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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대 호랑이와 여우: 이명박 정부의 길을 가는 박근혜 정부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남북정상회담 대표단을 태운 차량은 휴전선을 넘고 예성강을 건너 평양의 백화원초대소에 도착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관이었던 필자도 수행원의 일원으로서 백화원초대소에 여장을 풀었다. 여장을 풀었지만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기에 방안에 설치된 북한의 TV를 켰다. 마침 북한TV에서는 ‘고슴도치와 호랑이’라는 만화영화가 방송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깊은 산골에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나 사슴과 토끼 등 동물들을 호랑이가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많은 동물들이 잡아먹히고 일부는 숨어버렸다. 고슴도치만이 산에 남았다. 드디어 호랑이는 고슴도치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가시를 송곳처럼 세웠고 달려드는 호랑이의 주둥아리는 피범벅이 되었다. 일단 후퇴한 호랑이는 다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다시 기회를 잡아 또 다시 고슴도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다시 송곳 같은 가시를 세웠고 호랑이는 다시 피범벅이 되었다. 결국 호랑이는 고슴도치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라고 하면서 걸음만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다. 산골에 숨었던 모든 동물들이 밖으로 나와 ‘고슴도치 만세!’를 부르며 축제를 벌였다.

2005년 5월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을 출간할 때 필자는 북한이 스스로를 고슴도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북한을 고슴도치에, 남한과 미국 등을 여우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것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에서 규정한 고슴도치와 여우의 모습이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북한과 나머지 5개국의 행동양태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벌린은 말한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안다.” 고슴도치(형)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단 하나의 체계적인 개념이나 기본원리로 단순화한다. 반면 여우(형)는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이나 통일된 비전으로 통합하질 못한다.

2000년대 초 한때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가 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위대한 기업의 리더는 ‘고슴도치 컨셉’을 일관되게 추진한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의 리더는 여우처럼 방만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 북한의 핵문제가 본격적인 국제이슈가 된 이래 지금까지 3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북한은 고슴도치 컨셉을 일관되게 추구했고, 그 결과 핵실험과 핵 보유에 성공했다. 그러나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은 어떤 때는 여우처럼, 다른 때는 호랑이처럼 방만하게 북핵 및 대북정책을 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와 부시 정부는 북한이라는 고슴도치에 대해 호랑이의 정책을 추진했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대북교류협력정책, 이른바 포용정책(햇볕정책)을 모두 페기하고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정책을 전개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비핵 개방’하면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 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정책이다. 북한이 ‘비핵개방’하도록 하는 것이 대북정책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이라는 대북정책의 결과물을 대북정책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그 결과 연평도 포격까지 발생했다. 1990년대 이후 최악의 남북관계였다. 이러한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시간끌기작전으로 임했다. 유도를 할 때 목을 조으고 시간을 끌면 타임이 오버되고 결국 승리한다. 그러나 축구에서는 시간을 끄는 팀은 대부분 패배한다. 득점의 기회를 놓치고 상대방의 벌떼같은 공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상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도 시간끌기 작전에 돌입한 듯하다. 북한이 붕괴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대북정책이 된 것이다.

시간이 과연 우리 남한과 미국의 편일까? 북한은 시간이 남한 또는 미국의 편이 아니라 북한의 편임을 명확히 밝혔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3월 17일자 '미국은 어리석게 놀아대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이 시간을 끌면서 우리에 대한 핵위협과 공갈을 계속하는 한 자위적 핵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를 바란다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실천행동으로 포기하여야 한다”면서 “그러한 의지는 보이지 않고 '선 핵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무장 해제시킨 다음 나중에는 군사적으로 덮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이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한 것은 그 사흘 전인 14일 북한 국방위원회가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맞서 '핵억제력'을 과시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위협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중국의 강대화와 북한의 핵무장 능력 강화라는 조건에서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미국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교리에 묶여 ‘여우’와 같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간 펼쳐온 대북정책도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단지 ‘3000’ 대신에 ‘대박’이 들어간 것이다. 즉 북한이 비핵개방하면 통일이 되고 통일이 되면 대박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도 대박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다른 점은 단 한 가지인데 ‘중국’에 대한 외교력의 집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인 ‘반중친미’ 즉 ‘반대륙 친해양’ 전략을 펼쳤다. 이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친중친미’로 중국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애초에 ‘전략적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오늘날의 동북아정세에서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는 남한을 위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추이텐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4월 10일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강제로 좌우하는 것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척 헤이글 미국방장관이 4월 8일 “도발적인 데다 자신들의 주민들을 억압하는 (북한)체제를 계속 지지하는 것은 결국 중국의 국제적 지위에 상처를 입힐 것”이라고 지적하고,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4월 1일 중국의 강력한 대북압박을 촉구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중국에게 북한을 변화시켜 줄 것을 주문한 데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북한은 4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추진해온 대북정책을 전면 거부했다. 특별히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연설한 대북 3대 제안, 즉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 등을 흡수통일을 위한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국방위원회는 이 3대 제안에 대해 “북남관계 개선과 발전과는 거리가 먼 부차적이고 사말사적인(자질구레한) 것들뿐”이라고 평가하며, “(이산가족)상봉이나 (대북)지원에 따른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 북남관계 개선의 선차적인 고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신 “7·4 남북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의 경우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의 해소’를 최우선적 과제로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을 모두 부차적이며 지엽말단적인 것으로 평가하며 “나라와 민족의 이익은 덮어두고 몇 푼 값도 안 되는 자기의 몸값을 올려보려고 줴친(떠든) 반통일 넉두리”로 폄하한 것이다.

   
▲ 지난 3월 26일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과 함께 섰다. ⓒ청와대

한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는 6자회담 재개의 사전조치에 대해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 대변인도 4월 14일의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행동으로 드레스덴 선언의 진정성을 보여줄 것이고 내부적으로 필요한 준비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스쳐가 현재의 국면을 전환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대북외교안보라인이 근본적으로 ‘발상의 전환’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새누리당과 현 정부의 권력기반이 남북관계의 극적인 개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또한 현재의 ‘전략적 인내 정책’ 다시 말해 시간끌기 정책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없다. 특히 범국민적인 통일준비기구로 설립을 추진 중인 통일준비위원회마저 친정부적인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더욱 힘들게 되었다.

대북정책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박 정부가 향후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인식 및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의 목적에는 부합할지언정 남북관계개선과 통일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략적 인내는 결국 남한 주도의 통일기회의 상실로 연결될 것이다.

둘째 국민통합적 통일준비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4월에 출범 예정인 통일준비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48%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지난 1년간 추진한 대북정책은 향후 4년간도 추진될 것이고, 이 경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하나의 차별성도 없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를 분리하고, 우리의 주도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경제력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더불어 남북간의 각종 경제협력과 특구개발을 촉진하는 것이 우리의 대북정책에서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5.24 조치의 해제를 적극 재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대북통일정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지난 1년간과 같은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면 이명박 정부시기에 있었던 2010년의 한반도상황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 북한은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실행할 것이고 서해 NLL해상에서 포격훈련을 할 것이며, 남북의 긴장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이것이 결국은 한반도의 뇌관을 터뜨리는 것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한반도가 대박이 나는 것이 아니라 쪽박을 차는 것이다. 북한은 고슴도치이다. 남한과 미국 등은 여우이다. 이 게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고슴도치와 여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배기찬 기자  baekic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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