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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던 다산은 시라도 읊었는데…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주자(朱子)라고 존칭 되는 주희(朱熹:1130~1200)는 동양의 중세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하여 주자학(朱子學)이라는 학문체계를 이룩한 큰 학자였습니다. 그는 경전을 해석하면서 “혈기(血氣)의 분노야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의리(義理)의 분노는 있어야 한다”라고 분명히 밝혀 분노의 의미를 그런대로 바르게 해석했습니다. 그러했건만 조선 시대의 많은 주자학자들은 “기쁘거나 분노하는 표징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喜怒不形于色)”면서, 기쁜 일이나 분노할 일이 있을 때 마음속으로 삭여야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어진 사람의 덕이라고 여겼습니다. 오로지 조용하고 음전한 태도가 높은 덕임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와 달리 다산은 ‘상시분속(傷時憤俗)’, 즉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참다운 선비가 아니라고, 그런 사람은 시를 지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내용에 ‘상시분속’이 없다면 그건 시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주자 같은 도덕주의자조차 의리의 부당에는 분노하라고 했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일조차 막는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조선 후기 삼정은 문란해졌고 탐관오리들은 착취에 눈이 멀어 있을 때, 지독한 가뭄까지 겹쳐 온 세상이 비탄에 빠져 있을 무렵, 견디기 힘들던 다산은 「전간기사(田間記事)」라는 시집에서 세상에 분노하는 무서운 시들을 읊어 자신의 분노를 삭이는 감정 억제의 일을 해냈습니다.

   
▲ 다산 정약용 초상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까지 겹친 1809~1810년경의 혹독한 가뭄에, 부패한 관리들의 비행 때문에 당하던 애잔한 백성들의 비참상을 시로 읊어서, 자신의 마음도 달래고 비통한 백성들의 슬픔도 위로하는 문학적 작업을 이룩했습니다.「유아(有兒)」라는 제목의 시는 부모가 버린 어린 남매가 길 위에서 헤매는 모습을 읊었고, 「발묘(拔苗)」라는 시에서는 타들어 가는 논의 벼를 뽑아내며 울음을 삼키던 농부들의 비참상을 그렸습니다. 세 곳 아전들의 횡포와 탐학을 읊은 「삼리가(三吏歌)」는 권력에 짓밟히는 농민들의 참상을 그림 그리듯이 읊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시라도 읊은 것은 “올바른 이성과 감정으로 하늘과 땅의 화기(和氣)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해, 미칠것 같은 분노를 삭여 이성과 감성을 제대로 유지하려는 뜻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세월호의 참사가 우리 모든 국민을 분노케 했습니다. 대통령도, 장관들도, 모든 관료들도, 관계 기업도 우리를 분노케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무능한 정부, 그처럼 사과에도 인색한 통치자, 어느 누구도 죽어간 백성들에게 진정성 있는 위로나 슬픔도 보여주지 않았으니, 그런 현상을 목격하는 국민들, 어떻게 해야 하늘로 치솟는 분노를 삭일 수 있을까요. 시라도 지어야 하는데, 시를 지을 재간도 없는 일반 백성들은 어찌하오리까.

분노를 삭일 게 아니라, 분노케 한 작자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의리의 부당함에는 반드시 분노하라고 했으니, 그 많은 생명을 죽게 했던 핵심 권력자들을 반드시 문책하여 천지(天地)의 화기를 유지케 합시다. 분노하고 행동하여 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해 드립시다.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사)다산연구소와 유코리아뉴스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석무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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