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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회심'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있다송영섭 박사, 탈북자 20명 심층 인터뷰로 회심 과정 연구

 
탈북자들의 회심(Conversion)에 영향을 끼친 사회문화적 요소를 밝힌 논문이 나왔다. 신학적 입장에서의 회심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정황(Context)이 반영된 탈북자들의 회심과정을 연구한 것이다.

이는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박사학위(Ph.d) 논문으로 송영섭 박사가 20명의 탈북자와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지난 26일 숭실대의 한 커피숍에서 저자인 송영섭 박사를 만나 이 논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한국교회의 탈북자 사역 과제에 대해 들었다.

   
▲ 논문. Socio-Cultural factors influencing the conversion to christianity among North Korean refugees in South Korea.


저자인 송 박사는 회심에 대해 “삶의 겉과 속이 모두 기능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신학적으로는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일’로 표현하지만, 실제적으로 회심은 회심자가 살아온 사회적인 정황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 사회학적이고 문화적인 과정으로 회심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회심에는 공통된 세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첫째는 탈북초기의 세계관 충돌, 둘째는 탈북과정(중국, 한국 등)에서의 삶, 셋째는 한국교회와의 접촉이다. 이를 바탕으로 삶의 맥락을 이해하면 이들의 회심이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회심을 단회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면, 그들의 간증을 듣고, 필요에 따라서만 그 간증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들의 소중한 경험을 신앙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공동체 안에서 꾸준히 교제해야 합니다.”

송 박사가 인터뷰한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교회에 와서도 북한, 남한 사회에서처럼 똑같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동일한 ‘형제, 자매’처럼 대해줄 주 알았는데, 처음에 환대해주는 기간이 끝나면 시간이 계속 흘러도 “여전히 손님”이라는 것이다. 대형교회에 다니는 한 탈북자는 “예배가 끝나고 교제의 시간이 오면 나는 하나의 외딴 섬이 된 느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탈북자들의 회심과 그에 따른 간증을 단순히 소비만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라는 게 송 박사의 주장이다.


   
▲ 송영섭 박사.


그는 또 “탈북자들의 간증만을 듣고 놀라운 체험을 했다는 이유로 완전히 거듭난 사람이라 평가하고, 무조건 신학교에 보내려 하는 것”도 한국교회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탈북자들의 회심이 어떤 맥락인지 짚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송 박사는 “탈북자들의 삶에는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절망의 콘텍스트가 자리하고 있다. 죽음에서 부활을 경험한 이들에게 또 다시 절망의 기억을 되살려서는 안 된다. 함께 어울리는 성공적인 공동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며 기독교계 탈북자 사역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송영섭 박사는...
숭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M.Div, Th.M)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2007년 석사학위(Th.M)를 받고, 지난 해 같은 학교에서 ‘Socio-Cultural factors influencing the conversion to christianity among North Korean refugees in South Korea’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학기 안양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총신대 선교대학원 강의도 앞두고 있다.


-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기독교북한선교회에서 6년간 일했다. 조중 접경지역의 선교사들을 돕거나, 탈북자들을 도왔다. 그러면서 탈북자에 대한 논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연하게 알던 것들이 깨어지는 계기가 됐다.
 

- 탈북자들의 회심에 영향을 끼친 사회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연구라 알고 있다. 논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회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 조직식학적인 접근을 하게 되면 회심이 갖고 있는 실제적인 모습을 놓친다. 비공간성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지만 거기에는 사회적인 콘텍스트, 문화적인 콘텍스트를 무시할 수 없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은 회심이 단일적인 사건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화일 수도 있겠지만, 회심에는 사회문화적 경험들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거죠.
 

- 회심의 구체적인 설명, 혹은 쉬운 설명을 본격적으로 묻기 전에, 20명을 인터뷰한 것으로는 연구성과로 일반화하기 어렵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먼저 해본다.
객관적일까? 라는 문제제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20명의 삶 속에 묻어 있는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석 하나로 그 시대의 연대와 환경을 유추하는데, 그것은 과학적이라고 하면서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묻어 있는 이야기는 왜 사회적, 문화적 의미가 없겠나.
개인의 라이프 스토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객관적이지 않더라도 삶의 동시대적인 요소들, 세계관들, 회심이라는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어떤 과학적 설명보다도 개인의 소중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게 내 관점이자 철학이다.
 

- 지금까지의 탈북자 연구와 어떻게 다른가?
탈북자 연구를 할 때, 특히 기독교계에서 나온 논문들을 보면 탈북자들 개인의 문제라는 연구 주제가 많다. 가령 중국을 건너오면서 트라우마가 있어서, 북한 체제가 이상해서, 탈북자들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인터뷰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국 사회, 한국 교회에도 문제가 있다. 적어도 한국 교회는, 탈북자 사역을 하는 교회는,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 탈북자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가 돌아봐야 한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까 그게 보이더라.
 

- 본격적으로 논문이야기로 들어가자. 회심에 녹아들어가 있다는 사회문화적 요소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나는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로 세계관이 충돌하면서 변화하는 시점이다. 주체사상의 이슈가 회심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폈다. 둘째로 탈북과정에서 중국을 거치면서 혹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의 여러 가지 경험들이 회심에 녹아있다고 본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한국교회다. 80% 이상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선교사를 만나고, 한국교회를 접한다.
 

- 각 요소별로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첫 번째 사례부터 설명을 해주신다면?
세계관의 충돌이다. 북한에서 나올 때부터 주체사상을 버리고 나온다. 뭔가를 채워야 한다. 삶의 가치를 세워야 하는 사상과 이념, 세계관, 종교를 필요로 하는 시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기독교가 바로 들어가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라는 것 때문에 신앙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을 거라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대부분 인터뷰이(인터뷰 대상자)들은 방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북해서 나오는 순간 “그것을 다 버렸다” 하더라. 중국에 나오는 순간, 그동안 속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라. 자연스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 필요에 따라 접근이 가장 쉬웠던 사상이나 종교를 받아들인 거라면 진정한 의미의 회심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 다음이 문제이다. 단순히 주체사상과 자리만 바뀌는 거라면, 온전히 기독교세계관으로 바뀐 거라 볼 수 없다. 그저 자기 틀 속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심은 아닐 수 있다. 한국교회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이 사람들은 사회 문화적 과정 때문에, 그리고 특별한 체험 때문에, 한국 교회 교인들 입장에서는 이분들의 간증을 들으면 완전 거듭난 사람이다. 엄청난 경험을 했으니까. 그렇게 판단을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탈북자들의 간증을 소비하기만 한다. 회심이 무엇인지 보는 눈이 없어서이다.
탈북자들이 간증하면서 기독교 용어 잘 사용한다. 목숨을 건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감동해서 신학교 보내려 하는데 조심해야 한다. 탈북자 간증을 소비하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그러면 탈북자에게도 더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자기의 경험과 체험이 더 확실한 응답이자 계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두 번째 사회적인 정황 요소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사회적인 정황 속에서 체험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숨어 있는데 중국 공안들이 수색을 하러왔다가 기도하는 중에 그냥 지나갔다던가, 차를 타고 이동 중에 검문을 했는데 티가 남에도 기도하니까 그냥 지나갔다던가 하는 사회적 경험들이다. 붙잡히면 감옥에 그냥 끌려가야 한다. 하나님은 없다고 믿었는데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되면 종교심이 생긴다.
탈북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언제 왔느냐에 따라 다르고, 중국에 얼마나 머물렀느냐에 따라 또 다르다. 개개인은 또 얼마나 다른가. 그들이 다 저마다 다른 정황들 속에 있다가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인 상황이 회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 세 번째 요소라고 말씀하신 ‘한국교회’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탈북자들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다. 그러나 탈북자 사역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회심을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회심을 소비만 하고, 그리스도인의 형제로 함께 자라야 한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털어놓은 솔직한 감정이 그랬다. 지금 현실은 탈북자가 오면 돈을 주고 관리하는 게 전부다. 모아놓고만 있다.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비전도 없다.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탈북자뿐만 아니라 이주민도 많은데 타문화에 대한 이해나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다.
 

   
▲ "탈북자의 간증을 소비만 할 게 아니라, 함께 공동체를 이뤄야죠."


- 실제로 인터뷰한 탈북자들은 한국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좋은 경험, 나쁜 경험 다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쁜 경험이 더 많았다. 심층적으로 들어갈수록 나쁜 경험을 더 많이 이야기 하더라. 이단을 경험한 분도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교회 안에서도 사회적 장벽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탈북자들이 느낀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에 가서 예배마치고 나오는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교제하며 나오는데, 나는 그곳에서 외딴 섬이 된다”고 말한 분도 있었다. 소그룹으로 같이 교제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기도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
 

- 교회 공동체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까?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살아남기 보다는 정말 회심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한국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녹아들었을 때 낼 수 있는 파워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는 정치적인 역학관계가 있어서 쟁점이 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화해의 경험을 갖게 된다면, 통일이 되었을 때 중요한 자산과 자화상이 될 것이다.
정치적 이슈로 가면 복잡해진다.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통일 이후 북한에서 기득권이 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무력통일이 되었을 때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하다. 정치적 영향력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황장엽도 북한의 기득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외친 것 아닌가. 물론 시간이 흐르면 양쪽 체제를 다 경험한 사람들이 주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겠지만, 그 전에 먼저 교회 안에서 화해를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자신감과 성공의 경험이 있어야지만,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주민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아직은 시작단계이다. 회심이라는 것이 화해라는 공동체로 연결되고,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지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 공동체가 남과 북의 화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주요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런 일들이 계속 일어났으면 좋겠다.
 

- 이상적인 통일의 모습은 북한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뜻인가?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으면서도 그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주체사상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 때문이다. 통일하려면, 어쨌거나 기득권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기득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자기들 기득권이 없어지는데 남한과 통일하려고 하겠나. 그래서 기득권을 지켜주겠다는 중국에 붙는 것이다. 무력통일을 하지 않는 이상, 합의에 의해서 통일을 해야 할 텐데….
 

- 교회 공동체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작은 화해 공동체의 경험이 늘어나야 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지식적 이해, 실질적 이해가 넘치는 공동체이다. 이런 교회가 많아져야, 통일이 되어서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남한 사회, 북한 사회 하나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공동체다. 남한의 정체성으로 북한을 흡수? 정치적으로 그리 될 수 있어도, 문화적, 사회적으로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런 일들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적인 공동체 없이는 어렵다.



- 탈북자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데 신앙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국사람도 아니고, 북한사람도 아니라는 데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더라. 그런 과정에서 극복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정말 예수를 만나고, 사랑받는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신앙 안에서 찾더라. 나름대로 비전을 갖는 친구들은, 북한 사회도 알고, 남한 사회도 알고,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신앙의 경험과 회심의 과정에서 형성된다. 탈북자들에게 ‘회심’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주기 때문이다.
 


- 탈북자와 친구가 되는데 꼭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면?

급격한 변화, 불안요소를 경험하고 온 친구들이다. 북한이라는 체제에서 주체사상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탈북을 경험한다. 탈북자체가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느끼는 절망이나 좌절이 있다. 삶의 가치를 바꿔야만 하는 절실함이다. 중국에서 한국에 오면 절망감은 더 심화된다.
다 버리고 오는 과정이다. 세계관의 절망을 경험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절망감은 불법적인 신분에서, 언제 붙잡혀갈지 모르는 불안 요소들에서 온다.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절망의 기억들이 재해석 된다. 남한에서도 또 다른 절망에 빠진다. 교회에서도 동일한 절망감을 느낀다. 교회 가면 한 형제 자매로 대우 받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왔는데, 늘 손님이다. 처음에는 환대를 하지만, 늘 자기가 형제, 자매, 주인처럼 대해지지 않는 아픔이 있더라. 서자의 서러움 같은 것이다. 그들의 경험을 끌어안아주고, 함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 심층 인터뷰였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슬픈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심방 다니는 느낌이었다. 연구자로서 가치중립적이어야 했는데, 사실은 너무 많이 동화되었다. 탈북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슈는 가족이다. 북한에도 가족이 있고, 중국에도 가족이 있고, 여기에도 가족이 있다. 아픔이 있어서 교회에 가서 이야기하면 윤리적으로 평가받는다. 왜 결혼을 두 번씩 했냐는 비판이다. 중국에서 결혼 한 것은 살기 위해서 한 것인데, 기독교의 입장에서 그리 말해주니까 경직된다. 이것도 교회가 탈북자들의 회심에 있어서의 정황적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슬픈 현실인데, 한국교회는 그것을 정죄하니까. 물러 설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사람들. 교회가 희망이라고 해서 왔는데 어디로 가나?
예쁜 자매가 한명 있었다.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헤어지자고 했다는 거다.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북한에서 온 주제에 연애질이냐”고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 그 순간에 2등 국민, 3등 국민이 된 느낌을 받았다더라. 그럴 때의 좌절감, 고통스러운 일이다.
 

- 고통을 해결해주는 데 종교의 역할이 있지 않겠나. 특히 목회자이기도 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탈북자들을 이단 교회에서도 돈 주고 많이 데려간다 하더라. 전통적인 교회도 그렇게 한다. 한번 빠질 때마다 얼마씩 깎고 한다니 한심하다. 어느 탈북자가 나에게 그러더라. “한국교회는 복음에 대한 자신감이 그렇게 없냐. 복음을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 복음을 몇십 만 원에 팔아버리냐.”고 말이다. 그들의 회심을 이해하고, 한 공동체가 되는 방법밖에는 없다. 프로그램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통일세대는 40대가 아니다. 지금 20대, 30대의 생각들이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누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당장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미래라는 책임감을 갖고, 통일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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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1-27 14:14:21

    '한국사람도 아니고, 북한사람도 아니라는 데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더라. 그런 과정에서 극복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정말 예수를 만나고, 사랑받는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신앙 안에서 찾더라. 나름대로 비전을 갖는 친구들은, 북한 사회도 알고, 남한 사회도 알고,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신앙의 경험과 회심의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로군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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