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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적 결단’으로는 방일 외교가 남긴 불씨를 끌 수 없다평화재단 현안진단 제301호

구상권 포기가 낳은 후폭풍

지난 3월 13일의 한·일 정상회담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많은 국민이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을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의 계기가 아니라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 변제’와 ‘구상권 포기’라는 해법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에 종지부를 찍고,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측에 힘을 실어 주고 말았다. 이대로 실행될 경우, 과거는 봉인되고, 현재는 봉합되며, 미래로의 길은 봉쇄된다.

이에 대해 세 방면으로부터 국민적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 해법이 입힌 세 가지 상처 때문이다. 첫째,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들이 입은 상처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일본 정부가 1차 가해자라면, 우리 정부는 2차 가해자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과 한마디’가 얼마나 절실한지 모르는 사람들의 원망이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의 밑변을 이루고 있다.

둘째, 헌법 정신이 입은 상처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은 그 전문에서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 했다. 현행 헌법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대법원 판결은 이런 헌법 정신에 입각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 해법은 총독부의 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본 측에 유리한 내용이다. 헌법 정신이 입은 상처가 국민적 공분의 중심을 이루어,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셋째, 우리 외교 역량이 입은 상처다. 식민지배 불법성 문제는 같은 해 등장한 제2차 아베 내각이 한국에 걸어온 역사전쟁의 전선이었다. 그런데 이번 방일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그 마지노선을 위태롭게 했다. 대일 외교의 주전선에서 철수한 결과, 나머지 의제들을 둘러싼 전선에서도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이미 일본은 초계기 사건, 일본군 ‘위안부’ 합의, 사도광산 등재, 후쿠시마 수산물 해제 문제로 이어지는 전선에서 이 여세로 몰아붙일 태세이고,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도 슬쩍 잽을 날리고 있다.

 

새롭게 번지는 세 가지 불씨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은 한・일 사이 여러 갈래로 번진 불을 끄기보다는 새로운 불씨를 던져 놓았다. 첫째, 우리 사법부에 떨어진 불씨다. ‘제3자 변제’와 ‘구상권 취소’는 위법, 위헌 소지를 안고 있어서 이미 이를 둘러싸고 새로운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을 상대로 싸워 패소했으나, 한국 법원에서 겨우 승리하여 법적 배상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 해법 제시로 그 기회를 박탈당한 피해자들이 이제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둘째, 국내 정치에 떨어진 불씨다. 이번 해법에 야당이나 현 정부에 비판적인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이러한 불만과 의구심에 대해 성실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을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무시 태도가 불씨를 키우고 있다.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에 설명하며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후의 대일 외교를 전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이번 해법은 한일관계를 수습 불가능의 영역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

셋째, 대일 외교에 떨어진 불씨다. 특히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일본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대고 명시적으로 표명한 것은 두고두고 우리 외교의 화근이 될 수 있다. 사전에 피해자들의 이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실행될 수 없는 일을 약속함으로써, 한일관계에 새로운 상호불신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이미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 언질을 둘러싸고 입장이 흐려지면 일본 국민은 한국이 또 골대를 움직인다고 반발할 것이다.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 이르는 과정에서 외교부가 진행한 협상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통령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자신이 주도했다고 인정했다. 그동안 외교부가 축적한 대일 외교의 경험과 자산은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반면 일본 외교는 메이지유신으로 유럽 외교의 본 무대에 진출한 이래, 지역과 현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경험을 자료로 축적하고 그 분야 최고 전문가를 전면 배치하여 철저하게 계산된 시나리오 하에 협상을 진행하는 것을 특기로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일 외교 업무에서 오래 벗어나 있던 외교관을 급작스럽게 발탁하여, 국교 수립 후 최대 현안을 다뤄야 할 대일 외교의 최전선에 배치하고 외교의 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행태로 일관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 이르는 대일 외교는 아마추어 외교의 폐해를 보이며 참패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민에게 우리 정부는 이번 방일 정상회담을 국익을 위한 결단과 12년 만의 성과로 치장하면서, 이들 상처를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비난을 비켜보려 하고 있으며, 여러 곳에 던져진 불씨들을 방치하고 있다.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일본의 한 음식점에서 친교 시간을 갖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성과 아닌 성과들

정부 여당은 이번 방일 외교를 오로지 국익만을 생각한 결단이라며 그 성과를 평가해 달라고 한다. 수출규제조치 해제, GSOMIA(이후 지소미아로 표기) 복원, 셔틀외교 복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조목조목 살펴보면 이들 조치는 오히려 일본에 유리하거나 일본 측 국익에 부합하는 것들이어서, 강제동원 문제에서 거의 백기를 들다시피 하면서 얻어낸 것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수준이다. 한국의 국익이 일본의 그것과 제로섬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우리가 얻을 이익보다 일본이 얻게 될 이익이 불균형적으로 크다면, 그것 또한 양보다.

첫째, 수출규제조치를 해제했다고 하지만, 이는 WTO 제소 취하에 따른 것이었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하나, 이는 일본에서 더 환영하는 조치다. 나아가 엄밀히 말하면 WTO 제소는 수출규제조치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이후 취해진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맞대응한 것으로, 일본의 행동이 교역과 관련한 국제규범에 위반한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후 소송은 우리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어 일본이 곤경에 처해 있던 상황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우리 기업은 변화한 조건에 맞춰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관련 물품의 수출입은 거의 정상화되어 있었다. 한편 규제조치 이후 우리 소부장 산업은 정부의 체계적 지원 하에 새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였다. 경제안보에 진심이라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는 대신 일본 기업에 다시 문을 열겠다고 한다. 경제안보의 전위를 자처하며 새로 성장하던 우리 소부장 산업은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WTO 제소 취하와 수출규제조치 해제는 등가 교환이 아닌 데다, 시간 또한 우리 편이어서 바겐 칩으로서는 훨씬 큰 값을 갖고 있었다. WTO 제소 취하는 소부장 산업 육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급하게 내놓을 카드가 아니었다.

둘째, 지소미아 복원 또한 일본 측에 더 큰 이익을 안겨주는 부등가 교환이다. 지소미아 연장 통보의 중단은 우리 측으로서도 큰 부담이었으나, 당시 아베 총리가 그 충격을 토로했던 대로 일본 측의 추가 보복행동을 자제하게 하는 데에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북한 미사일 관련 정보의 불균형성이 일본에 불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측이 제공하는 정보의 우수성은, 최근 몇 년 동안 북한 관련 정보 수집과 분석의 한·일 비교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나아가 지소미아 정상화 이후 예상되는 과정, 즉 한·일의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이 상호군수지원협정(ACSA)과 미사일 방어(MD) 체제의 일체화로 발전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변화된 국제 환경에서 돌다리를 두들겨 가며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의 지정학이 크게 유행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한반도발 신냉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한 지렛대도 스스로 놓아버린 것이다.

셋째, 셔틀외교 복원 또한 양가적이다. 우리 측은 이후 셔틀외교를 통해, 채우지 못한 물컵의 반잔을 일본 측 성의로 채워나갈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당일의 공동회견에서 나온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서 볼 때 거꾸로 활용될 가능성이 더 크다. 기시다 총리는 셔틀외교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위에 열거한 남은 의제에서 일본 측의 의도로 풀어가겠다는 생각을 피력해 보였다. 물컵의 나머지 반잔마저 우리 측이 채워야 하는 상황이 올까 우려된다.

 

미래세대를 위한 결단이라는 변명

이번의 결단이 한·일의 MZ세대에 미래를 열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너무 얄팍하다. 첫째, 과연 이번 해법이 양국의 MZ세대에 미래를 열어준 것인지 의문이다. 이번 해법이 과거를 해결했다기보다는 봉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남긴 숙제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MZ세대를 위해서라도 강제동원 문제를 지금 제대로 풀어야 한다.

둘째, 과연 이번 해법을 MZ세대가 환영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3월 2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21-23일 조사)에 따르면, 한·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에서 20대의 24%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뿐 60%가 부정 평가를 내렸다. 30대에서는 그 차이가 23% 대 69%로 더 벌어졌다. MZ세대의 60-70%가 윤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12년 만의 정상회담으로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었으니 이를 큰 성과로 봐 달라며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12년 전에 한일관계가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던 입구에서 대일 외교를 관장하던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 국가안보실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

우리 정부는 이번 방일 정상회담을 알량한 성과로 치장하지 말고, 피해자와 국민의 마음, 그리고 국가정체성에 만든 상처를 보듬어 아물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법부와 국내 정치와 대일 외교에 던져진 세 가지 불씨를 초기에 지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후 전개될 대일 외교에서라도 이번에 구겨진 우리 위상을 바로 잡고,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대일 외교의 어려움을 지난 정부의 귀책사유로 돌릴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총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이해하기 위해 국민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첫째로 그동안 협상의 경위와 내용이다. 어려움이나 모자람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사실에 입각한 사과와 가해 기업의 기여라는 일본 측 호응조치가 사라진 데 대한 설명이다. 셋째, 우리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그러한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 표명이다. 물론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직접 마주해서 밝히는 것이라야 의미가 있다.

투명하지 못한 정부, 설명을 주저하는 정부, 국가정체성을 소홀히 다루는 정부는 국민적 지지를 동원할 수 없다. 물론 투명한 설명이 더 큰 비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일본 측이 무성의로 일관한다면, 국민적 비판은 일본을 향하게 될 것이고, 이는 오히려 대일 외교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우리 정부에 지속가능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를 지적하는 국민에게 “역사의 큰 흐름이나 국제질서의 판을 읽지 못한다”고 훈계하거나, “지엽적 문제를 지적하고, 과도한 용어를 동원해 정치적 쟁점을 만들려고 한다”며 윽박지르고 갈라치려 든다면(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1964년 3월 ‘대일 굴욕외교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어 반대투쟁이 고조될 때,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을 내어 ‘반공론으로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견제치 말라’고 경고했다. 자유당 말기 한국판 매커시즘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상황에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야당의 움직임을 ‘이런 사고방식의 아류’로 다스리려고 든다면 큰 국가적 비극이며, ‘야당이 정부를 반대할 수 있는 권리’나 한일회담 교섭 자세를 비판할 수 있는 ‘국민의 언론자유’는 “끝까지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의 신성한 기본사명”임을 강조했다. 지금 일고 있는 국민적 비판에 대해 한일관계 개선을 방해하여 북한이나 중국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몰아세우는 이른바 보수 주류 언론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승적 결단 말고 제대로 싸울 각오

지난 국무회의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 또한 비판의 핵심을 비켜가며 대승적 결단에 대한 이해를 국민에 강요하는 내용이어서, 일본에 안심감을 줄지언정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에 신뢰감을 주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모두에서 인용한 처칠 영국 수상의 말, “만약에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명언은, 새로 들어선 내각이 히틀러와의 전쟁이라는 비상시국 속에서 과거 정부와 싸울 여유가 없다는 말로 국민 통합을 위해 지난 정부의 과오를 묻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진의를 바꿔치기 해 한·일 화해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했다. 그리고는 뒤에서 정부 해법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세력”으로 비난하며 국민을 갈라치고 있다. 처칠 명언의 사용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모두발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어야 한다. “싸우다 패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만, 비겁하게 무릎 꿇는 나라는 결국 패망한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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