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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호적에 이름 올릴 수 없는 나는 아직도 고아”납북된 국군포로 고 손동식 씨 딸 손명화(탈북민복지연합 회장)씨 인터뷰

지난 1월 14일 황진하 새누리당 의원은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원 법안은 2008년 개정을 거쳐 현재 시행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억류지 출신 포로가족’에게 최근 5년간 3등급 등록포로에게 지급된 보수 평균액의 100분의 70에 상당하는 금액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여기서 ‘억류지 출신 포로가족’이란 억류기간 중에 사망한 국군포로가 억류지에서 형성한 가족을 말한다.

현재 법규는 우리나라로 생환한 국군포로에 한해 예우 및 보상 차원에서 억류 기간 동안에 해당하는 보수·연금, 의료·주거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국군포로가 억류지(북한)에서 사망해 미귀환으로 처리되고, 포로 가족만 귀환하는 경우에는 해당 보수와 연금 등을 가족에게 대신 지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월 24일 국회 국방위 회의가 열렸다. 황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심사를 위해서다. 이에 대해 한영복 6‧25국군포로가족회 대표는 “국방부에서 전몰회(전몰유가족회) 수준에서 맞추겠다고 합의안을 내놨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갑자기 탈북 정착금에서 제하겠다고 우리에게 요구했다. 다시 항의했으나 국방부는 현재 아무 응답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 인권’ 문제는 4월 국회의 쟁점 법안 중 하나다. 지난해 새누리당은 ‘북한 인권법안’, 새정치연합(구 민주당)은 ‘북한민생인권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북한 인권법’으로 통칭되는 이 법안에는 납북자·이산가족을 비롯해 국군포로 문제도 포함돼 있다. 지난 10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황우여 대표최고위원은 4월 국회에서 기초연금법, 원자력방호방재법을 비롯해 ‘북한 인권법’을 시급한 현안으로 꼽은 바 있다.

지난해 10월 손명화(탈북자, 탈북민복지연합회장)씨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던 아버지 손동식씨의 유해를 아직까지 개인 보관한 채 현충원에 안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9일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아버지 유해를 든 채 한영복(6‧25국군포로가족회 대표)씨 등과 함께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는 손씨는 “당신들(국방부)이 요구할 것만 요구하지 말고 유족이 요구하는 점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북한에 가서 따지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답변에 분한 마음을 안고 진짜 북한에 가려고 인천항까지 갔지만 손씨는 출국금지 상태였다. 손씨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권리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며 앞으로 매일 거리시위를 통해 국민들에게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겠다는 방침이다. 다음은 지난 9일 광화문광장에서 가졌던 손씨와의 인터뷰 전문.

   
▲ 유해로 돌아온 국군포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는 손명화씨 ⓒ유코리아뉴스

-유코리아뉴스: 이렇게 거리에 나온 이유는?
손명화(탈북민복지연합 회장):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6‧25 때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갔으면, 정부가 최소한 명예회복이라도 시켜줘야 할 것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아버지 같은 국군포로들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때 누가 총을 잡고 이 나라 위해 싸우겠나. 안 싸운다.

-유코리아뉴스: 지난해 유해 송환이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현충원에도 안장됐던 걸로 아는데.
손명화: 10월 5일 아버지 유해가 국내에 들어온 걸 뉴스에서 쐈다. 아버지 유해를 모셔올 때 국방부에 ‘국군포로가 오니 정부에서 모셔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모셔오겠다고 하더니 국방부는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총격 사건에 죽은 사람도 비행기로 모셔오는데, 내 아버지는 트렁크에 들어 있다가 배로 간신히 들어왔다. 그런데 부두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국방부)이 모셔온 것처럼 뉴스를 내보냈고, DNA 검사 결과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우리 아버지가 현충원에 안장된 줄 알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그럼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았나?
한영복(6‧25국군포로가족회 대표, 이하 한영복): 아직까지도 안장되지 못했다. 그래서 손명화 씨가 이렇게 메고 나오지 않았겠나.

-유코리아뉴스: DNA 검사까지 했고 분명 현충원 안장식까지 한 걸로 보도됐는데 이상하다.
손명화: 아버지 유해를 가지고, 아버지와 내 유전자가 일치하는지 DNA 검사를 했다. 검사가 끝나고, 결과 통보서류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개인정보라 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본인이 요구했는데도 말이다. DNA 검사 감정서 통보서류를 받기 전에는 안장 못한다고 항의했다. 그제야 일주일 만에 퀵서비스로 통보 서류를 보내줬다.

-유코리아뉴스: DNA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손명화: DNA 검사 결과 99.99%가 일치하는 걸로 나왔다. 아버지와 내 유전자가 일치했다. 그러니 이제 나를 아버지 재적에 올려 달라고 했다. 또 다시 안 된단다. 아직도 난 고아인 셈이다.

-유코리아뉴스: DNA 결과까지 일치했는데, 국방부는 왜 계속해서 안 된다는 건가?
손명화: (아버지의)북한에서의 행적이 입증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내가 ‘아버지가 1984년도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DNA 검사 결과에는 그 (사망)추정년도까지 다 나온다. 그런데도 안 해준다고 발버둥이다. 안 해주는 원인은 이거다. 유해로 귀환하면 귀환이 아니고, 미귀환이란다. 살아온 사람만 귀환이고, 죽어서 온 건 미귀환에 속한단다. 국방부 논리라면 이 유해는 가짜고 북한에 내 진짜 아버지가 또 있다는 말인가.

한영복: 남한으로 살아서 귀환한 국군포로들은 입증되고, 북한에서 돌아가신 국군포로들은 입증이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유코리아뉴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손명화: 아버지의 병적증명서에는 ‘실종’이라 적혀 있다. 그래서 아버지 행적을 정정해 달라하니 일주일 만에 ‘실종’에서 ‘전사’로 변경해줬다. 그리곤 내 이름을 아버지 재적에 올려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지난해 12월에 ‘아버지 유해 들고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국방부에 다시 요구했으나 끝까지 처리해주지 않았다.

-유코리아뉴스: 혹시 아버지 재적에 올라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
손명화: 아버지 병적증명서에는 ‘전역’만 있고, ‘퇴역’은 없다. 한 번은 아버지가 입대했던 부대에서 찾아와서 퇴역식을 하자고 했다. 나는 퇴역식을 못한다고 했다. 당신들이 내 아버지를 미귀환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버지 퇴역식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먼저, 내 이름이 아버지의 재적에 올라가야, 아버지 자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아버지 퇴직금과 연금을 자식으로서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거였다.

-유코리아뉴스: 그래서 또 북한행을 시도했나?
손명화: 국방부는 내게 북한에 가서 항의하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 3월 25일 다시 부두에 갔다. 당신들이 나 보고 김일성 정권에 항의하러 가라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간 거다. 그런데 또 출국금지 시킨 거였다. 이건 힘없는 약자는 아무리 원통해도 길거리에서 헤매고 죽으라는 말 아닌가. 죽어도 눈 하나 아니 깜짝 하겠다는 게 국방부다. 나에게도 인권이 있다. 이건 아니지 않나. 명백한 인권 침해다.

 

 

-유코리아뉴스: 그 이후 국방부에선 다시 연락이 없었나?
손명화: 있었다. 곧 있으면 6월 보훈의 달이 돌아오지 않나. 어제(4월 8일) 국방부는 내 문제가 언론에 또 거론될까봐 염려됐는지, 안장을 빨리하자고 다시 통보했다. 안장을 빨리 할 때가 됐다면서 말이다.

-유코리아뉴스: 그래서 뭐라고 답했나?
손명화: 당신들이 요구할 것만 요구하지 말고, 유족의 요구하는 점도 해결해달라고 했다. 국방부는 안장을 빨리 하자고만 하지 말고, 내 요구조건 네 가지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들어준다면 안장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협조 요청 문서를 어제 국방부에 보냈다. 그런데 오히려 국방부는 압박만 가한다. 일단 아버지를 안장부터 하라면서 말이다.

-유코리아뉴스: 요구 조건 네 가지는 뭔가?
손명화: 첫째는 아버지 제적을 정정해달라는 거다. 둘째는 아버지 유해 비용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를 한국에 모셔오는 비용 3300만원은 남의 돈 빌려서 해결했다. 그래서 빚쟁이가 여섯 달째 집에 계속 찾아온다. 아버지 유해가 한국에 온 지도 6개월이 됐다. 셋째는 최소한의 예우적 차원의 대우를 해달라는 거다. 산 사람만 포로고, 죽은 사람은 포로가 아니란 말인가. 넷째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이다. 최소한의 명예 보상이 필요하다. 예우적 차원에서라도 6‧25 명예훈장과 포상금을 지급해줘야 한다.

-유코리아뉴스: 북한의 국군 포로 유해가 온 게 이번이 처음인가? 아니면, 이전에도 있었나?
손명화: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2004년)에 다섯 구가 왔다. 10년 전에 다섯 구가 왔을 당시엔 탈북자가 얼마 없었다. 그때 그들은 아버지 뼈를 배낭에 넣고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자 정부는 조총 쏘고 현충원에 안장시켰다. 그들은 자동적으로 유공자가 될 줄 알았다. 왜냐면 열사증(유공자 증명서)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국가유공자가 안 됐다. 그래서 관계자에게 다시 연락하자 전화가 차단됐다. 전화를 아예 안받는다. 당시 그 사람들은 몰라서 그랬지만, 남한 생활 7년차인 나는 이 나라 법을 알고 있다. 민주주의란 게 내 권리를 찾는 거 아닌가. 그래서 싸우는 거다.

-유코리아뉴스: 그럼 혹시, 2004년도에 온 국군포로 가족들의 모임이 있나?
손명화: 6‧25 국군포로가족회가 있다. 회원 수는 96명이다.

-유코리아뉴스: 10년 전에 이미 납북된 국군포로의 유해가 들어왔는데, 아직도 해결책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
손명화: 지금 국방부가 하는 말이, 관련 법이 없단다. 유해가 온 지 10년이 됐는데, 그동안 무슨 일을 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10년 전에 그런 법이 없었다는 걸 주장하지 말고, 이제라도 과감하게 빨리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빨리 안장을 하게끔 정부는 유족들을 도와야 한다.

   
▲ 국군포로 고 손동식씨의 딸 손명화(탈북민복지연합 회장)씨가 광화문광장에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유코리아뉴스: 현재 국방부에서 관련 법령을 개정하려는 논의 중에 있다고 들었다.
한영복: 2월 24일 국회에서 국방위 소관회의가 있었다. 황진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이란 법안을 놓고 심사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나와선 전몰회(전몰유가족회) 수준에 맞추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동의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그후 지금까지 아무 응답이 없다.

-유코리아뉴스: 전몰회 수준이란 게 어느 정돈가?
손명화: 전몰위에 속한 유족들도 과거엔 정부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몇 년간 시위했고, 현장에서 분신자살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그들을 유공자로 만들어줬고, 아버지의 수당을 연금으로 해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국방부 관할에서 국가보훈처로 넘어간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미귀환 가족이란 조건 때문에 수혜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단지 고궁, 수목원, 미술관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증만 줬을 뿐이다. 전몰회 수준으로 맞춰 달라 하니, 오히려 탈북 정착금 6000만 원에서 제하겠단다. 정착금은 2만 5000여 명의 탈북자 모두에게 주는 건데 여기서 공제한다는 거다. 이게 말이 되나.

-유코리아뉴스: 국군포로 가족이자 탈북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가장 억울한가.
손명화: 여느 탈북자와 우리를 똑같게 취급하면 안 되지 않는가. 우린 탈북자이지만 대한민국 국군이었던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이 나라를 위해서 3년간 참전해 포로로 끌려갔다. 그래서 국방부에 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포로 기준을 보면, 살아온 귀환 포로들은 3등급이다. 그들은 북한에서 탄광 광산에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죽은 아버지들은 2등급 포로다. 왜냐면 북한에 포로로 끌려가 아오지탄광 지하 막장에서 고생스럽게 일하다 다 죽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남한에 온 사람들(생환 국군포로)은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탈북자라 아는 사람도 없고, 힘도 없다.

-유코리아뉴스: 정부에 진심으로 요구하고 싶은 것은?
손명화: ‘약자니까 소리 치고 헤매다가 말겠지’라고 정부는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는 자기 의사와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은가. 난 사실 아버지의 명예와 권리를 찾자고 나왔다. 그런데 내 아버지는 죽어서 유해로 고국에 왔는데도 환영받지 못하고, 정부는 외려 언론에 거짓말까지 했다. 유족의 요구사항을 다 해주겠단다. 그런데 아직까지 10년째 법을 만드는 중이라 한다. 미국 정부도 유해가 오면, 돈 주고 송환시킨다. 그런데 내 아버지 유해를 내 돈 주고서 모시고 왔다. 이 나라는 그 비용을 말로만 계속 준다 한 지가 벌써 6개월이다. 말로 주지 말고 현실적으로 움직여 달라. 대한민국 국방부가 돈 3000만 원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잖나. 비용을 해결해주면서 ‘우리가 모셔 와야 되는데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한다면, 저도 마음의 문을 열 준비가 돼 있다.

-유코리아뉴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손명화: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어디든지 매일같이 나올 작정이다. 아버지 유해가 왔을 때 아버지 딸이 맞는지 물으면 국민 100%가 다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아버지 재적에 올라가야 하냐고 물으면 역시 그래야 된단다. 국민들은 다 그렇다 하는데, 국방부는 아니라고 하는 거다. 비 오나 눈이 오나 국민들이 많은 곳을 다니면서 국민들에게 내 사정을 호소하고, 서명운동을 받으려 한다. 아버지 유해를 메고 지하철이든 어디든 다니면서 국민들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공감대를 얻을 것이다.

성상현 기자  jacksu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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