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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조선을 바라보다압록강, 그 푸른 물을 따라(1) "무지개다!"

"무지개다!"

차에서 내리며 누군가 소리쳤다. 정말 저 멀리 하늘 위에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에 입성한 지 첫날, 이 여행을 시작한 바로 오늘, 우리가 선 이곳과 저기 저 조선 땅을 잇대어 피어오른 무지개.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2014년 5월 5일 월요일, 여행 첫째 날.

이른 9시께. 오늘 우리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중국 대련으로 간다. 나를 포함한 2명의 교역자와 6명의 청년들, 그리고 한 분의 집사님이 동행한다. 대련에 도착해서는 가이드로 함께 해주실 '형님'을 만나, 빌려둔 차를 타고 4시간 정도 움직여 단둥(丹東)으로 간다 했다.

그곳을 향한 두 번째 여행길

중국을 통해 조선 땅을 보러 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일이다. 6년 전쯤, 지인들과 함께 여행사를 통해 장백산(백두산)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다. 사실 그때도 백두산을 보고자 했다기보다, 중국을 통해 북한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선택했던 여행이었다. 그때 그 즈음 나는 조선에 대한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렇다고 가족 중 실향민이 있었던 것도, 탈북민 친구가 있었던 것도, 북에 대한 거창한 선교의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학창시절 6.25 기념일이 되면 학교에서 보여주는 안보영상들을 보며 북한은 나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못 먹고 못 사는 곳, 사상과 정치 체제가 사람들을 압제하는 곳이라는 교육을 누누이 받아온 터라, 그 땅은 내게서 더 먼 곳이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린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낯설고 무섭고 어두운 그들과 우린 왜 굳이 통일을 이루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그때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처음 북한에 대하여 알 수 없는 마음이 생긴 것은 6년여 전 쯤 어느 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들었던 한 라디오 방송 때문이었다. 그날 방송에서는 북한의 여러 실상들을 연극으로 기획하여 공연하고 있는 한 탈북 연극연출 기획자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날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어떻게 이런 연극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연극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었을 거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져 가던 중, 이 기획자가 어느 순간 눈물을 터뜨리며 울기 시작했던 대목에서 나는 흘려듣던 그날의 방송에 귀를 기울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는 대화 중 갑작스럽게 목멘 소리로 "북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라며 흐느꼈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그날 왜 그 이야기가 그토록 서럽게 내 마음에 꽂혔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북한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이야기들도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몇몇 지인들과 함께 그렇게 여행을 갔던 거다. 당시 여행 중에 느꼈던 것은 '북한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장백산, 일보과 등을 다니며 잠시였지만 직접 북쪽의 땅을 밟아보기도 했다. 물리적인 거리로서도 너무 가까웠던 그곳, 그래서 심정적으로도 그곳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 뒤로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오늘, 나는 다시 그곳을 가게 되었다. 사실 그간 분주한 삶, 꽉 찬 사역의 시간들 안에서 나는 자연스레 그 마음을 흘려보냈다. 내 마음과 시간 안에 그 생각은 머무를 공간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오늘 나는 다시 자연스레 그 땅을 보러 가게 된 거다.

압록강 너머 저곳, 조선

대련에 도착하여 우리는 가이드 형님을 만났다. 중국은 감시가 삼엄하기 때문에 서로 호칭에 주의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우리는 서로를 형님, 누나, 언니, 원장님 등으로 불렀다. 목사고 전도사고 집사고 청년이고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그 순간부터 여행이 마칠 때까지 나는 내 자신이 교역자라는 사실을 잊었다.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청년들과 함께하며 본디 나도 청년이라는 사실을 문득 새삼스레 생각했고, 그들에게 나는 언니요, 누나, 동생이 되었다. 목사님도 친히 형님이 되어주셨으니 감사했고 말이다.

시간이 없어 우리는 바로 가이드 형님이 빌려놓으신 두 대의 작은 6인승 밴에 올라탔다. 여기가 중국이라는 인식을 하기도 전, 우리는 바로 4시간 가량을 이동하여 단둥으로 향했다.

   
▲ 단둥에 도착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저 너머 그 땅 조선을 볼 수 있었다. ⓒYKD

단둥은 조선의 지도에서 서북쪽 제일 가장자리에 위치한 신의주를 마주하고 있는 중국 땅이다. 압록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압록강 하류 끝에 해당하는 곳이다. 단둥에 도착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저 너머 그 땅 조선을 볼 수 있었다. '신압록강교'라는 신축 공사 중인 다리 건너편에 조선 땅이 보였다. 망원경을 통해 우리는 신기하다는 듯 그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짐을 싣고 인공기를 달고 있는 배들, 김정은 장군을 칭송하는 문구들, 오가는 차들이 보였다. 그래, 바로 저기가 조선이구나.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선 표현이었다. 몰랐는데 그러나 그곳은 사실 '조선'이라 불려야 맞단다. 북한이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 입장에서 그곳을 부르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들을 존중한다면, 그들의 국가명칭을 우리의 입장이 아닌 그들이 부르는 그대로 불러주는 것이 좋은데, 그 명칭이 바로 '조선'이었던 거다. '조선'이라는 이름의 표현은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경계를 무너뜨려 주니 더 좋다 싶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저 너머 '조선'을 바라본다. 압록강 너머 그곳. 비단 북일 뿐만 아니라 그냥 그대로의 조선이다. 너와 나 우리가 사는 땅.

약속의 징표, 무지개

그렇게 한참을 섰는데 갑작스레 하늘에 짙은 구름이 드리워지더니 후두둑 비가 내렸다. 첫날 첫 일정을 반겨주는 비인가 싶다. 비를 피해 얼른 차에 탄 우리는 압록강변을 따라 단둥 시내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그리고 한 5분쯤 달렸을까. 이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났다.

"무지개다!"

차에서 내리며 누군가 소리쳤다. 정말 저 멀리 하늘 위에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에 입성한 지 첫날, 이 여행을 시작한 바로 오늘, 우리가 선 이곳과 저기 저 조선 땅을 잇대어 피어오른 무지개.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 "무지개다!" 차에서 내리며 누군가 소리쳤다. 정말 저 멀리 하늘 위에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YKD


우리는 한참을 서서 무지개를 바라봤다.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모두 주님을 기억했으리라. 무지개, 약속의 표징.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이 땅을 향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당신 그 자신을 드러내고 계셨다. 참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우리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그렇게 만났다. 아름답고 놀라운 주님. 주님, 고맙습니다.

아, 조선의 노래여

숙소에 도착하여 우리는 방을 배정받고, 각 3명씩 조를 짜 단둥 시내를 돌아보며 저녁식사까지 마무리하고 돌아오라는 미션을 받았다. 사실 여행 전, 우리는 거창한 준비를 하지도, 자주 모여 밥을 먹거나 하지도 않았었다. 나는 교역자라는 특권(?)으로 부끄럽게 사전 교육도 없이 이 팀에 합류했는데, 사실 우리 팀의 다수는 1년여 전부터 통일스터디라는 모임을 통해 조선을 공부하고,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이들을 만나왔었다. 올해도 그 모임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 모임의 일환으로 바로 이 여행이 가능해진 거였다. 그래서 여행 전 우리에게는 다른 특별한 사전모임이 필요치 않았다. 한두 번 함께 만나 가이드 형님과 여행의 일정과 경로를 살펴보고 온 정도였다. 그래서 사실 저녁마다 이렇게 조별로 함께 했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참 의미 있었다(실제로 우리는 여행 기간 동안 거의 매일 이렇게 조를 짜 자유모임을 했다).

   
▲ '신압록강교'라는 신축 공사 중인 다리 건너편에 조선 땅이 보였다. ⓒYKD

단둥의 시내는 화려했다. 공원마다 사람들이 모여 체조를 하거나 합창을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택견 같은 무술을 하는 이들, 자유로이 커플 댄스를 추는 이들도 보았다. 그렇게 자유롭고 화려한 중국 땅과 달리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조선 땅은 조그만 불빛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캄캄했다. 밤에 보는 조선은 왠지 더 슬퍼보였고 아파보였다. 할 말이 있으나 가만히 자신을 가리운 채 입을 다문 사람처럼 조선은 그곳에 어둡게 서 있었다.

각 팀이 서로의 시간을 마치고 돌아와서 찍어온 사진과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눌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압록강변에 위치한 중국의 압록강공원에서 우리말로 된 노래가 크게 들려왔다고 한다. 그곳에 관광 온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틀어주는 음악이라 했다. 씁쓸했다. 강 너머 저곳은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이곳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가득했다. 그곳은 침묵하여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데, 이곳은 화려하고 거창한 말들을 내뱉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것 같아 괜히 더 그랬다. 순간이었지만 이질감을 느꼈다. 저 어두움 속에 감추어진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중국 땅에서의 노래 말고, 저기 저곳 조선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살아 있는 노래가 순간 너무나 듣고파졌다.(계속)
 

도화영/ 창동염광교회 전도사

도화영  naeumsa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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