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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가의 통일외교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통일외교의 난맥상은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다. 특히 미국의 대통령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지나 않을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에서 어떤 극적 계기가 발생한다 했을 때 우리가 이를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로 잘 인도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자신할 수 없다. 우리의 내부상황을 살펴보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는 고사하고 파멸적인 선택을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인류의 역사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통일 사건들이 널려 있다. 격렬한 전쟁을 거친 무력통일이 다수이고 평화통일은 극히 드물다. 무력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두 국가 이상이 하나의 국가로 합쳐지는 통일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과거의 사례를 한 번쯤 돌이켜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하지 않던가.

필자가 한국외교론 수업에서 활용하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기원전 4세기경 중국통일을 둘러싼 외교이며, 다른 하나는 19세기경 독일통일을 둘러싼 외교이다. 두 사례에 있어서 모두 외교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전자의 경우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로서 후세에 종횡가(從橫家)라 칭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는 메테르니히(Metternich)와 비스마르크(Bismark)인데, 특히 비스마르크를 후세에는 철혈재상이라 칭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종횡가의 외교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종횡가란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하나로 이 시대를 이끌었던 일곱 강대국들 사이의 외교를 종(從)으로 연결할 것이냐 횡(橫)으로 연결할 것이냐를 두고 경쟁했던 외교정책가들을 지칭한다. 당시의 국력 구조를 보면 중국 서부의 초강대국인 진(秦)이 중국 통일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연(燕), 제(齊), 초(楚), 조(趙), 위(魏), 한(韓)의 여섯 나라가 반진동맹(反秦同盟)을 구성하고 있었다. 현대에 있어서 동맹외교 대 세력균형외교의 경쟁과 유사하다.

합종책(合從策)은 한나라 출신의 소진이 주장한 외교정책으로 6국이 동맹하여 진나라를 방어함으로써 국제평화를 달성하자는 제안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나라가 강대국이긴 하나 6국이 합하면 국력의 차이는 약 6배가 된다. 그러므로 6국을 집어삼키려는 진나라의 야욕 앞에서 벌벌 떨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6국을 순회하면서 각 국가의 국토규모, 병력, 전략적 요충지, 국제적 세력균형에 있어서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독립심을 고양시켰다. 여기에다 최후로 민족감정에 불을 질러 합종책에의 참여를 고취시켰다.

소진의 합종책은 단순히 국제구조의 합리적 분석과 설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조숙후(趙肅侯)로 하여금 6국동맹의 핵심임을 자각케 하고, 초위왕(楚威王)에게는 무임승차의 유혹을 포기하고 동맹에로의 결속을 강화시켰으며, 친구인 장의를 진나라에 파견하여 진나라의 영토확장 방향을 새외(塞外)로 바꾸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결과적으로 합종책은 전쟁으로 지새우던 전국시대에서 15년간의 평화를 보장하였고, 소진은 6국동맹의 장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죽었다.

연횡책(連橫策)이란 위나라 출신의 장의가 주장한 외교정책으로 진나라와의 동맹이야말로 각 국가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소진 사후에 장의도 6국을 순회하면서 국제구조의 합리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소진과 다른 점은 각국의 국력을 진나라의 국력과 비교 분석함으로서 공포와 불안을 야기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6국동맹을 유지하면 각국의 국력신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해당 국가 자신의 과거 사례를 들어 국제적 무정부성과 보편적 이기주의가 결국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동맹을 유지하는 한 약소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파함으로써 각국의 동맹 탈퇴를 부추겼다.

전국시대의 역사를 보면 종횡가의 경쟁에서 결국 연횡책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장의의 분석대로 국제사회의 무정부성과 보편적 이기주의 그리고 이로 인한 도덕적 무관심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여겨진다. 일곱 개의 민족국가들이 그토록 극악한 영토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통일이야말로 평화의 토대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 진시황의 포악한 통치와 1대도 가지 않아 진나라가 붕괴된 역사를 보면 통일을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이 필요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백종국/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

백종국  jgback@g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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