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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들 변화에 발맞춰 통일운동도 변해야죠"(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 박일수 차장 인터뷰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법대를 다니고 있었기에 ‘법조인이 되면 탈북자를 돕는 변호사가 되어야지’ 하며 고시공부에 전념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기도를 하다가 북한을 위해, 탈북자를 위해 일한다면서도 정작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북한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시작된 공부는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고난의 행군' 이후 개인소유권 변화에 관한 연구>(2006, 경남대학교)라는 연구성과도 냈다.

지금은 통일학 박사과정(연세대)에 있다. 단순히 학술적인 연구로는 부족함을 느껴 찾은 곳이 (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이다. 북한으로 직접 연탄을 지원하는 곳이었다. 연탄을 하역하며 만난 북한 주민과의 소통, 그 짜릿함이 그를 이곳에 붙잡아둔 게 벌써 3년이다.


   
▲ 북한관련 학술적 연구와 대북NGO 활동을 겸하고 있는 박일수 차장


이 단체 남북협력팀에 근무하는 박일수 차장 이야기다. 북한 연구가이면서, 활동가인 그에게서 통일, 탈북자, 북한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특히 2006년에 출판된 그의 석사학위 논문 <'고난의 행군' 이후 개인소유권 변화에 관한 연구>는 북한 주민의 변화에 대해 분석했다. 통일 이후를 그리던 박 차장의 고민이 담겨 있는 문제제기로,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소유권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살핀 것이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도 시장에서 ‘인민폐’(중국의 법정통화) 사용을 금지하기는 했지만, 시장 자체를 폐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이 된 것입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있지만 북한 주민들의 삶이 변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박 차장은 이미 6년 전에 북한 주민의 변화들을 보도한 셈이다.

인조고기를 만드는 소기업자의 경우 군부대의 일정 공간을 임대해서 콩고기를 만드는 기계를 두 대 설치해서 소기업을 운영했다. 이때 군부대와 계약을 맺는다. 매달 일정한 정도의 임대료를 낸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소기업을 운영한다. ... 소기업을 통해 생산된 물품의 유통은 주로 도매업자들을 통해서 하게 된다. 물건은 매일 500kg~600kg이 생산되는데, 도매업자들이 와서 전국 각지로 판매한다.


   
▲ 비계획적계약은 계약에 기초하지 않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일반계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많은 경우에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 사이에 체결되며, 기관․ 기업소․ 단체들 사이에 체결되기도 함.”(장명봉, 조선법전:법률용어풀이(서울:대훈, 2005), 139쪽.
 

북한 주민들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적 삶의 양태를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박 차장은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체제 너머로 전해지는 그 온정에서 더 큰 가능성을 느낀다.

"제가 2009년 10월에 결혼했는데, 그해 11월 처음으로 개성을 가게 됐습니다. 한참 연탄 나르는 중에 북한 아저씨가 저더러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허리를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함께 땀 흘리고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주고받았던 일이 기억나네요. 추운 겨울 잘 견디고 계실는지 걱정되네요.”


   
▲ (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 방북, 연탄 하역 현장.


박 차장은 요즘 <통일한국 브랜딩>를 함께 저술한 전병길 예스이노베이션컨설팅 대표와 함께 ‘통일한국 브랜딩 아카데미’(총 5회, 매주 목요일)를 진행하고 있다.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다.
북한 연구가로, 통일 활동가로, 이제는 동역자들을 모아 구체적인 통일 한반도의 모양을 그리는 박일수 차장의 소박한 꿈은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며 통일을 얘기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인터뷰는 서울 합정동 (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 앞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석사 학위 논문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고난의 행군 이후 개인소유권 변화에 관한 연구’입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1990년대 중반을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국가가 주민들에 대한 생계를 책임져주지 못했고,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기존에 있던 농민시장이 확대되었고, 이 ‘시장’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오게 된 것입니다. 현재는 시장이 북한 내에서도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습니다.

- 북한 주민들의 삶이 변화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흥미로운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로 북한의 사적 토지경작과 노동력 고용 사례입니다.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고용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요소입니다. 북한에서도 소토지를 경작하는데 인력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 소토지 일구는 데도, 되고 이전처럼 농장 밭 관리하는데도 인력을 쓸 수 있다. 그 사람들이 그날 쓴 돈은 인력을 쓴 사람 자체가 계산해 줘야 한다. 하루 세끼 식사 시켜주고, 옥수수 3kg를 넣어준다.”
이렇게 하루 일당을 주고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2002년 7.1조치 이후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돈주, 즉 인조고기 소기업 사례입니다. 아이템이 있는 사람들은 소기업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자금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주로 돈주들이 적절한 아이템과 만나면 소기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기관이나 군부대에 등록해서 소기업을 운영하는 양태도 나타났습니다.


-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살길을 찾아갔다는 거네요.
한두 가지 예이지만 북한 주민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더 이상 국가가 자신들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고, 이제는 개인들이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삶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통일 이후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북의 경제협력 방안 중 생각해본 아이디어가 있는지요?
현재의 개성공단은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봅니다. 남한의 자본력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한 사례인데 향후 통일과정에서 이러한 모델이 북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북한의 산림복구를 통한 국내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확보 사업도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현재 북한의 산림황폐화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 동안 북한은 주민들의 난방 및 취사 연료로 전기, 석탄가루 등을 배급해왔지만, 전기는 대도시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석탄가루도 안정적으로 배급되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주변에서 쉽게 구해서 쓸 수 있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해왔는데, 그 결과 산림이 황폐화되고 여름철 집중호우로 토사가 유실되면서 농경지가 피해를 보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기업들이 북한 산림복구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게 되면 윈윈(win-win)할 수 있는 경제협력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추세입니다만, 그 방법과 과정에 있어서는 이견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통일과정, 방식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면요?
남북한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통일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남북한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화와 교류협력을 확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차원의 대북정책은 강경정책이냐 화해·협력 정책이냐의 이분법적 구조를 갖고 있고 이는 남한 내 정치적 이해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대북정책에 대한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필요에 따라 정책을 선택해서 쓰는 것이지 정책에 얽매여 큰 방향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또한 통일 과정이 주변 강대국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은 꼭 필요할 것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를 구하는 방법으로 4강국의 교차승인 등 여러 방안들은 모색되었지만, 구체적으로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는 외교적인 역량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6자회담 틀 내에서 한반도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논의의 진전과 실천을 위해서는 남북간의 대화에 바탕한 주변국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 (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곳인가요?

2004년에 연탄이라는 아이템을 통해서 남과 북을 따뜻하게 해보자라는 의미에서 시작됐습니다. 북녘에는 개성과 북고성(금강산 지역)에 현재까지 200여 차례에 걸쳐 일천만장의 연탄을 지원했습니다. 남녘에는 전국 25개 지부와 함께 이천만장의 연탄을 지원해왔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450여개 기업 및 단체와 함께 전국적으로 4만 여명이 함께 자원봉사를 통해서 사랑의 연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2011년에 MBC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주는 사회봉사대상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매년 9월부터 다음 해 2월말까지 사랑의 연탄배달 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를 통해 나눔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11월에는 미국에 ‘워싱턴 본부’를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내 지원뿐만 아니라 워싱턴 지역 내 저소득층 난방연료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본부를 통해 따뜻한 정(情)을 나누는 문화가 그 지역 이웃들에게도 전달될 것입니다.


   
▲ 지난 2007년 고성연탄나눔. 온정리 마을 명승지 종합개발지도국 앞마당에서 북측주민 여러명이 함께 공동하역 하는 현장.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
 


- 북한에 가서 주민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연탄하역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개성지역에 5만장의 연탄을 25톤 트럭 8대에 나눠서 싣고 갑니다. 개성공단을 지나 봉동역에서 하역을 하는데 북한 주민들 80-90여명이 봉동역 철로에 앞치마와 토시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연탄 트럭이 철로 옆에 서면 북한 주민들이 각 차량별로 나눠져 하역을 하게 됩니다. 북한 주민들과 함께 연탄하역을 하게 됩니다. 연탄은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전달되고 2시간여 연탄하역을 하는 동안 온몸에 땀이 흐릅니다. 그러고 나면 함께 연탄을 하역한 북한 주민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60년 분단의 세월도 훌쩍 뛰어 넘고, 정감어린 말들도 주고받게 되지요.


-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체제를 강화하는 데 쓰인다던가, 북한 주민에게 직접 가는지 의심이 된다던가 하는 이유를 댑니다.

모니터링은 확실합니다. 여러 번 가다 보면 이것저것 말씀을 해주십니다. 지난 번 연탄은 좋았다, 나빴다, 직접 써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피드백들을 주시고요. 예전에는 민가 방문도 했었습니다. 현장에서 하역하고 직접 사용하는 것도 봤습니다. 남쪽에서 연탄을 가져왔다는 것도 당연히 아십니다.
연탄을 지원하는 일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차원입니다. 작은 단위로 해줘야 할 일들이죠. 이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의 산림 황폐화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일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산사태, 농경지 유실, 식량 소출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연탄 지원은 꼭 필요합니다. 연평도 사건 이후로 지원을 하지 못했는데, 올 연말부터는 다시 재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통일 이후 남북협력에 있어 탈북자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탈북자들이 국내에 2만명이 넘어서면서 탈북자들은 단순히 그들의 정착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와 능력의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2만명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통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시험대를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따라 통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고, 통일은 우리에게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을 만들고 많은 예산을 편성해서 탈북자 정착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통일 이후 혹은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들의 역할은 그들이 남한에서 어떻게 정착하느냐가 결정할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하고 있는 사업, 학업, NGO 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결국 통일 이후에 탈북자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안정적인 정착 과정에서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또한 탈북자들도 통일 이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통일 이후 모든 탈북자들이 남북협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그 중의 일부는 북한의 지역개발, NGO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 남북한 주민간의 상호이해 증진을 위한 연결고리 역할, 북한 지역 사회의 건강한 일꾼 등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통일한국 브랜딩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2011년 12월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책의 공동저자인 전병길 씨와 <통일한국 브랜딩> 아카데미에 대한 얘기를 여러 차례 해왔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막연하게 통일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던 분들이 이제는 뭔가 구체적인 준비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오신 분들이 많아요. 학생들과 함께 직장인들도 많은데, 실제로 통일이후에 자신들의 전공과 직업의 연장선상에서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현재 자신의 직업이 통일한국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고민들을 해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아카데미도 30분 강의, 1시간 30분 토론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학원 수업 못지않은 열기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해과 깊이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한 단계 더 진일보하기 위해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인근 찻집에서 11시까지 토론이 이어집니다.


   
▲ 북한관련 학술적 연구와 대북NGO 활동을 겸하고 있는 박일수 차장


- 통일을 위해 남한 사람들이 준비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그것은 통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입니다. 우리는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론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 지하자원이 7천조원이라는 얘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안보리스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단이 우리 일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명해야 합니다. 분단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체제 유지에 가장 큰 명분을 주고 있는 것이 분단이 아닙니까. 분단 해소와 북미 관계 개선 등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도 자유롭게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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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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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e 2012-01-26 15:15:22

    북한 동포를 위한 인도적 지원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겠지요.
    인도적 지원은 장마당을 활성화 시킬 것이고 활성화 되는 장마당은
    배급으로 힘을 얻게되는 체제를 위협하는 일이 되겠지요..
    그것은 바로 통일이 가까이 다가 오는 일.   삭제

    • hephzibah 2012-01-26 15:11:20

      탈북자를 통일의 주역으로 세우는 일
      그일에 (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과 통일한국브랜딩아카데미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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