 동안 4,500억 달러 삭감해야 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채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미국은 삭감된 국방예산을 메우기 위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의 국방자원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우호국들과 함께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해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09년 1월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5번씩이나 아시아를 순방한 데서도 드러난다. 특히 한국은 4번씩이나 방문함으로써, 한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중심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들어 본격화된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 구축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체계로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증진에 힘쓰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후 1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3차례나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5월26일 왕이 외교부장이 방한한 데 이어 오는 7월 3~4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서울을 국빈 방문하여 네 번째의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최근 동아시아 질서재편 움직임과 관련하여, 미국은 한국에 대해 줄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2013년 12월 6일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베팅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라면서,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중국도 한국의 미・일 주도 MD 참가문제와 관련하여 경계 자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5월28일 중국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이 “한반도에 MD를 배치하는 것은 지역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이롭지 않다”고 언급한 데 이어, 다음날 <신화통신>을 통해 “한국이 MD를 받아들일 경우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주도권 경쟁을 강화하면서 한국에 대한 줄 세우기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미·중 양대 강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으로서는 미·중 양대 강국 사이에서 외교적인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중견국가에 걸맞는 새로운 외교패러다임의 필요성
동아시아 질서재편 움직임은 21세기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이 기존 외교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외교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의 배경에는 한반도 주변환경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력의 변화와 그에 따른 외교적 역할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력 신장은 외교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한국은 구한말의 취약국가 상태에서 나라를 잃었고, 해방 후 오랫동안 약소국가의 지위에 있다가 중약국가를 거쳐 1990년대 중반 무렵 중견국가의 지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국제적 위상으로 중견국가의 지위에 있었지만, 우리의 외교패러다임은 여전히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약소국가 외교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었다.

기존의 외교패러다임을 변화시키려는 첫 번째 움직임이 바로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또다시 미국 일변도 외교로 후퇴했다. 심지어 냉전시대에도 하지 않던 한·일 군사협정의 체결 직전까지 갔다. 이러한 퇴행적인 외교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균형외교로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청와대



균형외교의 방식으로 『조선책략』 식의 연미화중(連美和中)과 같은 절충방식이 제시되고 있다. 『조선책략』은 방아책(防俄策)으로서 러시아라는 주적을 상정하고 있지만, 지금은 미·중 어느 쪽도 주적으로 삼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 압력을 받으며 한·미 전략동맹과 한·중 전략협력동반자관계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정 강대국에 대한 편승을 통해 지역의 균형을 취하는 전통적인 외교방식이나 등거리외교는 미국과 중국이 적대관계로까지 가지 않고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현 국제정세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복잡하고 중층적인 동아시아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패러다임으로 제시되고 있는 ‘복합외교론’이나 ‘중첩외교론’은 동어반복적이거나 형용모순적이어서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나라에 새로운 외교패러다임의 모색이 절실하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주도외교’(self-directed diplomacy)를 제창하고자 한다. 자기주도외교란 정부가 외부정세에 휘둘림 없이 스스로 국가목표를 정하고, 국가이익의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별로 외교전략을 수립해 적절한 외교수단을 동원하며, 외교활동의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자기주도외교는 자주외교(self-reliance diplomacy)와는 동맹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자주외교는 동맹관계를 부정하고 자기 스스로의 힘에만 의존하는 외교패러다임이다. 이에 비해 자기주도외교는 동맹에 의존하는 일방적인 외교는 거부하지만, 건전한 동맹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현 시기 ‘자기주도외교’의 원칙과 방향
냉전시기 동아시아 질서는 전후처리를 위한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기본 틀이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에는 1951년과 1954년의 미·일 안보조약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1961년의 북·중 및 북·소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등 미·소 냉전 상황을 반영한 대결의 축, 그리고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 1972년의 중·일 수교공동성명과 미·중 상하이 코뮈니케 등 화해·협력의 축으로 재편되었다.

그런데 냉전종식 이후 미·일 안보조약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유지된 가운데 북·중 및 북·소 조약이 사실상 와해된 데 이어, 한·일 청구권의 해결을 둘러싼 이견과 센카쿠열도의 국유화에 따른 갈등으로 한·일 기본조약과 중·일 수교공동성명이 크게 흔들리고, 중국의 부상 이후 “아·태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힌 미·중 코뮈니케의 정신도 크게 후퇴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동아시아 위기의 본질은 기존의 체제는 무너졌는데 아직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가 마련되지 않은 데 있다. 최근 중국의 CADIZ 일방 설정과 동·남 중국해에서의 해상영토분쟁,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및 독도영유권 주장, 과거사 부정 등은 기존 동북아 질서를 바꾸려는 대표적인 현상변경 시도이다.

그런 점에서 현 시기 한국이 추구해야 할 자기주도외교의 첫 번째 대안은 ‘현상유지+α’이다. 현상유지란 동아시아 화해·협력의 축을 유지하는 것이고, 알파(α)란 냉전시대 대결의 축을 변화된 국제정세에 맞춰 부분적으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현상유지되어야 할 동아시아의 현안들에는 한·일 기본조약에 기초해 이루어졌던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의 존중·이행, 중·일이 분쟁중인 센카쿠열도/댜오위섬 문제의 원상회복 조치(일본의 국유화조치 취소, 중국의 센카쿠열도 주변해역 진입 자제 선언)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세력균형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증강과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MD) 확대계획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부분적이나마 수정해야 할 국제질서란 동아시아의 질서를 규정한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체제에서 빠져 있는 부분(독도문제, 센카쿠열도)과 새롭게 제기된 과제들(북핵문제, MD 배치문제, EEZ설정 등), 그리고 냉전시대의 유산인 각종 안보조약 등 대결의 틀을 점차 협력의 틀로 전환하는 외교적 노력이 요구되는 대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변화된 국제정세를 반영하는 부분적인 수정[α]의 경우, 일방적인 추진보다는 ‘당사국들의 협의에 의한 평화적 해결’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양측의 이견 때문에 합의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기존의 관리권을 존중하면서 대화를 계속한다.

현 시기 우리의 자기주도외교가 취해야 할 두 번째 대안은 ‘협력적 남북관계’의 구축이다. 대외적으로 ‘현상유지+α’의 입장을 견지함과 동시에, 본격적인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지기 전에 ‘협력적 남북관계’의 구축에 나서야 한다.

우리 정부는 ‘현상유지+α’ 원칙을 통해 동아시아 정세를 안정화시켜 가면서, 한국이 미국, 일본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남북이 긴장과 대결관계를 지속하는 조건에서는 냉전시기 대결의 축을 깨트리며 변화를 지향하는 데 있어 필요한 동력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결코 현상유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협력적 남북관계는 자기주도외교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협력적 남북관계’는 민족자결의 원칙에 기반하여 주변 강대국의 한반도문제 개입을 최소로 만들기 위한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 향후 동아시아 질서재편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 시기 우리의 자기주도외교가 취해야 할 세 번째 대안은 ‘동아시아 중견국 협의회’의 창설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의 주요국가들이 참여하는 중견국 협의체를 창설하여 역내 분쟁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중재와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아시아 중견국 협의회는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줄서기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효한 외교수단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중견국 협의회를 주도함으로써 강대국들의 이해 조정과 약소국들의 이해 반영은 물론 동아시아 신질서 형성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선택만이 남았다. 강대국들의 각축 속에서 어느 쪽에 줄 설지 고민만 한다면 분단의 극복은 요원해지고 주변강대국의 압력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반면에 우리가 외세개입의 여지를 배제하고 중견국 외교를 강화해 나간다면, 강대국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국제질서 재편에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한국외교의 재설계, 이것이 국가시스템 개혁의 기초일 것이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joes@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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