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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만나서 남한 사회와 소통할 수 있었어요"탈북학생 응원일기(4) - 정부미

 

“선생님,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으니 받아 주세요. 정부미가 매달 다른데 이번 달에는 찹쌀이 많이 섞여 아주 맛있는 쌀이거든요. 선생님 덕분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민철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제야 사람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남한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제 마음입니다, 선생님.”


   
▲ "화장지를 사 들고 김혜나양을 만나 언덕길을 오른다. 골목도 많고 집들도 많고 아이들도 많은 동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이윤경(재능기부)
 

19. 열여섯 걸음 - "많은 또래들만으로도 잔치다"


놀이 문화에 굶주린 민철이와 민수를 데리고 한강 고수부지에 갔다. 물을 보고 바다에 왔다고 소리치는 민수가 더욱 신났다. 자전거를 빌려 30분을 신나게 탔다. 땟국물 흐르는 아이들을 야외 수영장에 들여 보냈다. 물놀이로 신났다. 많은 또래들만으로도 잔치다. 나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30분마다 밖으로 불러낸 후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내 임무다.

두 녀석의 끝없는 에너지에 결단력이 필요하다. 아쉽지만 이제 그만 가야할 시간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선 두 녀석 모두 고단한 잠에 빠지고 코까지 고는 민수가 귀엽다. 무리한 운동으로 몸살 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온 날이다. 기분 좋은 날.



20. 열일곱 걸음

추석 전전 날, 또 없다. 그래도 전화는 받는다. 계획에 없었으나 언니 목소리를 듣고 졸라대는 아이들 성화로 이모 댁에 갔단다. 이번엔 내 잘못이 크기에 공손히 돌아선다. 송편과 전이 든 보따리가 무겁다. 앞으로 내 맘대로 오지 말아야지 결심한 날.

 

21. 열여덟 걸음 - 정부미

민철이 엄마 목소리와 표정이 참 밝아졌다. 경계의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셋째아이도 풍부한 모유로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민수도 똑똑하다. 민철이에게도 틱장애 해결법에 대한 대화를 나눈 뒤 많이 너그럽다. 민철이도 편안해 보인다. 공부하는 방도 이제 탐색하지 않는다. 이제 나를 믿는구나. 마음이 놓인다. 나도 한결 편안하다.

내 차에 굳이 정부미를 실어 준다. 우리 집에 쌀이 많다 해도 막무가내다. “선생님,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으니 받아 주세요. 정부미가 매달 다른데 이번 달에는 찹쌀이 많이 섞여 아주 맛있는 쌀이거든요. 선생님 덕분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민철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제야 사람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남한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제 마음입니다, 선생님.”


22. 열아홉 걸음

집안 가득 빨랫감이다. 놀라는 나를 보고 민철이 엄마 얼굴이 홍당무다. 좁은 집안에 넘치는 살림이다. 현관 한 쪽으로 상자가 그득하다. 주인이 집을 비워달란다. 전세금은 오르고 갈 곳은 이미 정했단다. 전세금이 제일 싼 지역으로 ...다행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내가 다니기 편한 동네다. 전철 타면 두 정거장, 시간 절약이 제일 좋다.

민철이가 갈 학교는 내가 잘 아는 곳이라서, 그곳의 장점을 설명하고 힘을 실어 준다. 문제는 잦은 전학으로 민철이의 정서적 안정과 친구 관계다. 이제 겨우 담임선생님과 친구들과 어울려 행복해 했건만, 안타깝게도 해결책이 없다. 가여운 민철이, 가여운 민철이 모친. 심란한 내 마음.



23. 스무 걸음 - 무료 과외 선생님

아주 오랜만에 민철이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설레는 마음, 그동안 이사하고 집안 정리 하느라 몸살을 앓고 이제사 정신을 차렸단다. 집 주소를 받아 적고 민철이의 근황을 물으니 전철 타고 버스 타고 초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단다. 3학년 어린이가 다니기에는 무리다. 아기 업고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엄마도 무리다. 모두들 고생이 많다. 영어 학원을 선택하지 못한 민철이를 위해 영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유학생 누나를 소개하겠다고 하니 너무나 기뻐한다.

무료로 민철이를 가르쳐 준다고 나선 누나는 여름방학 탈북학생 캠프에 참관한 후 대한민국 소수계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논문으로 제출하여 대학교에서 모두 A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소외계층, 특히 탈북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대해 큰 감동을 받고 자신도 그 프로그램에 동참하고자 민철이를 만나고 싶어했던 27살 아가씨다. 처음에 민철이 엄마는 낯선 사람을 자신의 집에 들이는 것에 몹시 불안해했지만 나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믿을만한 사람임을 강조했더니 마음을 열고 방문을 허락한 것이다.

일석이조, 내가 민철이와 공부할 때 동생들과 놀아 주고 민철이가 영어 공부 할 때 나는 민철이 엄마의 말벗이 되어 답답한 마음을 풀어 줄 기회다. 영국 담당 교수님은 우리나라 1:1 멘토링 제도를 학생의 논문을 통해 접한 후 극찬을 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탈북자들이 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자랑스런 서울이다.

 

24. 스물 한 걸음 - 좋은 징조

화장지를 사 들고 김혜나양을 만나 언덕길을 오른다. 골목도 많고 집들도 많고 아이들도 많은 동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김혜나양도 놀라는 표정이다. 꼬불꼬불 골목으로 이어진 길 끝에 주소지가 나타나고 민철이 엄마가 올망졸망 꼬맹이들 손을 잡고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이 뛰어 오고 김혜나양은 아기들이 예뻐 어쩔 줄 모르고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집은 이전보다 깔끔하고 햇살이 잘 들어 화사하다. 공부방도 잘 갖추어졌고 주방도 실내에 있어 안정적이다. 이사를 참 잘 왔다고 덕담을 한 후 김혜나 영어 선생님을 인사시켰다. 아이들도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 선생님을 더 좋아한다. 민철이도 영어 선생님이라고 더욱 기뻐한다. 민철이 엄마와 민철이 전학 권유를 위해 대화하려고 첫날부터 영어 공부를 강행했다. 영특한 민철이에게 반한 김혜나 선생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 좋은 징조다.


 

25. 스물 두 걸음 - "오래도록 지속되길…"

민철이를 처음으로 곁에서 떼어 보내는 민철이 엄마는 안절부절이다. 염려 마시고 두 아이들과 조금 편안하게 지내시라고 권하고 앞으로는 전화도 하지 말라고 못을 박는다. 처음으로 캠프에 참가한 민철이는 좋아 죽는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또래 친구들과 놀기도 잘 놀고 멘토 선생님과 쉽게 사귀고 경사 났다.

3박 4일 민철이가 탈북학생 캠프에 참여하는 동안 김혜나샘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민철이 집을 방문하였단다. 친구도 없이 새로운 동네에서 아이들하고만 지내는 민철이 엄마도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마음씨 따뜻한 모녀 자원봉사자가 있어 든든하다. 만군을 얻은 장수의 기분이 이러리라. 오래도록 지속되길...



26. 스물 세 걸음 - 3인 1조 드림팀

김혜나샘 모녀와 나는 3인 1조다. 민철이가 나와 책을 읽고 공부하는 동안에 위샘 어머니는 아이들과 놀아 주고 민철이 엄마는 뛰어난 침술을 펼친다. 오랜 유학 생활로 발병된 위샘의 소화기 장애를 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아이들 5년만 키운 후 민철이 엄마도 대한민국에서 재교육을 받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민철이 엄마도 당찬 자신감을 보인다. 발전적이다. 대한민국 한의학에 도전장을 낼 각오를 새롭게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 날.


 
이 글은 초등학교 교사 이미순 씨의 탈북학생 지도방문 이야기를 엮은 것입니다. 총 27꼭지로 구성된 글을 <유코리아뉴스>가 5편으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5편에 계속>

이미순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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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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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2-09 16:16:02

    민철이 엄마는 뛰어난 침술을 펼친다. 오랜 유학 생활로 발병된 위샘의 소화기 장애를 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아이들 5년만 키운 후 민철이 엄마도 대한민국에서 재교육을 받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민철이 엄마도 당찬 자신감을 보인다. 발전적이다. 대한민국 한의학에 도전장을 낼 각오를 새롭게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 날.
    자랑스런 탈북여성 민철이엄마~   삭제

    • hephzibah 2012-02-09 16:14:38

      자랑스런 대한민국, 자랑스런 서울. 자랑스런 교사 이미선 선생님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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