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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남자가 아니다
김세진 기자 | 승인 2018.05.31 11:21|(206호)
#MeeToo, 성범죄 폭로 이어져
성 대결로 번져 본질 왜곡
남성 근로자도 4명 중 1명 성추행 경험 있어
마녀사냥 멈추고 기존 조직 문화에 대해 반성해야

 
이윤택 김기덕 조재현(왼쪽부터)
안희정, 이윤택, 김기덕, 조재현 등 권력형 성범죄를 폭로하는 미투운동이 문화예술계를 넘어서 정치권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폭로는 계속 이어지고 검찰조사가 시작되자, 남성들은 팩트 체크 없는 폭로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여 이에 여성을 일괄적으로 배척하는, 이른바 펜스룰로 대처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남녀가 아닌 갑을관계에서의 상명하복 문화에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글 · 김세진 기자(tianmimi92@hanmail.net)   사진 · 연합뉴스 제공
 
미투 운동의 시작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7년 ‘올해의 인물’로 미투 운동을 선정했다. <타임>은 이 운동을 시작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로 평가했다.
권력에 의한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은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허비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배우들이 하나 둘씩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부 시인 등 문단 내 성폭력 피해 폭로나 한샘 성폭행 폭로가 있었지만 공론화하지는 않았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성 일부는 가해자로 지목한 남성에게서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현직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8년 전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밝히면서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점화되었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와 정치권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퍼져 나갔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퍼지면서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미투 운동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슈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 배우 조민기, 배우 조재현 등 문화예술계 최정상급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안희정으로 폭로 대상 다변화

 
여비서 성폭행 의혹을 받고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권력형 성범죄 폭로는 정치권으로 확대됐다. 충남도지사 수행비서 김지은 씨가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가 본인을 성폭행했다고 폭로했다. 안희정 지사는 첫 언론 공개 자리에서 ‘김지은 씨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고, 정치권은 요동을 쳤다.

이어서 더불어민주당의 민병두 의원, 정봉주 의원 등에게 당했다는 피해자가 나왔다. 민 의원은 미투 폭로가 나오자 의원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정봉주 의원 프레시안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주로 폭로되고 있는 진보 진영을 공격하면서도 행여나 그들 측에서도 폭로가 나올까 노심초사 중이다.

권력형 성범죄의 핵심 사건으로 꼽히는 안희정 사건 재판에서는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여부가 핵심이 되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알려진 일련의 성범죄 건들의 핵심 쟁점은 '남자가 여자를 성폭행 했다'가 아니다. 법에서 명시하다시피 가해자가 업무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였는지 여부, 즉 상하 관계인 것이다.
 
남녀 대립 구도는 해답이 아니다

미투 운동이 불자 남성들 사이에서는 ‘펜스룰(Pence Rule)’이 번지고 있다. 회식, 출장 등에서 여성 직원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여성 직원을 성적 대상이 아닌 '직장 동료'로서 대하는 방법을 그동안 알지 못했고 알려하지도 않는 세태를 보여준다.

남성들은 직장에서 '남녀칠세부동석' 하면 손해 보는 쪽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임원 비율은 2.7%(매출 상위 500대 기업 기준)이다. '펜스 룰'은 일터에서 인사권이 남성에게 쏠려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양상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잘못 인식한 탓이다. 남성 직원도 업무, 회식, 출장 등에서 성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지난 3월 8일 SNS에 “당황한 일부 관리직 혹은 남성 직원들이 예방책이랍시고 채용이나 업무 등에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행위를 한다고 한다”며 “이는 그들이 여성 가까이에 있으면 성폭력을 해왔고, 할 수 있는 잠재적 성범죄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희롱은 남자에게도 발생할 수 있어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는 미투는 성폭력을 겪은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운동이 아니라며 남녀 대립보다는 성범죄에 주목해 줄 것을 당부했다.

미투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는 영국 매체 텔레그레프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은 ‘우리 대 그들’의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됐다”라고 강조했다. 또 “미투 운동이 널리 대중화된 것은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해왔기 때문이지만, 이건 정말 여성의 운동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모든 사람을 위한 운동이다. 물론 여성 희생자가 많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하고 있지만, 케빈 스페이시에 대해 말문을 연 소년들이나 성폭력을 당해 왔던 수백만 명의 남성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남성은 적이 아니며, 바로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9일 인천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남성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5월 해당 교수가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교수실로 불러낸 뒤 중요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것이다. 피해 남학생은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학교생활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참았다”면서 “남자도 권력형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동참하는 남성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방의 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송모씨(33)는 “지난 2월 초 교도관에게 알몸 검신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송씨에 따르면 “교도관이 사무실로 불러내 다른 교도관들이 보는 앞에서 하의를 모두 벗기고, 막대기로 성기를 툭툭 건드렸다”는 것이다. 군대, 교도소 등 남성 중심 조직문화가 강한 조직에서는 아직도 이런 성적 가혹행위가 빈번하다.

여성이 남성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일도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씨(32)는 거래처 여성 직원에게 성추행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김씨는 “노래방을 갔는데 여성 부장이 팔짱을 끼고 몸을 밀착해 매우 불쾌했지만 분위기상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남성들도 성폭력에 노출돼 있는 현실은 각종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남녀 근로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이내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남성 근로자는 25.0%로 4명 중 1명꼴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30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만 20∼50세 미만 노동자 중 사내 상담창구가 있는 1135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근무환경 실태 조사’에서도 남성 중 성희롱 관련 상담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13.1%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폭력적인 남성 중심 조직문화 속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을 지배하고 제압하고 군림해야만 남자답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 조직문화에서는 힘없는 남성 역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성폭력 문제를 그저 여성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권력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형 성폭행, 상명하복식 군대문화에서 비롯
 
기존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에서는 하급자는 피해가 발생해도 참을 수 밖에 없다.

미투 운동의 근본적 원인은 갑과 을의 권력관계 내에서 그 권력관계를 남용하는 갑과 그 권력관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부당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을, 그리고 그 권력관계가 유지되어야만 자신들의 자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묵인하는 병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유독 가해자 중 남성이 많이 차지하는 이유는 현재의 권력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에 그에 비례하여 발생하는 탓이다.

이런 남성중심적 환경에서 상명하복식 군대문화의 고착화는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는 상사가 지시하면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태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대꾸하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 피해자는 감히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권력구조에 녹아있는 군대 문화가 조직 내 성폭력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한 측면이 있다"며 "과거에는 상당한 정도의 관행적 차별을 용인해줬지만,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밖에 성희롱 발언은 세대 간 인식 차이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상사는 대체로 남성우월주의 가치관과 성 역할 고정을 학습 받았으며 신체 접촉에 대한 민감도가 높지 않다. 반면에 하부 직원들은 대체로 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로 개인과 성 평등, 인권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다. 때문에 상사가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성 관련 발언과 ‘격려’ 차원의 신체적 접촉을 했을 때 직원들은 불쾌감과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세대 간 문화지체현상으로도 성범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성 인식과 조직 문화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성범죄 방지를 위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여럿이다. 먼저 우리 사회의 척박한 '성 인지 감수성'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특정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性평등 의식을 기반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가해자 중심적 문화·인식·구조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하며 성범죄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또 미투 운동은 셀럽(유명인) 중심에 그치고 규모가 작은 조직이나 개인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우선 정부와 기업, 국회는 장소와 상관없이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 인식 개선을 장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경직된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

학계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을 방지하기 위해 근로 환경에 있어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평등한 환경을 조성하고, 가해자에 사회적인 공포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직의 위계질서가 강하면 강할수록 상사가 부하 직원에 '왕'처럼 군림하려는 특징이 있다"며 "위계질서를 완화하고, 상명하복을 없애며, 모든 직원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때 '갑의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관은 “남성이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는 군대문화와 합쳐져 더욱 과잉화되고 왜곡된 남성성이 있다”며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이 틀을 깨려면 사회적 약자와 감정을 나누고 대화하고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세진 기자  tianmimi9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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