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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와 선천의 경계 지역에 있었던 교회(마룡麻龍교회)유관지 박사의 '무너진 제단을 찾아서'(11)

마룡(麻龍)교회(평북 의주)

의주와 선천의 경계 지역에 있었던 교회

 마룡(麻龍)교회는 ‘한국기독교의 관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평안북도 의주군의 월화면(月華面) 마룡동(麻龍洞)에 있었다. 마룡동은 의주군의 남쪽 끝으로 선천군과 경계지역에 있었던 마을인데, 삼밭으로 흘러드는 개울이 있었다고 해서 마룡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룡동 부근에는 마룡강이 흐르고 있고 저수지가 두어 개 있다. 의주나 선천은 교회가 대단히 왕성했던 곳이다.

 

   
<현재의 평안북도 지도: 예전에는 피현군이나 동림군이 없었다>

600명에게 세례를 준 순회선교사 커언즈

마룡동교회는 1904년에 세워졌다. 김영선(金永善)이라는 분과 양경하(梁京河)라는 분이 믿고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서 마룡교회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김영선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06년에 네 칸 초가집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이 때문에 일부기록에는 마룡교회가 1906년에 세워졌다고 나오기도 한다.

마룡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에 대해서는, 설립할 때 커언즈(C. E. Kearns: 桂仁瑞) 선교사가 수고했고, 소응수(蘇應守) 장로와 최찬규(崔贊奎) 장로가 있었다는 것외에는 다른 기록을 찾아낼 수가 없다. 커언즈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1902년에 한국에 와서 선천선교부에서 일했다. 그는 한 교회나 한 지방에 정주해서 선교하지 않고 순회하면서 선교활동을 했다. 그는 1905년 한 해에만 천 명의 교인을 세례를 받도록 준비를 시켰고, 6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한 사람의 전도자가 일 년에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룡교회의 기초가 된 김영선과 양경하는 커언즈 선교사의 전도인으로 일했다. 커언즈 선교사는 한국선교사로 오래 일하지는 않고 1907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의주군에 있었던 장로교회들은 처음에는 평북노회에 속해 있었다. 평북노회의 교회가 늘어나니까 1918년에 신의주와 의주의 교회들을 가지고 의산노회(義山老會)가 독립했다. 1938년 당시 의산노회에는 74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중국 대륙 동북지역 안동현(安東縣: 오늘날의 丹東市)에 있었던 교회들도 이 때는 의산노회에 속해 있었다. 나중에는 안동노회가 독립해서 안동현의 교회들은 안동노회 소속이 되었다.

 

   
<피현군 지도. 동남지역 마룡강 유역에 마룡교회가 있었던 룡흥리가 자리잡고 있다>

마룡교회가 있었던 곳은 피현군이 되었다. 1952년에 북한이 큰 규모의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할 때, 의주군의 남부지역을 따로 떼어서 피현군(枇峴郡)을 새로 만들었다. 피현군은 ‘피나무가 많은 언덕 밑에 있는 지역’, 이라는 뜻으로 피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월화면도 피현군에 속하게 되었다. 마룡교회가 있던 곳은 오늘날에는 피현군 룡흥리(龍興里)가 되었다. 북한측 자료를 보면 마룡동이라는 이름은 자연부락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어서 최근의 북한지도에도 이 이름이 나온다. 그러니까 북한 탐방이 자유로워졌을 때 마룡교회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지 알아보려면 평안북도 피현군 룡흥리 마룡동 부락을 찾아가면 될 것이다.<계속>

*유관지 목사. Ph. D. 연세대와 호서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극동방송 이사, 주옥감리교회, 목양감리교회 담임 역임. ‘평화통일과 북한선교’ ‘북한의 종교실태’ ‘기도가 흐르는 3천3백80리 강물’ 공저자. 현 북한교회연구원 원장.

유관지  yookj4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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