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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모순성경에서 해결받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값지고 보람 있게 살고 싶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고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처럼 김정일 앞에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후, 나의 인생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몸은 김정일과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다.  김정일이라는 사람을 혁명가, 공산주의자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충성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장군이나 수령은 고사하고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귀중히 여길 줄 모른다면 이미 사람이 아니다.  김정일의 생명이 귀중하면 인민의 생명도 귀중하다.  생명의 귀중함의 가치는 똑 같은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는 신학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가장 어려울 때, 마지막 한계를 느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종교성이 나타나는 것 같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너무나 속상해서 점을치는 어떤 늙은 할머니를 몰래 찾아가 두 번씩이나 점을 본 적이 있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갔는데 점괴가 같지도 않았고 한사람은 나보고 장성별까지 단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그 점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고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으니 북한군 장성에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장성별을 단 것이 아니겠는가.

 

허무의 극단에서 자살을 생각하다

공산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북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비록 물질적 풍요를 모르고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살은 반역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누구도 결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죽은 사람 본인만 반역자면 괜찮은데 대를 이어 그 후손들도 반역자가 되니 자살이라는 것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정일의 전사로 있는 한 앞날의 희망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인생의 허무함은 점점  더 극에 달했다.  희망이 있다고 해도 당적 원칙과 혁명가의 양심, 공산주의자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실현될 수 없었다.  그것은 죄악이며, 이기주의 였다.  하나님도 이기주의를 싫어하신다.

이상하게 내가 하던 일이 싫어졌고 권태감이 밀려왔고, 평양과 북한의 자연, 사람, 모든것이 싫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해결책도 없었다.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순간적이나마 대한민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99년 2월 14일 김정일의 생일을 이틀 앞두고 황장엽 선생이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가 한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상급당의 통보를 받는 순간 "북한은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도 북한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내가 지금 대한민국으로 와 있는 것은 황장엽 선생이 대한민국으로 온 사건이 결정적 역활은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선물로 받은 성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인 1997년 1월 7일 이었다.  당시 나는 술과 담배를 제일 좋아했다.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고,  담배가 없으면 옆집에서 얻어다 종이에 말아서라도 피워야만 했다.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국가보위부 외사과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와는 이래저래 만나면 자연히 술 한잔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또 술을 마실땐 못하는 말이 없는 흉허물 없는 친구였다.  그날도 이 친구는 얼마 전에 중국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저녁에 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중국에 갔다 왔으니 무슨 선물은 하나 있을 것이고, 중국술이 좋다는데 혹시 술이나 좀 가지고 왔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그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그 친구가 우리 집으로 왔는데 물론 기대했던 대로 술도 가져오고 담배도 가져왔다.  우리는 곧바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당시 북한의 형편 즉, 망해가는 북한을 놓고 한탄하며 중국에 대한 부러움으로 김정일 정치에 대한 불만을 서로 토해내며 오랫동안 술을 마셨다.

그날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 친구는 남조선에서 온 책 하나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순간 좀 긴장했지만 호기심에 그러겠다고 했다.  바로 그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잡지 <과학 동아>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와서는 <과학 동아>라는 잡지를 보지 못했다.  그 책에서 나는 한국의 자동차 시장의 놀라운 발달에 대해 말로만 들어왔던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카디아 승용차와 그랜저 승용차 사진이 그 잡지에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한전에서 근무하는 과학기술 일꾼들이 서해안 지대에서 서해바다 염기로 전력 설비들이 녹쓰는 것을 방지하는 심포지엄을 하는 사진과 글도 보았다.

친구는 뒤이어 '라이프 성경'을 주었다.  사실 성경은 받았지만 그것이 무슨 책인지는 전혀 몰랐다.  엂핏 들추어 보니 소설책도 아니고 좀 의아했지만 일단 받았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물론 탈북자들까지도 북한, 그것도 평양에서 친구들 통해 성경을 받아보았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놀란다.  그래서 특히 어떤 탈북자들의 경우는 이런 이유로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있있다.  그러나 자신이 살던 북한이지만 북한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북한에 실제로 지하교회가 있는가"였다.   물론 나는 지하교회를 가본 적은 없다.  지하에서 몰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나 같은 사람에게 그 누가 알리겠는가.  그들이 제일 경계하는 인물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러나 몰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과 그룹들이 노출되어 처형 받은 자료들은 가끔씩 보았다. 

나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북한에서 분명 그루터기 신앙인들이 있으며 또 새로운 세대로 신앙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외부에서 교육을 받은 신앙인들과 지도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지하교인들과 지하교회가 생겼고,  교회들이 날로 부흥 하고 있다.  중국에서 예수님을 만나 교육을 받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복음 전파 사역을 하다가 노출 되어 감옥생활을 하다가 탈출하여 한국으로 온 탈북자 신앙인들이 그것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북한의 지하교인들 중에 국가보위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심문하고 처형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바로 보위부이다.  성도들을 잡아서 심문을 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비추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읽는 성경을 빼앗아 갈 때에도 다만 한 자라도 말씀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성도들을 처형하는 현장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벼 주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후를 바라보는 것도 보위부 사람들이다.

사실이 그렇다.  나에게 성경을 전해준 사람도 보위부 사람이며 또 탈북신학생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보위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와서 신학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증언들을 통해 북한 보위부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한때 김정일이 북구 국경 연선을 통해 성경이 국내에 자꾸 들어오니 이를 단단히 막으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때 군에서도 모든 군인들에게 특별 강연을 했다.  그 때 나는 성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강사로 동원된 적이 있었다.

내가 받은 남조선의 <과학 동아> 잡지는 세번 보니까 다시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래서 다음으로 펼쳐 든 것이 성경이었다.  성경인지도 모르고 책이니까 펼쳐 보았고 그것도 남조선에서 온 것이니까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보는 순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읽은 창세기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태초에 천지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1절에서부터 강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인생에 갈등을 겪어도 이 책만은 다시는 읽지 말아야 겠다고 결론 내렸다.  하나님이라는 그 이름때문에도 성경의 성격을 알 수가 있었고 또 북한 보위부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아내고 잡아내는 책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던 만큼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성경을 전해준 친구의 운명을 생각해서라도 신고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친구는 나를 믿고 내게 성경을 준 것인데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깊은 곳에 감추어 놓고 보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신경이 온통 선경이라는 책에 가 있었다.  부대에 나가서도 그 책에 대한 생각, 집에 들어와 자리에 누워도 그 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 "도대체 그것이 무슨 책인데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거기에 나오는가"라고 물으니 무조건 보기만 하라는 것이다.

나는 사흘을 고민하다가 하여튼 책이니까 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시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였던 나, 그리고 무신론자였던 나에게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다가오지 않을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말씀으로 사물 특히 사람까지도 지음을 받았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고, 또 그 당시 사람들이 구백 몇 년을 살면서 자식을 낳았다는 현실성 없는 그야말로 신화 같은 내용들은 도저히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성경을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특히 레위기 부분에 가서는 너무나도 제사법이 많아서 이해는 커녕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성경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영을 부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다시 깊숙한 곳에 성경을 감추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사흘이 지났는데 그 책에 대한 관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책이니까 끝장을 내자는 생각으로 다시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거지로 읽었다.  책을 낮에 읽기는 불가능했고 밤에 집에서 그것도 가족들 모르게 혼자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책은 재미없었지만 보고 싶은 생각은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원래 나는 책을 보는 방법이라야 특별한 것은 없지만 꼭 읽어보려는 책은 밤을 새우면서 읽는 습관이 있었다.  아마 옛날 쫄병 때 몰래 책을 읽던 버릇이 그렇게 된 것 같다. 

정말로 어거지로 요한계시록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할 때까지 한 번을 다 읽었다.  한 번을 다 읽고나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 이것이 보통 책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신 분이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바로 성령 하나님이셨다.  성령님은 그 때부터 나를 주목하셔서 나를 성경에 몰입하게 만드신 것이다.

'보통 책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이상 연이어 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또 읽기 시작했는데 창세기 장 26-28절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왜냐하면 주체사상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이 구절에 그대로 반영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의 본질과 그 기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하기에 혁명과 건설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은 제일 귀중한 존재로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의 역할과 지위를 다 하자면 반드시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보다 귀중한 존재가 이 세상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반드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 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사람의 기원 문제를 진화론에 근거하여 원숭이로부터 고등동물로 진화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나는 고등중학교 때 진화론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에게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면 원숭이는 무엇으로부터 진화되었습니까?"라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주체사상에서 사람이 제일 귀중하다는 것과 또한 혁명과 건설에서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등을 배우면서 나는 솔직히 이것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문제이며 게다가 어디에서 내용을 그대로 모방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석연치 않았고 의문에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가 성경에서 하나하나 해결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경 창세기 장 26-28절에는 사람의 기원문제와 이 땅에 창조된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명백하게 가르치고 계셨다.  나는 여기서 창세기 1장 26-28절 말씀을 다시 인용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이르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량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6-28

마르크스와 레닌은 공산주의로 가는 경제적 이론은 밝혔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공산주의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밝히지 못한 것을 김일성이 주체사상에서 밝혔기에 주체사상이 위대하고 독창적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바로 북한의 노동당이다.

나는 북한 노동당 선전 선동부 사회과학 부분 일꾼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반론을 듣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인 창세기 장 26-28절 까지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주체사상에서 해결했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문제가 바로 이 성경 말씀 안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주체사상이 독창적일 수 있는가 말이다.  물론 성경을 알지 못하고 주체사상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쯤 되었으면 주체사상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경을 보다가 너무도 놀랐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무신론자는 물론 신자들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물론 영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말씀이 너무나도 신기했을 뿐만 아니라 믿어지면서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이모양 저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보아도 주체사상보다는 성경을 믿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 믿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람의 기원 문제도 변변히 해명하지 못한 주체사상을 믿을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성경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이해가 되든 안되든 무조건 읽어 나갔다. 

성경을 읽는 과정에서 다음 구절들이 특히 내게 도전을 주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33:12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8

  보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 나는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의 일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호14:9

 
이 외에도 끝없이 많지만 특별히 이곳에 명시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두 번째 볼 때 부터 나에게 은혜가 된 말씀들이다.  나는 성경을 보면서 처음에는 구약에서부터 은혜를 받기 시작하였다.  가령 "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돌로 쳐 죽여라"와 같은 말씀은 얼마나 시원한지 마음이 다 후련하였다.  북한의 공산주의 혁명 스타일이 그랬고 또 군인으로 살아오면서 형성된 나의 인격 때문에 이런 말씀에 더 은혜를 받은 것 같다.  그러나 점차 신약으로 옮겨 오면서 그 말씀의 그 무게와 존엄을 알게 되었고 특히 구약의 완성을 위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순간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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