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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극적인 건 그 비극이 여전히 진행중인 비극이라는 점"국군포로와 탈북자 이야기 다룬 가족동화 "할아버지에게 아빠가 생겼어요" "설마 군과 진짜 양의 거짓말 같은 참말" 출판기념회 현장

“비극이 뭔지는 알지?”

“알아. 슬픈 이야기”

“남과 북이 갈라져서 으르렁거리게 된 것. 같은 민족끼리 총칼 들고 쏘고 찌르고, 그래서 죽이고 죽는 것. 부모 자식이 오십 년, 육십 년이 넘도록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정든 고향 정든 집에서 살지 못하게 된 것. 그게 우리나라의 비극, 6‧25가 가져온 비극이야. 더 비극적인 건 그 비극이 여전히 진행 중인 비극이라는 점이지.”

생환 국군포로 이야기를 담은 동화 <할아버지에게 아빠가 생겼어요>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작가는 분단의 비극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곤 증조할아버지부터 손녀딸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의 슬픈 이야기라고 속삭인다.

한 권의 동화책이 더 있다. 탈북한 어린 소년소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설마 군과 진짜 양의 거짓말 같은 참말>이다. 가족동화를 표방한 두 권의 책은 정길연 작가가 쓰고, 초‧중‧고등학생 60여 명이 삽화를 직접 그려넣었다. 전례 없는 소재를 다룬 가족동화 두 권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도서출판 물망초(대표 박선영)는 21일 KT 광화문 빌딩 1층 드림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 가족동화 책에 삽화를 그린 어린이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무대에 섰다. ⓒ유코리아뉴스

다섯 소녀가 본인들이 그렸다는 삽화를 들고는 수줍어하며 무대 위에 섰다. 동화책을 먼저 읽고 삽화 그리기에 참여했다는 아이들은 각자 그림을 그리며 느낀 소감을 차례대로 말했다. 내정초등학교 3학년 이윤서 학생은 “슬펐다. 자기 동생이 굶어죽은지도 모르고, 동생을 위해서 기도한 모습이 슬펐다”며 책에서 느낀 슬픔을 표현했다.

군인들이 철조망을 지키는 모습을 그렸다는 내정초등학교 2학년 김승현 학생은 “무서운 군인들이 없어지고 남과 북을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렸다”고 고백했다. 학생들의 그림지도를 담당한 채현교 화가(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는 “통일이 된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면서 “통일을 맞이할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많이 주어질수록 통일 이후의 혼란은 그만큼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행사 시작 전 카페에서 잠깐 만난 정 작가에게 동화에서 ‘국군포로’를 다룬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에 정 작가는 “국군포로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군포로 그 자체를 다루지 않고, 어떤 정치적 해석들을 가한다. 그래서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정치적인 것을 다 배제한 채 문학이라는 순수 장르로 접근하면, 독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순수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창작 배경을 소개했다.

한편, 박선영 대표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불참한 학생들의 작품도 일일이 챙기는 세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기념 떡에는 아이들에게 시험 잘 보라는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그동안 탈북자 인권문제에 관여해 온 박 대표는 본보에서 2주 전 보도한 손명화 씨와 같은 국군포로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다음은 이날 장원재 SNS바른소리 대표가 정 작가와 가진 '작가와의 대화' 전문.

   
▲ 가족동화 <거짓말 같은 참말> <할아버지에게 아빠가 생겼어요> 저자 정길연 작가 ⓒ유코리아뉴스

장원재 대표(이하 ‘장’) : 어떤 문학수업 과정을 거쳤나?

정길연 작가(이하 ‘정’) : 중학교 때 우연히 국어선생님에게 발탁됐다. 그 바람에 문학소녀 흉내를 좀 내다가 이 길로 들어왔다. 여태껏 다른 길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글만 써왔다.

장 : ‘문예중앙’을 통해 같이 등단한 문인은 누군가?

: 문예중앙은 한 명씩 뽑는다. 그래서 같이 등단한 문인은 없다. 바로 뒤에 등단한 작가가 신경숙이다. 학교 후배이자, 등단 후배다.

: 최인훈 선생한테도 배웠다고 들었다.

정 : 학교(서울예술대학교)에 다닐 땐 아무도 내가 소설을 쓰리라곤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선생님들 모두 내가 시 쓸 줄 알고 계셨단다. 그런데 결국 소설로 등단하게 됐다.(웃음)

장 : 최인훈 선생이 함경북도 회령군 출신이고, 실향민이라 들었다. 이 동화 쓰기 전에 실향민 혹은 생환 국군포로 문제든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정 : 일반인들의 관심과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거다. 우리 집은 저 남쪽 낙동강 전투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6.25 전쟁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고, 좌우 문제로 관련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공군장교였다. 그래서 전혀 그런 과거는 없었다. 문학 공부를 하다 보니 최인훈 선생의 광장을 읽었다. 그 때 국군포로 교환 당시와 그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다 사회의 음지에서 항상 힘들어 하는 사람 이야기에 관심으로 확대됐다. 이런 과정 때문인지, 이 소재로 글 쓰는 작업에 비교적 빨리 몰입할 수 있었다.

장 : 생환 국군포로처럼 특별한 삶을 산 이들을 다루면서 작가로써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정 : 조심스런 부분이 많이 있었다. 사회 분위기가 탈북자 혹은 국군포로들을 정면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다보니, 어떤 식으로 해석될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작업하기 이전에 국군포로들의 구술 원고들이 있어 그것들을 참고했다. 그리고 생환 국군포로들과도 직접 만났다. 사실 정보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없기에 느낌을 가져보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좀 더 알 수 있었고, 그들의 마음을 점점 이해하게 됐다. 직접 그들의 집으로 찾아갔기 때문에 겪을 수 있던 에피소드도 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장 : 생환 국군포로들과 인터뷰 하면서 첫 느낌은 어땠나? 그리고 혹시 인터뷰 과정에서 달라진 생각이나 마음이 있나?

정 : 일단은 분노, 슬픔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마음을 들여다보면, 모든 게 슬픔으로 바로 넘어가는 걸 본다. 중간 과정이 없어진 거다. 너무 화가 나도 슬퍼지고, 너무 속이 상해도 슬퍼졌다. 그리고 부당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 있다. 물론 억울한 것도 있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걸린다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단지 그 한 사람의 생애가 어쩌면 이렇게 표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창작 목적만이 아니라 실제로 관심을 가져야 될 분들이기에 기꺼이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장 : 아직도 북한엔 500여 명이 미귀환한 채, 생존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은가?

정 : 정말 이 밑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정말 끝까지 살아주셨으면 좋겠다. 오실 때까지.

장 : 지금 그윽하고 급격한 슬픔을 느꼈다고 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상당히 절제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10대 소녀의 생기발랄한 문체, 그리고 그 연령대의 아이들이 쓸 법한 이야기를 아주 맛깔스럽게 표현했다.

정 : 동시대 언어가 어느 정도는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소설 쓸 때처럼 엄숙하고 진지하게만 써버리면, 가족동화가 될 수가 없을 거다. 그래서 모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동화로 가려면, 개개인의 연령대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평소에 전혀 안 쓰는 말투를 섞어 넣어 봤다. 다행히 그게 좀 밝아보였고, 비교적 현실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주제 자체가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글이 어둡게만 가버리면, 나부터도 안 읽는다.(웃음)

장 : 이 동화책 이후에 특별한 활동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정 : 어쨌든 소설로 출발한 사람이니깐, 소설책들을 낼 거다. 사실 아직 그동안 수집 자료들이나 들어왔던 자료들을 이용하려 한다. 다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소설로든 다른 장르의 글로든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연달아선 다 못 쓸 것 같다. 그게 좀 슬프다. 사실은. 이 일에 대해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 다른 작가도 이 자료들을 공유해서 나눠서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튼 계속 소설을 써야 한다.

장: 감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쏟는 작업이었을 것 같다. 수시로 슬픔이 차올라서….

정: 글 쓰는 작업에 있어, 작가들은 대체로 냉정하지만, 이번 작업에선 전에 없이 몇 번 울컥했다. 특히 아이들이 그려준 삽화들이 날 자극했다. 물론 이런 글을 계속 쓰다보면 그 감정이 너무 익숙해지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기가 힘들다. 그러니 다음 작업은 좀 미뤄놨다가 감정이 차오를 때 다시 쓰려고 한다.

   
▲ 내정초등학교 2학년 김승현 학생과 자신이 그린 철조망을 지키는 북한 군인들 그림.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장 : 작가의 손을 떠나면, 책의 운명은 독자에게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두 책이 어떤 운명을 갖게 될까?

정 : 물론 작가 입장에선 가능한대로 많이 읽혀지면 좋겠다. 하지만 먼저, 이 책에 등장하는 탈북자들과 생환 국군포로들의 이야기, 아직 북에 남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우리가 잊지 않았다’ 또는 ‘잊어선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독자들의 독후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꼭 이 책이 탈북자나 국군포로를 다룬 이야기로만 규정되길 바라지 않는다. 또 다른 측면의 독자층도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다가, 이 문제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고, 관심을 가지게 됐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에서 기여하고 싶다.

장 : 아까 삽화보고 울컥했다고 했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삽화 있는가?

정 : 그 중에서도 보면, 창문에 글씨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이름 쓰고, 동생 이름 쓰고 하는 그 그림 때문에 원고 내용도 잠깐 손질을 하기도 했다. 그림을 반복해서 보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다.

장 : 생환 국군포로들과도 소통했고, 삽화와도 소통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눈 작품인 것 같다.

정 : 그렇다. 이 책을 한 사람의 삽화가가 맡았다면, 아마 한 명의 독자밖에 못 끌어 들였을 거다. 이 동화를 읽고, 의논하면서 같이 그려나감으로써 이야기 속의 존재들이 우리와 같이 여기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이 벌써 많지 않은가. 그게 바로 우리가 노린 바이기도 하다(웃음). 아이들이 그림 작업에 참여한 자체도 고맙지만,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열심히 그려준 게 참 기특했다. 그래서 문득 내가 대리모가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분들이 이미 씨앗부터 시작해 모든 환경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물론 글은 내가 썼지만, 만든 걸로 치면 일부분만 참여한 셈이다.

장 : 슬픔으로 시작해서 고마움으로 끝난 작업인 것 같다.

정 : 그런데 여전히 슬프기는 하다.

장 : 이 책과 관련해 끝으로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정 : 도서출판 물망초 입장에선 가능하면은 책을 많이 팔아서 많이 읽어줬으면 고맙겠다(웃음). 하지만 그것보단 우리가 이 책의 주인공인 탈북자들과 생환 국군포로들을 서로 보듬고 치유해가는 그런 날들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장 : 그런 시간이 빨리 오기를 희망하면서, 작가 정길연 선생과의 대화를 마치겠다.

성상현 기자  jacksu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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