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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그리고 함석헌 (1)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동영상 강연 내용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중요한 요지는 그의 역사해석의 문제이고, 거기에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색깔이 채색되면서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습니다. 후에 이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만, 그에 앞서 역사의 해석과 관련해 함석헌 선생의 이야기를 잠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 함석헌 선생(왼쪽)과 문창극 총리 후보자

스스로를 ‘빈들에 외치는 소리’, ‘영원의 빈들에 메아리를 울리는 죽지 않는 외치는 소리’로 못박은 함석헌은 일제의 황량한 시대를 거쳐, 독재와 분단의 시기를 통해서 우리 역사에 거칠 것 없는 <하늘의 야성(野聲)>을 울린 이였습니다. 그는 20세기가 시작하는 첫해인 1901년에 태어나 1989년, 88세의 장수를 누리면서 혹독한 세월을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우박처럼 우리의 영혼을 몰아치고 울리며 살다 간 사상의 거인이었으며, 역사의 맥을 짚어내는 장엄한 시(詩)로 혜안(慧眼)의 빛을 우리의 어두웠던 정신에 비춘 민족 시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허연 수염과 하얀 두루마기 자락을 펄펄 날리면서, 고대 동양의 '선인(仙人)'과 같은 풍모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살아 움직이는 예언자로서 우리의 역사에 우뚝 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나타나면, 그 자리는 온통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고, 그가 발걸음을 딛는 자리는 역사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뜨거운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성서는 하늘의 뜻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읽어나가는 책이 되었고, 그를 통해 우리들의 존재는 그 내면에 완성의 힘을 가진 <씨알>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노자와 같은 고대 동양의 지혜는 새로운 육성을 가진 깨우침이 되었고, 편협했던 기독교 신앙에 우주와 인간을 온통 하나로 아우르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그가 일구어놓은 정신사의 흔적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1935년경, 그가 서른다섯의 역사 선생으로 정주 오산학교의 교편을 잡았던 시절,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초고로 내놓습니다. 이 글을 그의 신앙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역사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성과로 작성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글을 발간하지 못한 채 해방된 조국의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데, 1950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책으로 서울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더욱 연조를 더해가면서 1965년 다시 본래의 제목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재출간하였고 2009년 그의 서거 20주년을 맞아 “함석헌전집30권” 안에 새로운 개정판으로 오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함석헌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리게 된 저서인 이 책은 믿음의 눈으로 본 조국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어떤 계시와 메시지를 주시려는 가를 깨우치려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은 무슨 전문적인 역사저술도 아니고, 엄격한 역사학 방법론에 기초한 학술서적도 아닙니다.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시절,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자신의 민족사를 알게 하려는 일념 하나와, 그저 사실을 엮어나가는 역사책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두신 뜻까지 알게 하려는 마음이 이 책을 탄생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책은 그리하여, 함석헌의 사색의 열매였습니다. 평안도 시골구석의 한 초라한 민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자신의 혼과 열을 다하여 쏟아낸 이 글은 그러나 이후 무수한 젊은이들에게 조국의 역사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심오한 뜻과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책이 되었던 것입니다. 1930년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그야말로 세계적인 공황이 휩쓸고 이에 따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참기지화 하여 중국을 향해 총칼을 들이대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온 민족이 절망하고 갈 길을 잃은 채,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젊은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고난의 경험이 도리어 우리를 새롭게 살려내게 된다는 것을 깊이 깨우치고, 그 영감을 사람들에게 나누었던 것입니다. 고난이란 짐이며, 그래서 조국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던 젊은이들은 이러한 그의 역사해석에서 뜨거운 정신과 만났고, 그 정신의 감화로 잠자던 영혼이 일어나 역사의 현실을 감당하는 존재가 되어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모든 역사의 주체를 ‘씨알’로 규정하고 이 존재가 역사의 밭에 뿌려져 하나님 나라를 일구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비유를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변화의 현실을 의미했고, 당당한 자아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민족사를 개간하는 주체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씨알들이 자라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민족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을 꿈꾼 그는 그래서 이 씨알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장준하와 손을 잡고 벌였던 <사상계>를 통한 싸움은 바로 이 씨알의 힘을 억누르려 했던 권세와 감연히 맞선 일이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걸쳐, <사상계>는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호흡과도 같은 출판물이었습니다.

그가 사상계에 발표하여 정치적 논란과 탄압을 불러일으킨,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이 역사의 현실에서 어떤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하려고 했는지 일깨우는 글이었습니다. 오랜 일제의 속박 속에서 당장의 생존이 급급했던 우리 민족, 그리고 다시 그 일제의 악령을 되불러온 독재의 사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생각하며 사는 여유와 힘을 잃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의 명령과 지시, 족쇄에 갇혀 마치 무뇌(無腦)적 존재처럼 살게 된 것을 그는 탄식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과 기계가 되어가고 있던 민족의 현실 앞에서 그는 용기 있게 “아니다!”를 외쳤고, 그 힘을 민족사의 전진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일에 진력을 다하였습니다.

한종호 / 꽃자리출판사 대표

한종호  amab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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