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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보] 숙의민주주의의 조건과 과제숙의민주주의, 갈등 해법의 새로운 대안으로 볼 수 있는가 2
정경NEWS | 승인 2017.12.28 16:33|(205호)

숙의민주주의의 조건과 과제
 
최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숙의민주주의가 갈등 해결의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건설 재개, 원전 축소’라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에 대해 정부는 물론 공사 중단을 요구해온 환경단체도 수용 입장을 밝힘으로써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공론조사 방식을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회가 정파적 이해관계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타결하자는 제안까지 등장하면서 숙의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만큼이나 숙의민주주의도 제약요소를 내포하고 있어 적용대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숙의민주주의가 새로운 갈등관리 모델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공론화의 조건과 대상, 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숙의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선호 집합적(aggregative)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선호 집합적 민주주의는 개인적 선호 간의 질적 차이나 선호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 선호를 합산한 결과물을 집합적 이해관계로 정의한다. 그러나 세일러 벤하비브, 조슈아 코헨, 아이리시 영등 숙의민주주의자들은 숙의를 통한 의사결정의 질적 향상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투표나 이해관계의 단순한 결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숙의(authentic deliberation)를 통한 의사결정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이론가 존 드라이젝은 숙의과정에 참여한 개개인이 스스로 가치체계와 선호를 변화시키는 전환적 힘(transformation power)이 작동될 때 비로소 진정한 숙의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숙의를 통한 합의는 위협이나 강권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이성적 논증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일련의 절차적 조건들이 필요하다.
첫째, 숙의과정에는 정책결정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의 이해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지역, 계급, 연령 등 대표성 있는 다양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중요하다. 둘째, 숙의는 참여자들이 토론과 성찰을 통해서 자신들의 판단, 선호, 관점을 변화시켜나가는 사회적 과정이다. 숙의과정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호존중, 공동체의식, 신뢰 등과 같은 시민성(civility)이 필요하다. 숙의민주주의를 통한 이 같은 의사결정 방식은 매우 규범적이고 이상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정책 환경은 시간과 정보의 제약, 권력과 자원(지식과 정보)의 불균형 등 수많은 제약 조건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숙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숙의과정 참여자들 간에 권력과 자원의 배분이 불공평하게 이루어지면 숙의과정이 현실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
 

새로운 갈등해결 기제로서 숙의민주주의의 보완점
 
숙의민주주의가 이러한 조건과 한계를 토대로 향후 갈등해결의 새로운 기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공론화과정 운영주체의 중립성과 자율성 확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출범 당시에도 위원회의 법적 근거와 위원 구성의 중립성 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국무총리 훈령에 근거를 두었지만,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대통령의 지시로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정치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이슈에 대해 공공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는 프랑스의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의 설립이 바람직하다. 상설 독립기구의 설립이 어렵다면,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실 산하에 비상설 자문기구 형태의 공론화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행정부 산하에 공론화위원회가 설립될 경우에는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공론과정 참여자의 대표성과 토론과정의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단 구성에 대해서도 대표성 논란이 있었지만, 공론과정 참여자의 대표성과 포괄성 확보는 공론화의 핵심조
건 가운데 하나이다. 토론과정 참여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선정되어야 하고, 특정 단체나 집단이 과대 또는 과소 대표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토론과정에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와 학습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적극적인 참여분위기와 참여자 간의 신뢰가 형성되어 상호존중과 개방적인 태도로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셋째, 공론화 과정에 대해 일반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구비되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의 문제점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행되면서 일반 국민은 공론화 과정과 내용에 대한 정보
가 부족하거나 비대칭적 정보로 인해 왜곡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특히 주류 언론이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하면서 시민참여단은 물론 일반 국민의 여론형성에 일방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공론화 설계에서는 시민참여단의 토론과정이 공영방송, 포털 생중계 등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널리 전파되어야 토론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제고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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