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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년을 내다보며
최재영 기자 | 승인 2018.08.27 14:32|(207호)
최재영 본지 발행인(사단법인 한국언론인연합회 회장)

광명정대(光明正大). 백범 김구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인 1949년 3월 26일에 쓴 휘호가 최근 공개돼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 휘호는 백범이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기를 맞아 항일독립운동 동지인 김형진 선생의 손자 김용식씨에게 선물한 것이다. 연호도 대한민국 31년으로 돼 있다. 동지를 잃은 백범은 귀국 후 그의 유족을 챙기면서 김용식씨를 비서로 일하게 했다. 그 때 선물한 것이다. 김용식씨는 이 휘호를 다시 사촌형인 김태식씨에게 선물했고 그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김태식씨가 이번에 우리 정부에 무상 기증을 했다. 2021년 개관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보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져 뒤늦게 조국으로 귀환한 것이다. 떳떳하고 정의롭게. 그 뜻 그대로 백범의 뜻이 우리 후손들에게 널리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 100년을 시작해야 한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필자에게 광복절은 언제나 각별한 의미가 더 컸다. 해방 그 전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늘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과 해방정국의 혼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재정권의 부침 그리고 세계적인 기적을 이룬 경제발전은 필자에게도 운명적으로 시대와 역사를 보는 창(窓)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비폭력 독립운동’의 표상이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킨 핵심 동력이 되었다. 나라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사람들, 그런 국민에게 그들의 뜻을 대표할 ‘의결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라도 ‘대표기구’가 있어야 했다. 이것이 당시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으며 또한 절박한 과제였다. 이에 따라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에 항일독립운동의 총의가 모아진 것은 아니었다. 만주와 러시아령 일대에서는 수많은 항일독립투사들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다수의 사회주의 계열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빠진 채 사실상 ‘반쪽’으로 출범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상하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부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을 채택한 뒤 국무원(행정부에 해당)을 구성했다. 임시정부는 행정 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을 추대하고 내무총장에 안창호 등 6부의 총장도 임명하였다. 민주국화국을 천명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출범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일제의 탄압을 피해 임시정부 청사를 중국 곳곳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와 광복군, 의열단의 항일투쟁 그리고 미군과의 OSS 훈련 등 항일독립운동의 명실상부한 구심체가 되었다.  
내년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년의 시간은 우리 민족에겐 통한과 눈물 그리고 환희와 영광의 역사였다. 그 중에서도 분단과 한국전쟁은 가장 아픈 고통이었다. 우리의 역사성과 민족적 정통성, 사회문화적 동질성까지 결정적인 분절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 대결과 사회적 갈등의 주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 후유증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 국민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하기야 어디 정치사 뿐 이겠는가. 우리의 역사의식과 사회문화적 인식과 가치의 수준까지 분단과 전쟁의 역사는 치명적인 상처를 내고 말았다.
역시 문제는 정치였다. 역사의 질곡과 민족의 고통 그리고 국민의 눈물까지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세기적인 냉전체제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음에도 그 처절한 성찰은커녕 다시 좌익, 우익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증오했다. 그동안 수많은 항일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총칼에 희생되더니 해방 이후에는 독재권력의 총칼에 의해 또다시 희생되는 비극의 역사가 이어졌다. 백범은 그 상징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100년의 새로운 역사의 상징
상하이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나선 것은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우리 현대사의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느낌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파리 ‘에펠탑’이 부럽긴 했지만 이제 우리도 그 대열에 동참해 대한민국 100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00년의 새로운 시작은 지난 시기의 아픔과 눈물을 뒤로 밀어내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그 상처에 아파하고 갈등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멈춰진 100년의 시간’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전쟁 대신에 평화를, 대결 대신에 대화를 그리고 상쟁 대신에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소모적인 정쟁이나 공허한 이념 대결 같은 것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나아가 피상적인 역사지식으로 우리 현대사를 왜곡하고 농단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역사는 특정 이념이나 정파의 것이 아니다. 아전인수 식으로 과거사를 재단할 일은 더욱 아니다. 좀 더 차분하고 깊이 있게 지난 100년의 아픔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청와대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및 유족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토니 안씨 등을 비롯해 김규식, 박은식, 이동휘, 이상룡, 최재형 등 기라성 같은 항일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거 초청됐다. 그 훌륭한 선열들의 명성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하나의 항일독립투쟁사가 되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철 지난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현대사를 왜곡하고 그 마저도 정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무리들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100년이 멈춰진 모습 딱 그대로이다. 그럼에도 깨어있는 ‘국민의 힘’은 역사를 메치는 그런 무리들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의 길을 열어 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재영 기자  mjknews21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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