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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하는 건 지식의 원천이지만 잘 듣는 것은 지혜의 원천이다.”반기문 글로벌사회공헌명예위원장 (8대 유엔 사무총장)
박찬호 기자 | 승인 2017.12.28 13:34|(205호)
“말을 잘하는 건 지식의 원천이지만 잘 듣는 것은 지혜의 원천이다.”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는 지도자 필요
반기문 글로벌사회공헌명예위원장 (8대 유엔 사무총장)

 
글 · 박찬호 기자(chanho227@dreamwiz.com) 사진 · 연합뉴스 제공
 
 
2017년 9월 25일 연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 명예회장 취임사 하는 반기문 명예위원장

연세대, 글로벌 사회공헌원 개원 반기문 명예원장
 
지난 9월 25일, 백양누리 금호아트홀에서 ‘연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원 개원식 및 반기문 명예원장 취임식’(아래 취임식)이 진행됐다.
취임사에서 반 명예원장은 대학의 사회문제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 명예원장은 “UN이 채택한 2030 지속가능개발 목표(2030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아래 SDGs)﹡를 기반으로 한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대학 내 전문가들과 UN 간의 긴밀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며 “현재 인류가 직면한 과제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거나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 명예원장은 지속가능한 미래 발전을 위한 연세비전에 동참하게 돼 영광이라는 뜻을 전했다. 반 명예원장은 “사회와 지구촌 공동 문제에 대학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연세대학교가 세계시민을 양성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사회공헌원은 세계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해나갈 예정이다. 오는 2018년 2월 4일에는 사회공헌원의 주최로 SDGs의 주제별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세계지속가능발전포럼이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된다.
﹡2030 지속가능개발 목표: 지난 2015년 마감된 새천년개발목표(MDGs) 이후 빈곤을 종식시키고 지구를 보호하며 번영을 이루기 위해 UN에서 채택한 사업. 17개의 과제로 이뤄져 있으며 2030년까지 진행된다.
반 명예원장은 중국 사기(史記)에 나오는 ‘태산불사토양(泰山不捨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큰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을 인용하면서 “큰 뜻을 품고 사회공헌에 있어 의미 있는 행보를 걷는 만큼 다양한 목소리와 입장을 배제하지 않고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리를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1970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하여 외무부에서 근무했다. 외무부에서 겸손하고 능숙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외무부 미주국장, 외교정책실장 등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냈고, 2004년 1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노무현 정부에서 제7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6년 10월 13일 유엔 총회에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2007년 1월 1일 코피 아난의 뒤를 이어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를 시작하였다. 2011년 6월에는 반기문 사무총장 연임 추천 결의안이 안보리의 만장일치와 지역그룹 전원이 서명한 가운데 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박수로 통과되어 유엔 사무총장 연임에 성공하였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2013년 포브스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한국인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전 세계에서 32번째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다. 또한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의 금자탑이 된 파리 협정을 성사시키고 1년만에 국제법으로 발효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12월 12일 포린 폴리시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주요 사상가 100인 중 정책결정자 부문에 선정되었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2016년 12월 31일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미국영어경시대회 최고점수
 
반 명예원장은 충주교현초등학교 6학년 때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에게 헝가리 국민봉기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소련군이 헝가리를 무력으로 침공했기 때문이었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당시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유엔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충주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충주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 적십자사에서 주최하는 영어경시대회에서 최고점수를 받았다. 부상으로 '외국 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1962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을 방문했다. 한 달간 미국 연수 및 봉사활동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 1963년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진학했다.
1970년 2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과 동시에 제3회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해 그 해 3월 외무부에 들어갔다. 신입 외교관 연수를 마칠 때 수석을 차지했다. UN 국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를 소통한다.
 

참여정부 외무부장관
 
반기문 명예원장은 오랜 기간 대한민국 정부에서 외교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1970년 외무부 여권과 1972년 주 인도대사관 부영사, 1974년 주 인도대사관 2등 서기관 등을 지냈고, 주로 국제 조직을 거쳐 1980년 외무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이 되었다.
이후 외무부 지원으로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에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노신영 주 인도 대사에 의해 총리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됐다.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를 역임했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19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때 주미 대사관 정무공사로 재직하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실무총책을 맡았으며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과정에 기여했다. 1995년 2월 외무부 외교정책실장과 외무부 차관보를 지내고, 1996년 11월에는 외교안보수석을 맡았다. 1997년 2월 황장엽 전 조선로동당 비서가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을 때, 중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제 3국인 필리핀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필리핀 피델 라모스 대통령에게 김영삼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황장엽의 한국행을 위한 담판을 지은 밀사로서 활약하였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내다가 2001년에 물러났다. 뒤이어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외교통상부 유엔본부 대사를 맡았다. 그 와중에 9·11 테러가 발생하자, 그와 관련된 유엔 차원의 테러리즘 대응조치 및 이견 조율 업무를 수행하는 등 국제경험을 쌓았다.
2003년 2월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을 잘 아는 외교관이 필요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반기문을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였다. 같은 달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노무현 정부의 반미적 입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문제를 문제 삼아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Outlook)을 '긍정적(Positiv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낮추자, 노무현은 반기문을 비롯한 3인의 대표단을 무디스, 피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등의 신용평가기관에 급파하여 진화에 나섰다. 반기문 명예원장의 대표단은 뉴욕의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본사와 홍콩의 피치 사무국을 방문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읍소하여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이후 노무현이 방미하여 의도적으로 친미적인 발언을 쏟아내자, 무디스는 신용등급 전망만 낮춘 채 실질적인 신용등급 하향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반기문은 2004년 1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세계가 직면한 위협과 해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17.4.26

2006년 한국인 최초 제8대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명예원장은 2004년 국정감사에서 1909년 청나라와 일본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입장을 밝혔다.
2005년 반기문 명예원장은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에 대해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독도 문제는 우리 국토와 주권 문제와 관련돼 있고 한일관계보다 상위개념이다. 시마네현 영토 편입조치가 우리가 외교권이 거의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뤄진 불법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효력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대북관을 가지고 있던 반기문 명예원장은 대북 유화정책을 추구하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 및 참여정부 각료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2004년 7월 반기문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결정을 무시하고 베트남에 모여 있던 400여명의 탈북자들을 공개적으로 일거에 한국으로 입국시켜 대북관계를 경색시키고 대통령과 대립하였다.
또한, 2005년 3월 미국이 기존의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자는 북한의 주장을 심도있게 검토하고 이를 대한민국 측에 제안했으나, 반기문은 이를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북한의 기만전술이라고 판단하여 노무현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고, 나중에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이 사실을 확인한 노무현은 반기문명예원장을 크게 질책하였다고 한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이후에도 복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청와대의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 구상에 계속 집요하게 반대하였다. 반기문명예원장은 2005년 8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여 '선 6자회담, 후 평화협정' 방침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였고, 이 때문에 정동영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으로부터 그런 냉전적 시각으로 외교를 제대로 하겠냐는 질책을 듣기도 하였다. 청와대는 이같이 대북문제에 강경한 반기문명예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와 IAEA로 복귀한다는 9.19 공동성명이 타결될 때, 외교부에 박선원 당시 행정관을 감시병으로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6년 7월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같은 해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하여, 결국 9.19 공동성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만전술로 드러나 공식적으로 파기되었다.
2006년 2월 14일에 유엔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여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으로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모든 나라를 순방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14일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엔 그의 당선을 예상한 외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아시아에 돌아갈 차례였던 당시 사무총장직을 놓고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와 경쟁하였다. 지만 8대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1차 예비투표에서 그는 15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중 13개국의 찬성을 받아 1위에 오르게 되고, 2차 투표에서 14표, 3차 투표에서 13표를 얻었고, 마지막 4차 투표에서 그는 7명의 후보를 제치고 안보리 15개 나라중 14개 나라의 지지를 받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특히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중동, 아프리카 국가의 그에 대한 지지는 대단하였으나, 10월 2일의 최종 비공식 설문조사까지 일본은 기권표를 던졌다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찬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2007년 1월 1일 반기문 명예원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취임하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그에게 직면한 주요 문제로서, 이란과 복한의 핵 문제, 다르푸르 분쟁의 유혈사태, 끊임없는 중동의 분쟁, 환경 재앙, 급증하는 국제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에이즈의 만연, 그리고 유엔 내부의 개혁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반기문명예원장은 탄자니아의 외무장관 아샤 로즈 미기로를 유엔 사무부총장으로 지명하고 유엔 사무국 내각(Senior Management Group)을 구성하였다.
2007년 2월 6일 유엔 총회장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반기문 명예원장은 비대해진 유엔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엔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또 기구 개편 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17.7.19

지구 온난화
 
반기문 명예원장은 임기 초반에 지구 온난화를 주요 문제로 인식하였다. 2007년 3월 1일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반기문은 "과거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우리 세대에는 핵겨울이 가장 큰 위협이었으나, 지금 인류에 그와 비견될 정도로 위협이 되는 것은 기후 변화이다"라고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였다. 2009년 9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기후 회의에서 "우리의 발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고, 우리는 나락을 향해 가고 있다"며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범국가적 협력을 거듭 촉구하였다.
2007년 1월 반기문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로 최초 외부 순방을 하였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수단의 다르 푸르 분쟁 해결이 그의 임기 중 최우선 목표 중 하나라는 것을 천명하고, 수단의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를 만나 분쟁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수단 정부의 지속적인 반대로 지지부진했던 국제사회의 개입이 비로소 성사된 것으로, 다르푸르 분쟁 상황 해결의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다. 2007년 7월 31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26,000명의 유엔 평화유지군 병력이 아프리카 연합군과 합세해 분쟁 지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승인하였고, 해당 지역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활동은 2007년 10월부터 시작되었다.
2011년 6월 21일, 반기문 명예원장은 인류평화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사상 이례적으로 15개 상임 및 비상임이사국과 유엔 전 회원국을 대표하는 5개 지역그룹 의장의 연임 추천을 받아 유엔 총회에서 192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유엔 사무총장직에 재선되었다. 연임에 성공한 반기문 명예원장은 자신의 다음 파트너로서 스웨덴의 외교관 얀 엘리아손을 유엔 사무부총장으로 임명하여 내각을 재구성 하였다. 두번째 임기 중에는 중동의 평화 문제와 소수자들의 평등과 인권 문제에 대해 강조하였다.
반기문 명예원장은 2012년 11월 사우디 아라비아 압둘라 국왕이 주최하는 카이시드(KAICIID) 빈 국제 종교포럼에 참석해,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의 많은 나라들이 변화하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아랍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언급하며, 2011년 초부터 진행된 리비아 내전과 아랍의 봄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아랍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2016년 1월 26일 반기문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중동 관련 토론에서 “이스라엘이 최근 요르단 강 서안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는 건 팔레스타인의 증오를 부추기고 국제사회를 모욕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하였다. 반기문은 억압받는 민족이 시대를 걸쳐 보여줬듯이 점령에 저항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며, 이는 증오와 극단주의의 강력한 인큐베이터가 된다고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의 조치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이후 2016년 6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직접 방문하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각각 만나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를 하였다. 반기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이 땅에 역사적 종교적 연결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유엔이 분쟁 해결책으로 제시해 온 평화 협상에 기반한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2012년 3월 7일 반기문 명예원장은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때가 왔다"는 연설을 통해, 이사회가 호모포비아 반대와 LGBT 권리 증진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하였다.
 
파리 기후 변화 회의
 
2014년 9월 반기문 명예원장은 뉴욕에서 열린 기후변화행진(People's Climate March)에 참가하여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시민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어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 변화 회의 준비를 위해 세계 지도자들을 유엔 기후 정상회의(UN Climate Summit)에 불러모았다.
파리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서 반기문 명예원장은 주관자로서 역사적인 파리 협정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였다. 미국 등 주요국이 빠지고 연장에 실패한 교토 의정서와 달리, 파리 협정은 2015년 12월 12일 195개국이 채택하여, 2016년 11월 4일부터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으로서 효력이 발효되었다. 기후 변화 회의의 주최국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랑 파비우스는 "야심차고 균형잡힌" 이 계획은 지구 온난화에 있어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하였다.
2016년 6월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진 연설에서 반기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분쟁, 시리아 내전, 인권 보호,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 등 국제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최근 고려대 특강
 
한편 반기문 명예원장은 12월 7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는 '유엔과 글로벌 리더십'을 주제로 반기문 명예원장의 특강에서는 "삶을 설계할 때 미래지향적 어젠다를 세워야 한다"면서 "요새 나오는 '욜로' 같은 건 삶의 어젠다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그 시대의 어려움을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열정과 동정심을 동시에 지니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건 밀고 나가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나는 '조용한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랍의 봄' 때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때에 따라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조언했다.
또 그가 가장 강조한 덕목은 '경청'이었다.
반 명예원장은 "말을 잘하는 건 지식의 원천이지만 잘 듣는 것은 지혜의 원천이다"라고 말하며 "수많은 세계 지도자에게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라고 했지만 대부분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의 말을 듣지 않으니 우리나라에서도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덧붙이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7.6.2

학력
197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 학사
1985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2008년 페어리디킨슨대학교 명예박사
2010년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 명예박사
2010년 난징대학교 명예박사
2015년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 명예박사
2016년 케임브리지대학교 법학 명예박사
2016년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교 명예박사
2017년 연세대 글로벌 사회공헌원 개원 반기문 명예원장 취임
 
상훈
1975년 - 녹조근정훈장
1986년 - 홍조근정훈장
2001년 - 오스트리아 대훈장
2002년 - 브라질 리오 블랑코 대십자 훈장
2004년 - 코리아 소사이어티 밴 플리트 상
2006년 - 페루 태양 대십자 훈장
2006년 - 제6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최고대상
2006년 - 잡지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상
2007년 - 제1회 포니정 혁신상
2008년 - 국제로타리 영예의 대상
2008년 - 필리핀 최고 훈장
2009년 - 델리 지속 가능 개발에 관한 정상회담 지속가능 개발 지도자상
2009년 -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0년 - UCLA 메달
2012년 - 제11회 서울평화상
2012년 -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탁월한 국제 지도자상
2014년 - 하버드대학교 올해의 인도주의자상
2015년 - 티퍼래리 국제평화상
2015년 - 대한적십자사 인도장 금장
2016년 - 네덜란드 사자 기사 대십자 훈장
2016년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그랑 오피시에) 훈장
2017년 - 국민훈장 무궁화장
 

박찬호 기자  tianmimi9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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