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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가 신뢰하는 제3의 길을 찾아서탈북청년 박요셉의 ‘내가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이유’

수용.
필자는 북한에서 18년, 중국에서 5년, 동남아시아에서 1년, 대한민국에서 10년째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수용하며 살아왔다. 몇 년 전 생명의강학교 리즈 교장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했었다. “생명의강학교에서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다음세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북한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까?” 리즈 교장선생님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셨다. "생명의강학교 학생들은 북한에 대해서 배우는 것보다 먼저 다름을 수용하는 것부터 배웁니다." 통일을 준비한다고 하면 북한에 대해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10년 전 처음 대한민국에 왔을 때 나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쓸 때도 나는 북한에서 태어났다고 쓰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 북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부끄러워 최대한 서울말을 쓰려고 노력해왔다. 그렇게 북한 사람이 아닌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가려니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었던 친구들이 바로 미국인 친구들이다. 10년간 나는 대한민국 친구들보다는 미국인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친구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었고 조선 문화를 버리고 대한민국화 되어야 하는 존재였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고 친구로 만나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인 친구들로부터 나의 북한에서의 경험 그리고 북한 문화를 인정받는 것 자체가 나의 정체성 형성과 대한민국 사회 정착에 커다란 디딤돌이 되었다.

지난해 필자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통일 전 동독을 탈출하여 서독에 먼저 정착하였던 베라렝스펠트 옛 동독 출신 현 국회의원으로부터 서독의 동독탈주자들에 대한 정착훈련 과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독에서는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에게 서독 정착훈련을 받을지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또한 동독의 사회주의와 다른 서독의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부분이 좋고 나쁜지를 토론을 하면서 수용했다고 한다. 반면에 대한민국에서는 탈북민들에게 정착교육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나원 정착교육은 필수로 받아야 하며 토론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용이 아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한다. 통일사역을 한다고 하는 교회에서도 탈북민들과 함께 일대 일 성경공부를 하면서 북한 문화는 모두 버리고 새롭게 대한민국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대한민국 사회는 탈북민들에게 그들의 살아온 문화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방식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3만명이라는 작은 탈북민 사회와는 큰 갈등이 없어 보이지만 2천 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요구를 한다면  어떠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지는 상상할 수 없다.

갈등.
  인구의 85%가 농촌에 살면서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곳은 현재 농촌과 도시를 불문하고 개발사업이 한창이다. 정부가 경제 발전을 목표로 기업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곳에 ‘강제퇴거’가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 인권단체 LICADHO는 약 4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강제퇴거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경제발전 및 빈곤퇴치를 위해 국내외 기업들에 국유지를 임대해주는 경제적 토지양여(Economic Land Concessions, ELCs)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농장이나 관광지 등을 목표로 평균 70년, 최장 99년까지 1만 헥타르 이하의 땅을 기업에게 임대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에 땅을 임대하면서 해당지역 주민에게는 정확한 정보도 주지 않았고, ‘기업활동'을 이유로 제대로 된 협의나 보상도 없이 사람들을 강제퇴거 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은 물론 생계, 가족, 이웃을 잃고 거리로 나앉았다. 지난 10년간 토지임대 허가가 급격히 늘어 현재는 경작지의 50% 이상이 기업에 임대되었고, 그로 인해 강제퇴거의 위험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현재 캄보디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래의 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OECD 27개 회원국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사회 갈등이 심한 국가 4위이다. 갈등 비용만 1인당  GDP의 27%(약 300조 원)를 지불하고 있으며 이는 연간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보전과 개발을 둘러싼 환경갈등(제주도 강정마을, 용산참사), 혐오시설 혹은 비선호 시설(밀양 송전탑), 노사갈등(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철도민영화), 이념갈등(메카시즘) 등이 대표적인 사회갈등이다. 10년간 탈북청년의 눈으로 남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연합을 못하는 사회가 어떻게 전혀 이념과 사상이 다른 북한과 통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의 중심에, 그리고 경계선에 탈북민 사회가 있다.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 재판과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변론할 때 북한이탈주민 여성과 남성이 “북한에서 살아봐”라는 등의 소리를 지르다 퇴정 명령을 받았다. 이후 이석기 의원의 피고인 진술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 3명이 이석기 의원을“사형시켜라"는 등 고성과 욕설을 하다가 감치조치를 받은 후, 재판장인 김정운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귀를 막을지언정,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탈북민들은 왜 이렇게 행동을 할까?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3대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의 독재사회에서의 경험 때문일까? 아니면 남한 사회가 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

실험.
나는 남북한의 통합과정에서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도, 북한의 사회주의도 아닌 남북한 모두가 수용 가능한 제3의 대안적 이념과 체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 교섭의 자유, 기회균등 그리고 사회적 안정과 연대 등의 가치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진리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실험 과정을 거친다. 하나의 이론으로 정의되는 것은 그후다. 과학자들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진리 여부를 확인한다. 통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거시적인 통일방안이 있다고 하면 이 땅에 먼저 온 탈북민들과 다양한 대안적인 실험을 해보아야 한다. 이들은 통일을 준비하라고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주신 선물이다. 그래서 필자는 대한민국 청년들과 해외교포 청년들과 함께 대안적인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 통일의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가 신뢰하는 제3의 이념, 체제 도출이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1일 열린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창립총회 모습. ⓒ유코리아뉴스DB

북한의 수령 절대주의적 주체사상 속의 개인은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하여야 한다. 반면에 남한의 시장절대주의 신화 속에서 공동체는 개인주의로 인해 해체되고 말았다. 북한 주체사상의 공동체주의 가치관과 남한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의 조화와 절충점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사회는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이다. 공동체 붕괴는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도시화로 인한 마을 공동체는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경쟁원리 도입으로 공공부문이건 민간부문이건 조직구성원간의 관계는 이미 변질되었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족공동체는 가족구성원간의 역할갈등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공동체의 붕괴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본성마저 훼손되고 있다. 사회구성원간에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인정과 사랑이 메마른 사회가 되었다. 개인이기주의는 기독교 공동체에도 고스란히 스며 있다. 조선에서 매일 집단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던 탈북민들이 남한사회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대안적 삶을 살고싶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에서 대한민국 청년들이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의 한계와 자본주의의 현실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추구하고자 한다. 두 가지 방향으로 추구하고 있는데, 하나는 현재 지배적 소유양식인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끊임없이 사회화하고 개선하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협동조합적인 공동체적 소유 관계의 확대 발전이다.

협동조합 소유는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를 보장함으로써 경제적 민주주의에 근거한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제공한다. 이러한 협동조합은 범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조직체로 19세기 영국의 로치데일리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들에 의한 단체로 존재해 왔으며, 사회주의체제 내에서는 국가적 소유와 국가적 경영으로 이행하는 과도적 기구로 존재해 왔다.

조합원 중심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협동조합의 운영은 협동조합이 개인에 의해 소유되거나 국가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조합구성원들에 의해 소유된다는 핵심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협동조합의 민주적 특성은 주식회사의 경우 ‘1주 1표’로 의결권이 부여되나 협동조합은 ‘1인 1표’의 평등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생산자협동조합 공동체이다. 바스크 지방 몬드라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1956년 설립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조그마한 기업체로 시작하여 기초단위 협동조합들과 직원 협동조합들의 느슨한 연합체를 넘어서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이라는 복합체를 구성하여 강력한 통합체제를 구축하고 단위 조합들은 또한 지역을 기초로 협동조합 그룹들을 형성하여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1987년 창설된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협동조합간 연대와 상호지원 및 조정은 물론 산하 그룹들을 시장과 기술이 비슷한 단위 조합들을 묶는 부문별 조직으로 재편성하여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몬드라곤협동조합 복합체는 소규모 사회,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한반도에서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의 합의점을 찾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대한민국의 평화적 안정이 필요하다. 민족공동체 안에서 각각의 체제와 이념의 변화를 통해 보편적 가치의 수용을 지향하는 복합국가의 형태와 성격을 디자인하는 일은 우리에게 커다란 숙제이다. 한반도의 통일과정은 향후 아시아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정치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 통합 과정에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형태가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대한민국 통치 엘리트와 주민들의 합의 그리고 협상에 의한 평화적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거시적인 통일담론과 함께 미시적인 통일연습을 먼저 온 미래인 탈북민들과 꾸준히 우리의 삶속에서 실험해보아야 한다.

박요셉/제이협동조합 대표

박요셉  genesis45v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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