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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달걀’이 몰고 온 ‘먹거리 포비아’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동물복지형으로 사육환경 개선”
박윤희 기자 | 승인 2017.09.26 10:17|(204호)
한 판에 1만 원까지 치솟으며 기세등등했던 달걀 값이 10개월 만에 4천 원대로 추락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 몰고 온 결과다. 이미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를 겪은 국민은 전세계를 강타한 ‘살충제 달걀’ 파동에 또 한 번 불안감에 휩싸여야 했다. 인체에 크게 유해하지 않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소비자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번 파동 역시 정부의 초기 대응 미숙과 ‘밀식
사육’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밀식 사육 문제는 양계업계를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왔지만,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외면으로 일관해왔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 몰고 온 대한민국의 먹거리 안전 불감증과 대응책을 살펴봤다.
 
1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계란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대형마트 3사는 국산 계란에서도 살충제인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고객 안심차원에서 당분간 모든 점포에서 계란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 1월 ‘조류독감(AI) 파동’ 당시 한 판(30개) 9518원까지 치솟으며 ‘금값’ 대접을 받던 달걀은 이제 ‘X값’이 됐다. 가격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달걀을 찾지 않는다. 이제 점심시간 식당에서 ‘달걀말이’를 주문하는 손님은 볼 수 없다. 유럽의 살충제 달걀 파문이 국내서도 재연되자 엄마들은 내 아이 건강을 위해 달걀을 대체할 단백질 공급원을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달걀을 빼고 학교 급식 메뉴를 짜야 하는 영양사들의 고민도 깊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사용 가능한 달걀에 대한 안내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영양 교사들은 당분간 달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추후 부적합 판정될 가능성도 있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거질 수 있는 불안감을 막기 위함이다. 달걀을 주원료로 하는 빵과 각종 디저트류를 찾는 소비자 발길도 끊어졌다.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에그포비아(달걀 공포증)’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 파동 역시 예고된 사고였다. 이익에 눈먼 농가의 안전 불감증과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그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 달걀 생산량을 늘리는 데 급급했던 농장 주인들은 살충제라는 독성을 뿌려댔고, 정부는 귀를 닫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디클로로 디페닐 트리클로로에탄 즉 DDT는 1960~1970년대 살충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나 인체에 흡수되면 암은 물론 감각 이상, 마비, 경련 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맹독성 농약이다.
몸에 들어오면 물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반감기가 최대 24년이 걸리는 맹독성 물질로 1973년부터 국내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40년 전 국내서 사용이 금지된 농약이 경북 지역 친환경 농장2곳에서 검출된 사실이 20일 밝혀졌다. 하지만 정부는 두 농장에서 검출된 DDT 양이 잔류 허용 기준치(0.1 ㎎/㎏)를 넘지 않고 자연에서 흡수될 수 있는 정도여서 일반 달걀 유통을 허용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전조증상은 이미 있었지만, 정부는 심각성을 외면했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8월 사용 금지된 살충제 ‘피프로닐’문제가 불거지자 전체 농장의 4%에 불과한 60곳에 대해서만 검사를 실시했다.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미 유럽 등 해외에서 논란이 일어났지만 “국내 달걀은 안심해도된다”는 말을 국민에게 해댔고, 살충제 달걀이 터진 뒤에도 크게 달라진 모습은 볼 수 없었다.
 
17일 경남 창녕지역 한 산란계 농장에 닭들이 낳은 계란이 쌓이고 있다.
제주도는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경기도 산 '08광명농장' 표기 계란이 11일 제주에 반입돼 전량 회수 조치해 폐기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이날 오전 제주시 조천읍의 한 농장 창고에서 관계자들이 폐기예정인 '08 광명농장' 표기 계란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믿었던 ‘친환경’의 배신
밥상 위 ‘국민 메뉴’였던 달걀이 순식간에 ‘공포’로 변하면서 먹거리 전반에 대한 국민 불신도 커졌다. 정부가 친환경으로 인정받은 축산물에 부여하는 인증마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부적합’판정을 받은 친환경 인증 농가의 비율이 4.5%(683곳 중 31곳)로, 일반 농가의 3.2%(556곳 중 18곳)보다 높았다. 살충제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친환경 농장에서 살충제 검출이 훨씬 많았다. 친환경 인증마크를 믿고 많게는 2배 비싼 가격에 달걀을 사던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체 농가의 55.1%가 친환경 인증을 받을 정도로 진입 문턱이 낮다는 점과 친환경 농장이 인증 기준을 위반해도 1년만 지나면 재인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친환경 인증업무는 1999년 제도가 생겨난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국립농산물관리원이 전담했다.
하지만 모든 현장 점검이 어렵다는 이유로 2002년부터 민간업체로 위임했고, 지난 6월부터는 64곳 모두 민간이 관리하고 있다. 민간 업체들은 친환경 인증을 내줄 때 수수료를 받는다. 인증을 많이 낼수록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돈만 주면 인증을 받을 수있다’는 인식이 나돌았다. 사태가 불거지자 정부는 이와 관련, 64곳의 민간 친환경인증기관을 통폐합하겠다
는 계획을 밝혔다.

조류독감 공포 떠올라
우리는 지난해 조류독감(AI) 사태를 겪으며 살아있는 생닭 3800만 마리가 살처분한 기억이 있다. 이번 파동도 공장식 축사가 원인이 됐다.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화공 약품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닭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개선되어야 할 점은 닭의 사육 환경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닭들은 일생을 손바닥만 한 작은 철망에 갇혀 살아간다. 열악한 철창 안은 기생충이 창궐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가축을 키우는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했다. 근본 개선 없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내성이 생긴 진드기를 없애려고 더 독한 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를 열악한 농가 탓 만으로만 돌리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위기관리가 실패했다는 것을 또 한 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이미 국회와 사회단체 등에서 살충제 달걀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음에도 정부는 대응하지 않았고, 결국 사태를 키웠다. 사태 일주일만인 지난 21일 정부는 “살충제 달걀은 안전하며, 성인이 하루 2.6개씩 평생 먹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놨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7일 오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산 계란 살충제 안전관리대책 관련 현안보고를 하며 대국민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19일 오전 이낙연 총리가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방문, 계란 살충제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동물복지형 농가 대안으로 떠올라
하지만 살충제 달걀 파동은 국민을 ‘먹거리 포비아’에 휩싸이게 했다. 전문가들은 닭을 자유롭게 풀어 키워 안전하고 건강한 달걀을 낳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도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내년부터 동물복지형 사육시설을 의무화하고 2025년까지 산란계 농장의 30%를 동물복지형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동물복지 사육은 가축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며 키우는 방식을 일컫는다.
앞서 정부는 2012년부터 산란계(알 낳는 닭)를 대상으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도입했다. 22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산란계 동물복지 인증 농장은 89곳(1033만 5000마리)으로 집계됐다. 국내 전체 농장 1456곳 중 6% 정도다.
철창에 가둬 키우는 것과 달리 1㎡당 9마리를 초과해서 키울 수 없고(7마리 권장) 닭이 발로 움켜쥘 수 있는 횃대를 마리당 최소 15㎝ 이상 설치한다. 이번 살충제 달걀 전수조사 결과 동물복지 인증 농장에서는 부적합 달걀이 나오지 않았다. 일각에선 동물복지형 사육이 보편화되면 농가 부담이 커지고 달걀값이 오를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동물복지 농장은 일반 농가보다 단위당 생산비는 1.16배 높은데 반해, 산란계 1마리당 순수익은 평균 3.1배
높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정부는 향후 기존 농가가 동물복지형 농가로 전환할 때 필요한 비용과 교육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을 발표했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8일 경기도 평택시의 산란계 농장을 찾아 “달걀 ·닭고기 안전성 확보와 질병 예방을 위해서 사육 및 생산방식의 패러다임 전환과 유통 ·판매 단계별 안전관리의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밀식 사육에서 동물복지형으로 사육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존 사육 농가가 동물복지형으로 사육환경을 전환할 때 필요한 시설비용, 경영비 증가 등 농가부담을 고려해 인센티브와 교육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유통 ·판매 단계별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달걀유통센터(GP)를 통해 달걀의 수집과 판매를 의무화하고 사육환경 표시제와 달걀 ·닭고기 이력추적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6일 동물복지농장인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양계농장에서 닭들이 뛰놀고 있다. 동물복지농장은 친생태적인 환경을 유지해 전국의 양계 농가가 살충제 계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청정지대를 유지하고 있다.

박윤희 기자  youn9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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