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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지킴’이 아닌 ‘평화만듦’을평통기연 평화칼럼

구약성경은 소위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하는 윤리 규정을 갖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행한 것만큼 보응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호이지요.

얼핏 보면 이 구약 윤리는 굉장히 잔인하고 원시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 이 탈리오의 법칙은 과도한 복수를 금지하는 정의와 사랑의 법이었습니다. 눈이 뽑힌 사람이 상대방의 눈만 뽑는 것이 아니라 목까지도 뽑으려고 하는 과도한 복수심을 억제하는 형평과 정의의 법인 것입니다. 따라서 소극적인 표현으로 나타난 인간 사랑의 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응의 법칙은 정의는 그런대로 지키지만 평화는 만들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평화를 파괴하는 근본 원인인 원수관계,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눈을 뽑고, 이를 부러트린 원수를 아예 ‘용서하라’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원수 사랑은 사람 사이의 평화를 깨뜨린 증오심과 복수심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사라지게 하여 인간사회의 정의가 그 뿌리에서부터 회복되도록 하는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징벌적 정의((punitive Justice)’라고 하는 반면에, ‘원수 사랑’은 아예 원수관계를 사랑관계로 회복시키는 근원적 해법이기 때문에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할 때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바로 이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셨습니다. 우리 남한 교회가 북한 공동체를 향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보다 원수 사랑으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는 예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정부는 그 직무상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징벌적 정의를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이 연평도 NLL 근처에 해안포를 100여발 발사하자 우리 군은 300여발로 대응 사격했습니다. 더 엄한 징벌을 통해 정의를 지켜내야 되겠다는 입장이지요. 그러나 이런 입장은 결국 ‘평화지킴(peace-keeper)’의 역할 이상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교회는 정부보다 더 중요한 ‘평화만듦(peace-maker)’의 역할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소명을 위해 우리는 ‘탈리오의 법칙’ 보다 ‘아가페의 영성’으로 북한 공동체를 대하여야 합니다. 이 영성은 오직 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한 내면의 힘입니다. 우리 남한 교회가 이 힘을 키우는 성령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문식/ 광교산울교회 목사

이문식  ttend@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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