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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관계 강화의 동기와 배경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S) 현안진단

크림반도 합병을 통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러시아의 발걸음이 동방으로 향하고 있다. 푸틴3기 정부 출범 후 실체가 불분명했던 ‘아시아 지향성’이 최근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5월 말 러시아는 중국과 처음으로 동중국해에서 해군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과 해양영토분쟁을 겪는 중국을 러시아가 지원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한반도, 특히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접근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도 기존 중국 편중의 대외관계 구조에 러시아 요소를 가미하며 신(新)등거리외교를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에 따른 동북아 지정학은 다층적 구도를 띠면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북·러 양측은 상호접근이 주는 전략적 이익을 저울질하며 협력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북·러 경제협력 가속화
북·러 접근의 흐름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이 두드러진다. 고질적인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석유는 사활이 걸린 전략적 자산이다. 러시아 관세청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모스크바 무역관의 통계에 의하면, 러시아는2013년 3,689만 달러(한화 377억원) 규모의 석유를 북한에 수출했다. 이는 전년(약 2,328만 달러) 대비 58.5% 증가한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의1차 핵실험 이래 국제사회의 제재국면에서 대북 석유수출 축소기조를 유지하다가 과거의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중국의 대북 석유 및 식량지원의 조정을 주장해 왔지만,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 일변도의 석유자원 의존구조를 탈피하고 수입구조를 다변화하는 모습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2013년 9월 양측은 극동 하산역과 나진항 간 54km 철도 구간을 개통했다. 당시 북한은 이를 ‘조러관계 발전과 공동번영의 이정표’로 평가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중국이 동북지역의 출해구(出海口)로 나진항 1, 2호 부두 개발문제에 떠들썩하게 접근했지만, 최근 북한측 인사는 중국에 대한 장기 조차권 사실을 잇따라 부인하고 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나진항3호 부두 개보수 공사를 차질없이 진행하며 실속을 채우고 있다.

한편, 최근 들어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유리 트루트네프(Yuri Trutnev)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와 로두철 북한 내각 부총리 등 양측 고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측은 소방차 수십 대를 기증했고, 경제와 철도·운수 분야 협력합의서도 체결했다. 북한은 러시아대표단 방문 및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북·러 친선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또한 양측은 답보상태에 있는 현재의 교역량(1억 달러)을 2020년까지 10배인 10억 달러로 확대하는 데 합의하고, 남·북·러 삼각협력도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번 방문을 통해 대외교역에서 유로화를 결제통화로 사용하고 있는 북한이 러시아와 무역에서 루블화를 사용하는 것에 관해 협의를 진행한 것은 양측 간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북·러 간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은 구소련 시기 북한의 대러 채무를 대폭 탕감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대러 채무는 약109억 달러(11조2천억 원)에 상당한다. 러시아는 이 가운데 90%를 탕감하고, 나머지 10%인 1조1천억 가량은 20여년에 걸쳐 상환받되, 이것도 북한의 보건과 교육, 에너지 분야 등에 재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조치는 남·북·러 공동사업 활성화는 물론 북·러 간 협력의 최대 장애요인을 해소하며 양측 간 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재인식
그렇다면 이처럼 북한과 러시아가 밀접한 관계를 열어가는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러시아측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국제사회의 중요 행위자는 단연 러시아다. 미국의 외침은 공허하고, 중국의 힘은 다소 거칠게 투사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는 시리아 및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세련되고 공세적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20여년의 조정기를 거치며 제국의 추억을 간직한 러시아가 이제 국제사회에 그 실체를 각인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서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 전략가들은 탈냉전의 국면에서 과도한 친서방 노선을 지향하면서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급속하게 상실한 점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있다. 특히, 대한반도 전략 실패는 러시아 외교사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냉전의 붕괴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북·러 공동 위협인식의 소멸을 낳았고,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외교는 한·소수교(韓蘇修交)로 이어지면서 북·러관계를 파국으로 몰았다. 이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 상실로 귀결되면서 2차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2000년 초 다자간 협상과정에서 러시아가 소외되고, 이후 우려곡절 끝에 6자회담에 참여하는 수모를 당하였다. 그리고 북핵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 상실은 단순히 러시아의 변방에서 일어나는 양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중(美·中)의 세력구도가 고착되고 있는 동아시아는 물론 아태지역 전체에서 러시아 위상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 것이다. 최근의 북·러 접근은 이러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러시아가 재인식하는 가운데 실행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서방의 공세에 대해 러시아가 동부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도 대응하는 다목적 카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북·러 이해관계의 일치

   
 

한편, 북·중관계의 유동성 증가도 북·러 접근의 중요한 요인이다. 비록 아직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북·중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양측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열망하는 핵무장과 대중국 의존 심화는 점차 양측의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중국이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러시와의 관계 강화는 북한에 새로운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극동개발을 통해 아태지역에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이해와 과도한 대중국 의존을 탈피, 다변화하려는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이해의 일치 속에서 북·러 간 상호접근은 경제와 대외관계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의도가 결부되어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병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박병인  bipark@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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