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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보] 민주적 대표성과 전문성 확보하고 편향성 우려 최소화 필요숙의민주주의, 갈등 해법의 새로운 대안으로 볼 수 있는가 3
정경NEWS | 승인 2017.12.28 16:36|(205호)

장영수 교수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숙의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가 다수결에 의한 민주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숙의 과정을 강조하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다수결 이전에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합리적 토의와 충분한 숙의를 통해 결정할 때에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 민주정치에서 대의제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문성이다. 국가사무의 대부분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며, 전문성을 갖지 못한 일반 국민들이 다수결로 국가사무를 처리하는 것은 - 전자투표 등을 통해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낳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의제하에서 국민의 의사와 대표자의 의사 사이에 불일치가 많이 발생함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위기가 문제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발안 및 국민소환의 도입, 국민투표의 확대 등 직접민주제를 통한 대의제의 보완과 더불어 숙의민주주의가 시도되기도 한다.
숙의민주주의의 핵심은 공론 과정이다. 모든 국가사무를 숙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몇몇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그 내용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정보가 없는 전체 국민들의 다수결보다 일부 국민들이 공론 과정을 통해 숙고하여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 과정은 참여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다양한 입장들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하며, 참여자들은 이러한 여러 입장을 객관적으로 검토하여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것이 기대된다. 즉, 쟁점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숙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우려 내지 비판도 적지 않다. 숙의민주주의가 좋은 성과를 보였던 외국 사례들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도입할 경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고, 숙의민주주의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한 비판들도 날카롭다.
 
특정입장이나 집단이익의 정당화 도구될 우려도
숙의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제점은 민주적 대표성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아닌 무작위로 추첨된 참여자들이 결정한 것을 국민 전체의 결정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 규범적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참여자의 구성을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함으로써 대표성을 확보하는 안이
제시되지만, 그것은 국민의 선출에 의한 민주적 대표성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의 권한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하지만 무작위로 추첨된 사람들의 결정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가 문제되는 것이다.
숙의민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은 전문성이다.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고도의 전문성을 갖는 사안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의 다수결은 무의미하다. 공론화의 대상을 전문성이 심하지 않은 사항으로 한정하고, 또 참여자들에게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언제라도 제기될 수 있는 심각한 약점임은 분명하다. 세 번째 문제점은 편향성에 대한 우려이다. 숙의민주주의 자체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한 목표가 아무런 문제없이 쉽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숙의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공적 의사결정이 객관성과 공정성, 합리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숙의민주주의가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숙의민주주의의 참여자들이라고 항상개인의 편견이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며, 자칫 특정한 입장이나 집단의 이익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참여자 선출방식 및 정보제공의 절차와 방식 등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배심재판에서도 적지 않은 선입견이 작용하듯이, 공론 과정의 결정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낳게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숙의민주주의를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안이 여야 대립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는 - 그리고 이처럼 결정이 늦춰지는 것 자체가 중대한 국가적􀀀국민적 손실인 경우에는 - 공론 과정을 통한 해결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예컨대 제10차 개헌의 핵심적 쟁점이라 할 수 있는 정부형태의 선택에 관하여 여야의 대립이 첨예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공론 과정을 통한 숙의민주주의가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전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첫째, 민주적 정당성과 관련하여 공론화위원회에 명확한 법적 권한의 부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공론화위원회의 결정권 자체가 문제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전문성을 고려한 충분하고도 균형 있는 지식과 정보, 이를 습득하여 판단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 대립되는 입장들에 대한 토의 과정 등이 합리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셋째, 편향성의 우려를 최소화시키는 참여자 및 정보 제공자의 선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전에 이를 완벽하게 확보하기 어렵다면, 사후에 탈락요건을 통해서라도 편향성 문제는 해소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들이 제대로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숙의민주주의의 실험이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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