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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평화의 시작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의미를 부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2020년, 남북이 함께 논의해야 할 과업이 산적해 있는 상황인데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중단되어 있어 무척이나 안타깝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지도자가 함께 만나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을 천명한 지 20주년을 기념해야 할 때이고, 6·25전쟁 발발 70년을 돌아보며 민족의 상처와 아픔을 달래는 화해의 몸부림이 있어야 할 시기에 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4·27 판문점선언의 감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남과 북은 공동연락사무소도 폐쇄한 채 너무나 싸늘한 관계로 돌아서 있다.

남북 정상의 첫 만남과 6·15 공동선언이 나온 지 20주년을 맞고 있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거듭되는 합의와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평화가 공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7·4 남북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 그리고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선언까지 수많은 합의와 약속이 있었음에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깨어지고 말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한마디로 남과 북이 진정한 화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북한은 과거 서로에게 행한 일들을 제대로 다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6·15 공동선언이나 판문점선언 등 국가적 선언에도 미래지향적 관계개선과 협력을 약속하는 내용을 언급할 뿐,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게는 그렇게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말이다. 남북 지도자가 화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도 사과는커녕 서로에게 입힌 피해조차 언급하기를 꺼린다.

화해는 과거의 부정적 경험인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작업이다. 부당한 경험에 의해 생겨난 악의적인 감정이나 피해를 다룸으로써 적대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비폭력적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사과로부터 시작하여 추모-진실 확인-법적 과정과 사면, 배상 등을 거쳐 용서와 참여라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 기나긴 과정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화해가 있어야 하고 화해를 위해서는 서로에게 끼친 피해를 인정하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 “미안하다”는 진정어린 말을 건네는 것이 평화의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건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우리 문화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굳이 끄집어내어 더 아프게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어서 더더욱 쉽지 않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과거의 문제를 덮어두고 지나가는 것이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아픈 과거일지라도 서로 얘기를 나눔으로써 증오감정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의 원한과 남북간 자행된 폭력적 행위들, 공산당과 기독교간의 악감정 등을 끄집어내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전쟁은 남한 85만 명, 북한 123만 명 등 200만 명이 살육당한 끔찍하고 아픈 과거를 남겼다.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이 어떻게 전쟁을 겪었는지 각자의 입장에서 말하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은 지난 70년 동안 전쟁으로 겪어야 했던 상대방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얘기하거나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다. 남한도 그렇고 북한도 마찬가지다. 자기 피해가 너무 크고 엄청난 일이라 상대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피해를 입힌 상대는 오로지 적일 뿐이다. 국립현충원과 애국렬사릉이 대립하며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아니 오히려 국립현충원과 애국렬사릉이 남과 북의 존재의미를 지탱하는 핵심을 이룬다. 이런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바로 화해다. 정말 어렵고 두려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치적 부담 때문에 국가가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교회가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화해는 서로가 피해자라는 긍휼한 마음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가해자의 문제는 진실화해위원회 등을 통해 시간을 두고 차차 풀어야 하는 과제다. 대신 상대가 전쟁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그들의 스토리로 들어야 한다. 나의 피해만 주장하지 않고 서로가 당한 피해를 말하고 듣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럴 때 “미안하다”는 진정어린 사과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2018년 4·27 판문점선언도 무색하게 남북관계는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남북 정상이 차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6·25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시점에 남과 북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이며, 어떤 고통과 상처를 받았는지 헤아려보는 시간을 이제라도 가져야 한다. 폭력으로 사회관계가 깨지고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쉽지만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재건하는 화해는 정말 어려운 과정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지난날의 아픈 경험을 나누며 그 피해와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는 용기를 내야 할 때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 그것은 70년의 전쟁을 끝내고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여는 놀라운 시작이 될 것이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

김병로  phil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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