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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시작(6)북한에서 하나님이란 보화를 사다

나의 인생에도 갈등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북한의 기준으로 볼 때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나름대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나처럼 깔끔하게 인생행로를 걸어온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전사 생활도 오래하지 않았고, 그래도 북한에서는 최고의 학교들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빠르지는  않았지만 느리지도 않게 나름대로 인정받는 지위까지 올라가 근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들이 승진할 때 나도 승진을 했고, 남들이 훈장을 받을 때 나도 훈장을 받았으며 남들이 김일성과 사진을 찍을 때 나도 찍었고, 북한 노동당이 제일 좋아하는 통제력과 장악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또한 나의 인생에서 갈등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은 수령과 당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충성했으며 그들도 나를 총애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선혁명을 담당할 혁명가의 긍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정립된 혁명적 세계관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전쟁을 생각했고 국가적 차원에서 무력이 증편되며 외국으로부터 혹은 자국 내에서 새로운 무기가 도입되었다는 정보를 받을 때마다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곤 했었다. 그 어느것 하나 불만족스러운 것 없이 그야말로 순탄하게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었다.

중대로부터 연대, 여단을 거쳐 사령부, 정치부, 조직부까지 올라갔다. 한국으로 올 당시 나의 군사칭호는 중좌(중령), 직책은 정치부 조직부 종합지도원이었다. 편제 군사칭호는 중-상좌였다. 평생토록 변함없이 충성하겠다고 맹세하였고 전쟁은 내 인생에서 꼭 한 번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조국청사에 길이 남을 수 있는 영웅이 되는 것이 나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런데 내 인생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갈등이 오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무렵이었다.

첫째로 내 인생에 갈등을 초래한 것은 전쟁에 대한 나의 관점이었다. 나는 나의 운명과 전쟁은 직결되어 있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군대를 좋아했고 군대를 좋아했다는 것은 전쟁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교적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흘러 왔지만 내 평생에 전쟁을 꼭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늘 미국놈들과 남조선이 침략해 온다고 가르친 노동당의 교육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생각이 얼마나 철없고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중대를 거쳐 연대 그 이상 연합부대로 올라오면서 또 무력부를 비롯한 총정치국 중앙당에 자주 올라다니면서 생각이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확장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절대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전쟁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해서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 전쟁을 하면 한국과만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상대해야 하고 또한 연합군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김정일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도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김정일은 당연히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등은 군사대국이며 경제대국이다. 따라서 이들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김정일이 모를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정세가 조성되면 전쟁을 하여 조국통일의 대사변 (북한에서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일을 사변이라 하는데 특별히 조국통일은 가장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대사변이라고 하며 전쟁을 의미하기도 함)을 주동적으로 맞이한다는 것도 역시 실현될 수 없는 아득한 이야기였다. 최근에 핵 실험을 했다고 해도 나의 이 같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둘째로 내 인생에 갈등을 가져온 것은 미국과 대한민국은 특별한 명분이 없는 한 북한을 절대로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김정일과 노동당으로부터 속았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관학교 때 6.25가 북침인가 남침인가를 놓고 의문을 가졌지만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임관했는데 걸핏하면 미국과 남조선이 침략해 올라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전쟁을 하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지금까지 군복을 입고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허무하고 그 허무함이 곧 엄청난 갈등으로 증폭된 것이다.

내가 북한군 정치장교이고 또 군단급에서 근무하면서 무력부 작전국 장교들과 만나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북한이 전쟁을 주동적으로 먼저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만일 남조선과 전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곧 미국과 하는 전쟁이고 더 나아가 연합군과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깨겠다고 덤비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는 게 주위의 얘기였다.

셋째로 내 인생에 갈등을 가져오게 되었던 중요한 요인은 공산권의 붕괴였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에서 공부할 때 사회주의 경제학으로는 공산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물질적 부를 절대로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다.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하면 능히 건설된다고 주장했다. 사상적 요새라 함은 사람을 공산주의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고, 물질적 요새라 함은 물질을 많이 생산하여 사람들이 요구하는 수요대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법칙으로는 절대로 공산주의를 건설할 수 없음을 누가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것을 확정이나 해주듯 죽국이 자본주의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이 전부 붕괴되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도 김정일만은 뭔가 대책이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마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절대로 변화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간부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배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라는 것뿐이었다.

당시 북한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가적으로 배급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오늘 보이던 사람이 내일 보이지 않았다. 굶어 죽은 것이다. 부득불 출장을 가게 되면 철도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기차를 이용하여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먹을 것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역전 대합실에는 굶주려 쓰려진 시체들로 넘쳐나고 한마디로 국가는 마비되어 파탄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인생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슬프던지 비참하기까지 했다. 김정일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나니 인생이 더욱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밀려들었던 인생의 허무함과 갈등은 뭐라고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김정일 저 사람을 위해서 내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정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남조선인가?' 탈북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잘 알고 있던 대한민국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

셋째로 내 인생에 갈등을 느끼게 된 것은 김정일의 정치 스타일이었다. 원래 김정일은 유년시절부터 나라의 왕이 될 것을 꿈꾸고 철저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이미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문화, 예술부분에서 일했다고 했지만 사실상은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보위, 치안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 김일성의 최측근에서 일하는 간부들에 대해서는 직위 공로에 관계없이 정보정치의 방법으로 감시하고 자료를 종합하여 김일성에게 보고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해왔다.

1980년대 당의 기초를 쌓는다고 할 때부터 나는 사실 실망하기 시작하였다. 당의 기초를 쌓는 것은 한마디로 김정일의 정치적 기반을 쌓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나라의 왕이 되면 자기의 정치적 기반을 쌓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정치적 기반 쌓기는 악랄하고 치사하고 유치하였으며 일정한 원칙도 없었다.

당의 기초를 쌓기 위한 사업에서 두 번째로 김정일이 한 것은 간부대열을 다시 꾸리는 사업이었다. 세대가 바뀌기 때문에 간부대열이 다시 정비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김정일을 옳지 않다고 본 것은 당의 원칙대로 충실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고 간부대열을 다시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동향, 동창 위주로 당내 간부대열을 꾸리고 인민군 간부들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에게는 선물과 뇌물로 자신의 정치 기반을 쌓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확신했다. 당장은 그것이 아주 든든한 기초인 것 같지만 모순과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을 김정일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북한은 간부들부터 시작해서 전당적으로 또 전국적으로 뇌물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깔끔하던 북한이 이렇게 된 데는 김정일의 선물과 뇌물바람이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이쯤 되었으면 북한 체제의 계급적 진지는 돈 있는 사람들로 꾸려지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공산주의 외피에 부르조아 내장을 가진 기형적 체제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17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김정일의 정치 스타일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지만, 김일성이 죽은 후 김정일이 북한의 수령으로 공식화되면서 나의 갈등은 더 심각해졌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었다. 그와 함께 북한의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대신해서 수령을 물려받을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김일성이 죽기 전에도 북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김정일이 북한의 수령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계기나 정치적, 법률적 의전과 행사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를 비롯한 북한의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김정일에게 순수하고도 신선한 정치적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당시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것이 분명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 국민이나 국가의 최고 책임자에게 국가와 국민을 올바로 다스려 줄 것을 요구하는 권리가 있는 법이다. 북한 국민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당시 북한의 형편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집단 아사로 이어져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으며 가족이 붕괴되어 부모를 떠난 아이들이 거리에서 방황했다. 이런 참극 속에서 북한 인민들이 김일성 사후 김정일에게 기대한 유일한 것은 죽지 않을 정도로 먹여 달라는 것뿐이었다. 사람이 굶어 죽는데 무슨 대책을 세울 생각은 안하고 죽을 테면 죽으라고 내버려 두는 김정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옛날부터 사람이 사흘을 굶으면 도둑질 안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죽게 된 판에 북한에서는 협동농장의 옥수수를 훔쳐 먹는 일, 공장 기업소의 설비를 도둑질하여 중국에 팔아먹는 일, 심지어 살인, 강도 등 이전에는 전혀 있을 수 없던 일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쯤 되니 북한의 인민들은 살길을 찾아 조국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김정일은 내가 충성할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사회주의 경제법칙으로는 절대로 공산주의를 위한 물질적 요새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스스로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가용 타고 폼 내면서 살아갈 날을 기대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차마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굶어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고보니 참담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앞날은 더 아득할 뿐이었다. 김일성을 위해 한생을 그것도 인생의 황금기를 다 바쳐 충성해온 것이 후회스러웠고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을 위해 나머지 생을 바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기가 막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동당에 충성를 하다가 누구의 총에 맞았든 처형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전사한 형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겠는가. 인민들이 집단적으로 굶어 죽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김정일을 위한 죽음이었다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 물론 인간은 부족하기에 어느 한 쪽에 서면 자기가 선 쪽을 정당화한다. 이것이 지역주의가 될 수도 있고 이념이 될 수도 있고 종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과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셨다. 그런데  내 아버지와 형님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이 모든 환경과 현실 앞에서 "이것은 아니다" 라고 판단은 되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였다. 이 갈등은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고민하고 갈등할 뿐 어떤 뾰족한 대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암담했다. <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심주일 목사(부천 창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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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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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2-10 15:20:21

    '김일성을 위해 한생을 그것도 인생의 황금기를 다 바쳐 충성해온 것이 후회스러웠고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을 위해 나머지 생을 바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기가 막혔다.'...
    그 어떤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헌신하지 말라고 군주론에서 언급했던 마키아벨리가 고개를 끄덕일 대목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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