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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웅장학회 30주년 기념 ‘유로피안 스타 초청음악회’ 열어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서울예술학원 이사장) 30년간 ‘나눔의 삶’ 실천한 나눔 대부
박윤희 기자 | 승인 2017.12.28 14:16|(205호)

글·사진 박윤희 기자 youn97@gmail.com
 
공연이 막바지를 다다를 즈음, 이대봉 회장(76·사진)의 이름이 불리고 객석에서는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이 회장 역시 무대를 바라보며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이 날은 이 회장에겐 가장 슬픈 날이기도 하다. 30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아들 대웅 군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대신 수많은 음악 영재들의 꿈을 지원해왔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들을 그리듯 이 회장의 눈가가 적시고 빛나고 있었다.
 
지난 12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대웅 장학회 30주년 기념‘유로피안 스타 초청음악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무대에는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소프라노 임선혜, 베이스 박종민, 테너 정호윤이 무대를 장식했다.
 
이대웅 장학회는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 및 이대웅 장학회 이사장인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고 이대웅 군의 이름을 따 지었다. 아들을 영원이 살릴 방법으로 지금까지 3만여 명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해왔다.
 
1988년 설립된 이대웅 장학회는 음악영재를 길러내기 위해 매년 성악콩쿠르를 개최해 우수 학생에게 상금을 주고 유학비도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 성악의 등용문'으로 불릴 만큼 세계적 스타들을 배출한 곳이다.
 
수많은 성악도 들이 꿈을 키워준 이대웅 장학회가 설립된 배경은 특별하다. 촉망받던 성악도였던 대웅 군은 서울예고 2학년이던 1987년 11월 서울예고 정기연주회에서 30개가 넘는 꽃다발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나흘 뒤인 26일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상급생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결국 세상을 등졌다.
 
 

아들의 영혼 영원히 지켜줄 방법으로 장학회 설립
 
당시 이 회장은 미국 출장 중이었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눈가가 젖었다. 이 회장은 "학교를 다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의 분노를 느꼈지만 소용 업는 일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보살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도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회장이 뉴욕행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뉴욕 가면 음반을 사 달라’고 하던 아들이었다.
 
이 회장은 “새벽 1시 반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급히 서울로 올라오라는 비서에 재차 물으니까 대웅이가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전화해서 아들만 살려주면 3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애원했지만 건장하던 아들의 몸은 이미 동결돼서 살릴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들을 잃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당시 충격으로 4번이나 혼절하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간간이 호흡곤란을 잃은 협착증도 이때 생겼다. 이 회장의 아내 역시 아들이 떠난 후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가 17일 만에 퇴원했다.
 
당시 학교 측은 장례비용으로 엄청난 금액을 내놨지만, 이 회장은 이 역시 사양했다. 대신 아들의 유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재단 인수를 결심하고, 장학 사업을 펼쳤다. 이 회장은 "아들은 떠났지만, 다른 아이들이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뿐만 아니다. 이 회장은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 학생들에게도 용서의 손을 내밀었다. 당시 검찰에 세 명의 가해학생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손수 3차례나 제출하고, 교장과 교사에게도 가해 학생들의 선처를 부탁했다. 자신의 아들 뿐 아니라 자신까지 죽음의 문턱까지 내몬 가해자들을 용서한 것이다. 결국 가해 학생들은 복학하고 일류 대학에 들어가서 유학까지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재단을 인수할 당시 서울예술학원은 이사장 횡령 사건으로 약 80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이 회장은 서울예고와 예원학교에 재능이 있는 예비 예술가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해왔다. 이 회장이 사활을 건 장학 사업으로 혜택을 본 학생은 지금까지 2만9661명이다. 이 회장은 마지막 한 명까지 정확히 기억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회장의 나눔 사업은 불우한 가정의 소년소녀 가장과 홀몸노인에게까지 퍼져나갔다. 현재는 베트남과 중국 연변 등 국외에서도 장학 사업을 펼쳐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적극 후원하고 있으며 한 해 지원받는 학생 수만 7000명이 넘는다.
 
이 회장이 운영하는 그룹의 이름은 '참빛'이다. 그는 "참이라는 게 많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게 우리 그룹의 정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장학 사업은 계속해서 펼쳐나갈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설립 당시에는 기금 1억 원을 출연했지만 2001년 참빛원주·충북·영동·속초도시가스 4개사 주식 5%(약 54억 원)를 기부해 배당금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만 주는 게 아니라 소년·소녀 가장, 그룹 사업체가 진출한 중국의 독립운동가 자손, 베트남에서는 공안열사(참전용사) 유자녀와 소수민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가난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
 
평생의 원수인 학교를 인수해 세계 최고의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 회장의 노력은 죽은 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회장 역시 뼈저린 가난을 겪고 자랐다.
 
이 회장은 "6·25전쟁 때 인민군이 내려와서 우리 아버지를 정자나무에 매달아서 재산을 뺏어갔죠. 고등학교 때는 우리 집에 논 서마지기밖에 없어 휴학계를 냈어요. 1년 동안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만으로 안 되겠다 싶어서 신문 배달을 시작했어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19살 때부터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회사에 다녔다. 첫 직장에서 부산 부두에서 하역 작업을 했다. 그 후에는 비료공장에 취직해 썩은 나무를 말려 무기질로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다.
 
그러던 중 화물선 사고로 바닷물에 젖은 비료가 경매에 나왔고, 이 회장은 전 재산에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려 4만 톤을 구입했다. 하지만 더 좋은 비료가 시장에 나왔고 이 회장의 비료는 팔리지 않았다. 그 때 모아뒀던 모든 재산을 잃는 경험도 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이 회장이 겪은 가난한 어린 시절은 형편이 어려운 소외 가정 아이들에게 지원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은 재능이 있어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렵죠. 하지만 예술가들은 고등학교 때 이미 장래가 결정됩니다.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죠. 서울예고는 64년의 전통을 가진 곳으로 세계적 음악가를 수없이 배출했습니다. 앞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시스템과 시설을 갖춰나갈 겁니다.”
 
특히 2013년에는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선정하는 자랑스런한국인대상(글로벌경영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 5월에는 30년째 장학사업을 실천해 온 공로로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선정한 '대한민국 나눔봉사대상'을 수상했다. 나눔봉사대상은 사회 각 분야에서 나눔 활동에 앞장서는 '나눔 천사'를 발굴해 선정한다. 이번 상은 80여 명의 후보를 추천받아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됐으며, 이 회장은 글로벌 장학 부문 최고 대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기회의 땅’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동남아 순방 일정을 진행하며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아세안 (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비롯한 신흥국과 정치, 경제 협력 저변을 넓히는 '신(新) 남방정책'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기대되는 곳은 단연 베트남이다.
 
베트남 핵심 경쟁력은 고정상, 저실업이라는 안정적 거시경제 여건이다. 또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 역시 베트남이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이유다. 베트남의 제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지난해 기준 204달러로 중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 임금 수준보다 낮은 수준이다.
 
정부 발표 이후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현지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15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지속적으로 늘어 지난해 사상 최고치(22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전체 FDI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3.0%에서 지난해 6.4%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 회장은 일찌감치 기회의 땅 베트남 진출의 초석을 닦아놓은 인물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기업으로 꼽히는 참빛그룹은 2006년 화빈성에 베트남 최초의 54홀 규모의 골프장과 5성급 호텔을 개장했으며, 2010년 최대 규모의 그랜드플라자하노이호텔을 준공했다. 하노이 수도지정 1천 년을 기념해 베트남 정부가 추진한 특급호텔 건설 프로젝트 일환이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2011년 베트남 보국훈장을 받았고 2013년 참빛그룹은 한국기업 중 처음으로 베트남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하노이 시장상을 수상했다.
 
그런 베트남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지난 2010년부터 사업장이 있는 화빈성 지역 빈곤층 가정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해왔으며, 형편이 어려운 소수민족 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매년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급액도 첫해 2억 동에서 2011년 3억 동, 2012년 4억5천만 동으로 매년 확대해왔다.
 
이 회장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며 과거 우리 군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인명살상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눔을 실천한 계기를 밝혔다.
 
이 회장은 이제 베트남에 사업 규모 1조 원이 넘는 대규모 테마파크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재는 토지 소유주들이 땅을 팔지 않아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까지 나서 독려했지만 아직 해결이 안 된 상태다. 향후 1000㏊ 용지에 10년간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투자해 놀이공원, 사파리, 워터파크 등을 만드는 것이 이 회장의 계획이다.
 
나눔은 기업의 존립 가치
 
이 회장은 참빛을 대기업으로 키우는데에 연연하지 않는다. 젊은시절 젖은 비료를 말리느라 친척들에까지 빚을 져야 했던 아픔을 겪은 후 가급적 차입을 안 하고 돈이 모여 밑천이 있을 때만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부도가 난 적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가 꿈꾸는 기업은 안정된 경영으로 내실을 다지고 그 수익을 우리 사회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참빛그룹이 교육 사업을 넘어 골프장 등 레저 비즈니스 등 여러 부분에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함과 무리하지 않는 투자에 있었다.
 
그는 성공을 이룰 때마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보다는 돈 없는 소년소녀 가장의 꿈을 키워주고, 독거노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에 더 가치를 뒀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어 팔순이 멀지 않은 나이에도 이 회장은 불 같은 열정으로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90세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이 목표’라는 이 회장은 건강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그의 건강 이유 첫 번째로 골프, 두 번째는 긍정적인 마인드다.
 
이 회장은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납니다. ‘두드려라. 그럼 열린 것이다”라는 늘 마음속에 되새기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우리 사회 귀감이 되는 존경받는 인물로서 만인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박윤희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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