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의 위기와 기회, 그리고 종전선언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65호

위기 요인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9월 20일 개최된 제65차 IAEA 총회에서 북한이 핵개발에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IAEA는 지난 8월 27일 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 영변 핵시설 내 5MW 원자로와 관련해 “2021년 7월 초부터 냉각수 배출을 포함해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정황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영변의 원자로를 가동하면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사용 후 핵연료를 확보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보다 앞선 2월부터 7월 초까지 5개월간 영변의 방사화학실험실이 가동된 징후도 발견되었다.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의 확충에도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9월 16일 CNN 등은 영변의 핵시설에 1000여 기 규모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용 시설이 새로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영변의 기존 4000여 기의 원심분리기에 1000여 기가 추가될 경우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능력이 25% 증가된다. 이외에도 9월 17일 ‘38노스’에 따르면 영변의 실험용 경수로 남쪽에 새로운 건물이 증축 중이며, 건설 현장의 규모로 볼 때 더 많은 건물이 건립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9월 15일 미국-영국-호주 간 안보네트워크인 오커스(AUKUS)가 출범했으며, 미국과 영국은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획득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 대외보도실장은 9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의 결정 배경과 전망을 엄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부정적 영향이 미치는 경우 “반드시 상응한 대응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중국은 호주의 핵잠수함 획득사업에 대한 지원을 국제 핵 비확산체제 위반으로 비판하고 있다. 향후 북한이 오커스를 명분으로 핵확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 9월 13일 사거리 1,500㎞의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는데 이를 ‘전략무기’라고 보도해 핵탄두 탑재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의 순항미사일은 마하 0.58로 여객기 속도보다 느리지만, 저고도 비행으로 레이더 포착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미의 대응에 제약이 있다. 북한은 9월 15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KN-23 이스칸데르급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은 기차에서 발사되었으며, 사거리는 800㎞로 동급 최장거리였다. KN-23 이스칸데르급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북한의 열악한 도로 사정상 이동식 발사대(TEL)의 운용에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철도를 이용할 경우 미사일 발사체계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게 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금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전술핵무기 개발의 본격화와 아울러 각종 첨단무기 개발을 지시한 바 있다. 이번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북한 매체는 노동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 중점목표달성’과 ‘새로운 국방전략수립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이번 발사는 이미 계획된 것이며, 향후에도 관련된 무력시위가 지속될 개연성이 있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능력 확대와 단거리 발사체 등 전술핵 개발의 본격화는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기술적 필요성과 아울러 미국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특히 북한이 이란, 파키스탄 등 중동국가와 핵-미사일 커넥션을 강화하거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나설 경우 북·미관계 경색은 물론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의 긴장고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회 요인

영변 핵시설을 가동하고 전술핵 개발을 위한 발사체 발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선포한 ‘자발적 모라토리엄’을 준수하고 있다. 제3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과,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을 결정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북한은 핵실험 및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있으며, 핵확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북·미 간 대치 국면에서도 레드라인은 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올해 3월 한·미 연합훈련 직후 순항미사일 발사에 이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9월에도 역시 동일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나 순항미사일은 유엔결의 위반이 아니며,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 유엔이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과 9월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지 않았다. 북한은 9월 9일 정권수립기념일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을 개최했지만 최근 두 차례의 열병식과 달리 위협적인 무기나 핵무기를 선보이지 않았다. 열병식에서 대남, 대미 메시지는 없었으며, 대내 체제결속의 성격이 강했다.

남북은 정상 간 친서교환을 통해 금년 7월 27일 지난해 6월 이후 단절되었던 남북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은 남북정상이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큰 걸음을 내짚을 데 대하여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은 북한이 지난해 6월 대적관계로 전환한 남북관계를 다시 정상화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남북정상 간 친서가 여러 차례 오고 갔다고 했으며, 국정원은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전후 남북한 간 의미 있는 의사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을 전후로 남·북·미 정상 간 직간접적인 의사소통이 있었던 셈이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 이후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철 부장은 8월 한·미 연합훈련에 강력히 반발하고 대응을 예고했지만 고강도의 후속조치는 없었다. 올해 3월 김여정 부부장이 정리를 경고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 역시 특별한 위상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부부장은 9월 15일 담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의 도발’이라는 표현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이라며 남북관계의 완전파괴를 언급했지만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동안 미국은 대북제재 유지를 강조했지만, 최근 대북 인도협력을 부각시키며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성 김 대북특별대표는 8월 23일 한·미 북핵수석대표회담 직후 "인도적 협력방안,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며 ”남북 인도적 협력 사업을 지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성 김 대표는 8월 30일 미국에서 한·미 북핵수석대표회담 직후 "현지(북한) 상황에 대한 관점은 물론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포함해 관여를 위한 여러 아이디어와 구상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또한 성 김 대표는 9월 14일 도쿄에서 한·미·일 북핵수석대표회담 직후 "비핵화 진전과는 상관없이 인도주의적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측 인사가 비핵화 진전과 무관한 북·미 협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전반적으로 북·미 간 입장차가 유지되는 가운데 대치국면을 이어가고 있지만 양측 모두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당면한 복합위기의 근본적 해소를 위해서는 대남, 대미관계의 개선이 절실하다. 미국 또한 북핵 문제의 장기교착에 따른 고비용구조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전략적 도발에 나설 경우 아프가니스탄 철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바이든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게도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안정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종전선언의 재인식과 남북관계 변화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1일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 아니며, 평화협상에 진입하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북·미관계 정상화 이후에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유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은 정전체제와 정전협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종전선언의 출발점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도출된 2007년 10.4선언이다. 당시 남북정상은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했으며,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이를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이미 남북은 사실상 여러 차례 종전선언에 합의한 셈이다. 그러나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종전선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의 조합을 이끌어내지 못 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종전선언의 도출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입장은 부정적이지 않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끝내고 휴전 체제를 전환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 해결 프로세스에 중요한 부분이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대”라며, 관련국들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로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이 한반도 정전체제의 당사자로 인정되는 한 종전선언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22일 브리핑에서 "북한과의 관여를 모색하고 있고,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그리고 유엔사체제에 직접적 영향이 없다면 북한을 견인하는 종전선언에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많지 않다.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9월 24일 북한 외무성 리태성 부상은 담화를 내고, 대북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전상태를 끝낸다는 것을 공개하는 정치적 선언”으로서 상징성이 있다며 종전선언의 의의에 대해 동의했다. 이후 7시간 만에 김여정 부부장이 다시 담화를 내고 종전선언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며 보다 적극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 부부장은 대북 적대시정책과 불공평한 이중기준 철회 등 선결 조건이 마련되면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며 “북남관계, 조선반도의 전도 문제도 의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조건이 충족될 경우 종전선언은 물론 남북관계 진전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전향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나아가 9월 25일에도 담화를 내고 “북남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북남 수뇌 상봉 등 여러 문제들도 논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며 경색된 남북관계의 회복과 평화적 안정은 북한의 바램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공정성과 상호 존중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은 현재의 남북관계에 변화를 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 정상회담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 간 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국제법적 효력을 지니는 평화협정의 체결이 필요하다. 평화협정은 전쟁의 종식, 영토확정, 포로교환, 배상, 그리고 관계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종전선언을 포함한다. 우리에게 종전선언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한반도 문제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이다. 북한 비핵화에만 최소 10년 이상, 경우에 따라 수십 년이 소요될 수 있다. 평화협정은 남북한, 미국, 중국, 유엔이 관여하는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과정이라는 점에서 당장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역사상 대부분의 평화협정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체결되었다. 종전선언이 도출된다고 해서 평화가 바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난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입구를 형성하는 노력이 중요하며, 종전선언은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종전선언 도출 과정에는 ‘디테일의 악마’가 숨어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여건의 마련, 미·중 간 전략경쟁의 영향,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임기 말 리스크 등 다양한 제약요인들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처럼의 기회를 살릴 일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다시 기약 없는 교착국면에 놓이게 될 것이다.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동력으로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구축, 그리고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이라는 세 차원의 로드맵을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