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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청와대는 듣는 시늉만이라도 제대로 하라남북경협·통일운동단체의 5·24조치 해제촉구 성명서 청와대 전달 과정을 보며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려고 애쓰는 것, 민주적인 국가의 상식이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도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행복추구권과 함께 인권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자면 국가는 국민을 잘 받들어 섬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받고, 국민은 국가로부터 존귀함은커녕 무시함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빈번한가. 세월호 참사 정국 속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일방통행식 모습이 더욱 그렇다. 2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남북경협 및 통일운동단체들의 ‘5·24조치 해제 촉구’ 기자회견 직후에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 23일 오전 남북물류포럼 등 7개 남북경협 및 통일운동단체가 개최한 5.24조치 해제 촉구 기자회견. ⓒ유코리아뉴스

이날 단체장 및 활동가들은 5·24조치로 북한보다는 남한기업들이 훨씬 타격을 많이 입었다며 5·24조치 무용론과 함께 즉각적인 폐기를 박근혜 정부에 촉구했다. 남북경제협력포럼,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남북물류포럼 등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통계자료에 따르면 5·24조치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피해규모는 다음과 같다.

▲금강산기업 투자액 1900억 원, 매출 손실 5100억 원(금강산기업협의회 발표 자료, 2013년 6월 말 기준) ▲현대아산 투자자산 및 사업권 손실 1조 3124억 원, 매출 손실 7160억 원, 직원 수 1100명에서 300명 이하로 감원(현대아산 자료, 2013년 6월 말 기준) ▲강원도 고성군 주민들 5000억 원 손실(2013년 5월 기준)

2013년 11월 국회가 발표한 ‘5·24조치 이후 남북한 경제적 피해’ 연구 결과를 보면 5·24조치 이후 남북경제교류가 전면 중단된 지난 3년간 남한은 89.1억 달러, 북한은 22.6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남한이 북한보다 4배 가까이 피해 규모가 많았다. 이 때문에 5·24조치는 남한 기업만을 죽이는 ‘자해행위’라고까지 회자되고 있다는 게 남북경협기업인들의 설명이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사망사건, 2010년 5.24 조치는 남북경협기업 등에 속한 근로자 8만 명을 비롯해 그에 딸린 가족 등 30만 명에게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주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했던 한 기업체 대표는 금강산 관광 중단 여파로 부인과 딸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자살, 야반도주, 형제간 보증으로 인한 가족 해체도 남북경협기업들이 아무도 몰래 감수해야 하는 현재진행형 아픔이다.

그래서다. 이들의 목소리엔 절박감, 눈물어린 호소가 절절하게 배어 있었다. 금강산 관광업체에서 가이드로 일하다가 박왕자씨 사건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한 청년은 눈물로 ‘금강산 재개’를 호소하기도 했고, 한 단체장은 “오늘부터 5·24조치는 용도 폐기”라며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아울러 이들은 정부에 대한 짙은 불신도 갖고 있었다. 기자회견 직후 한 단체장에게 물었다.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도 5·24조치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 돌아온 답은 “박근혜 정부가 변화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였다. 그렇게 절박하게 외치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그 외침과 호소를 받아줄 거란 기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정부 당국자를 통해 번번이 좌절을 겪었기 때문. 이번이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란 것.

그래도 이번 기자회견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는가 보다. 기자회견 도중 사회자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이 우리 성명서를 접수하기로 했다”며 “기자회견 끝나면 몇몇 대표 분들이 청와대로 가서 성명서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단 7명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청와대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다들 통일비서관이 청와대 앞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경복궁역에서 조금 더 들어간 청와대 입구 쪽 골목에서 일찌감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막히고 말았다. “(통일)행정관 지시로 두 명밖에 (청와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오해가 있는 듯 했다. 단체 쪽에서는 통일비서관이 밖으로 나와서 성명서를 접수할 줄 알았던 것이다. 다시 단체장 한 명이 통일비서관으로 보이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그러더니 경호원을 향해 “양해를 구했다”며 두 명에서 한 명 더 추가해 세 명이 청와대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단체장이 경호원을 향해 버럭 목소리를 질렀다. “이러니 청와대가 욕을 먹는 것 아니냐. 국민이 왔으면 나와서 맞이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우리가 거지처럼 한 명 더 들여보내달라고 구걸까지 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경호원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 행정관과 통화하시라”고만 되풀이했다.

그 단체장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혼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버렸다. 결국 청와대엔 3명의 단체장만 청와대 측이 내준 경찰차를 타고 들어갔고, 나머지는 씁쓸하게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한 단체장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청와대가 이렇질 않았다” “권력이 영원할 줄 안다면 착각”이라며 분을 삭였다. 청와대를 찾았던 단체장 어느 누구도 박근혜 정부가 5·24조치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보일 거라고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국민의 눈물어린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때 그것은 국민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고 국가의 불행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국민들이 분노하고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무능한 것은 어떻게 하기가 어렵더라도 국민의 목소리를(그 목소리에 동의하고 안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듣겠다는 제스처만큼은 청와대가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행시킨 국가 개조, 통일 대박, 국민 행복 이 모든 말들은 그야말로 공허한 말장난으로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들을 줄 아는 귀에 일러주는 지혜로운 꾸지람은 금귀고리요, 순금목걸이다”(잠언 25:12)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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