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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담의 경계를 허물다’ 이성근 화백미술가 인사이드
이채현 기자 | 승인 2017.01.10 16:50|(202호)

미술가 인사이드

‘예술, 담의 경계를 허물다’

이성근 화백

낡은 관념 벗어나 고매하고 짜릿한 울림으로 감동시키다

‘새는 알로부터 나오려 싸운다. 알은 새의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정체된 ‘알’, 그것을 깨고 새로운 세계, 진정한 자유를 얻는 새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미술가가 있다. 바로 이성근 화백이다. 그의 작품은 틀이 없다. 틀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념이라면 그의 작품은 일련의 틀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당신이 자유로워야 그림에 자유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이성근 화백, 지난 12월 21일 정경뉴스 사무실에서 이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 철학에 대한 신년대담을 가졌다.

대담· 최재영 본지 대표  정리· 이채현 기자<redjoker@mjknews.com>

 

“이성근 화백은 강력하면서도 쾌활하게 하고 대중적이지만 개인적 이미지를 비유적으로 그려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성근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그것은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우주적 의미를 전달한다.”

그레엄 설리번 뉴욕 컬럼비아대학 미술대학장은 이성근 화백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확실히 그의 작품은 통속적이거나 결코 낡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의 고매하고도 짜릿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서 나타나는 재치와 순발력, 감각이 있기에 그의 작품은 한없이 자유롭고 특별하다. 작품은 작가 영혼의 소산이라고 소년과 같은 천진한 웃음으로 진중한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성근 화백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무게 있으면서도 유쾌한 모습이었다.

근대 미술의 아버지 이당 김은호 선생의 제자
 
 이성근 화백의 작품은 단조로운 듯 하면서 함축미가 있는 것이 호젓한 심미안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이당 김은호 선생의 영향이기도 하다. 이 화백은 일찍이 10대 초부터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당 김은호 선생을 사사했다. 이당 김은호 선생은 한국의 풍속화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갔으며, 그만의 한국적 화풍을 수립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김은호 선생은 뛰어난 인물 묘사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데 만 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초상을 그린 운보 김기창, 오천 원권을 그린 현초 이유태, 백 원 주화의 이순신 영정을 그린 월전 장우성, 오천 원권의 율곡 이이와 오만 원권의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일랑 이종상 선생 모두 이당 선생의 후소회 제자들이다.

 

청와대·UN본부·미국 국방부 등 세계가 찾는 현대 미술의 거장

 이성근 화백 역시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꾸준히 세계 곳곳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제6회 이당 미술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 건국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까지 지낸 그는 지금까지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의 그림은 청와대, UN 본부, 영국 왕실, 미국 국방부(펜타곤), 뉴욕 한국총영사관, 필리핀 대통령 말라까냥 궁 등 국경을 초월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많은 장소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작품이 작가 영혼의 일부라면 예술의 영속성은 작가로 하여금 후대와의 공감을 통해 수세기를 살게 한다. 그의 영감과 철학이 사람들의 공감 속에서 오래도록 함께하길 기대한다.
 이 화백과 그의 작품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이당 김은호 선생을 사사하셨다는데 관련 일화를 듣고 싶습니다.

 A. 제가 선생님을 사사할 당시는 10대 초반이었습니다. 문하생이 되고 일여 년 쯤 되었을 때 20대 초반의 선배들은 선생님께 많은 총애를 받는데 그에 비해 제겐 관심이 없으셔서 ‘내가 괜히 여기 있나’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과 손님께 차를 대접하려 자리를 비운 사이 선생님께서 저에 대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린 놈이 그림을 곧 잘 그려. 근데 (나는) 관심 없는 척 보고만 있어. 모르긴 몰라도 많이 힘들 거야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선생님이 보고 있는 그 자체가 교육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후 선생님이 날 몰라줘도 괜찮고 관심 없는 듯 보여도 괜찮았습니다.

 

Q. 형식·룰·장르의 틀을 벗어난 작품들을 보여주고 계시는데요.

A. 나는 장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르라는 것 자체가 나를 묶어 부자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낌, 감성이라는 것이 나를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내 안의 감성, 그러다 보면 자연적으로 내 모습, 나만의 모습이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자는 내 그림을 보고 잭슨 폴록이나 마티스 같은 화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처럼 되지 않습니다. 나는 나만의 내가 되길 원합니다.
  어렸을 때 그림을 못 그려 선생님한테 하도 야단을 맞아서 짝꿍이 긍휼히 여겼는지 대신 그림을 그려줬다가 탄로나 야단맞은 적 있습니다. (웃음) 그때는 내가 그림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느끼는 대로 그렸어요. 하늘이 파란데 검게 그리고, 하얀 벽을 빨갛게 그리는데 선생님은 관념에 얽혀있으니 선생님 눈에는 못 그렸을 수밖에요. 소원이 있다면 그림을 못 그리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데 지금은 그렇게 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Q. 이런 생각을 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A.  사람은 자신이 어떤 틀이나 격식을 만들고는 그 틀에 자신을 묶어버립니다. 룰의 주인이 되어 넘나들어야 하는데 내가 내 룰의 종이 되는 것이죠.
제 스승 김은호 선생님의 스승이 심전 안중식 선생입니다. 안중식 선생이 제 스승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림을 배울 때는 손이 붓도록 그림을 그렸다. 손이 부으면 붓기를 빼고 다시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그 얘기가 크게 와 닿은 저는 매일 그림 그리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선생님 말씀대로 할지라도 거기에 머물러서 선생님의 말씀까지 나에게 틀이나 관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자유로워야지. 나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동안 붓을 놓아도 된다. 왜 자꾸 잘 그리려 하는가. 그림을 변하게 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내 생각, 철학, 인생이 변하면 (그림도 자연히) 변하는 건데 왜 잘 그리려고 애쓰는가. 아 붓을 놔도 되겠다. 선생님 말씀에 연연하지 말고 내 존재가 변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자유로워졌습니다.

 
 

Q. 미술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요?

A. 예전 뉴욕 컬럼비아 대에서 특강할 때 한 이야긴데요, 저의 미술 철학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저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아름다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겐 세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요. 그림 그린 지 십 수년이 되었을 때 첫 번째 소원은 화가가 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화가다운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10년 후 두 번째 소원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혹자는 화가는 예술가가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제게 화가는 예술을 표현하는 데 있어 손만을 사용한다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지요. 그러나 예술가는 손의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로 표현합니다. 내 존재를 던지는 것이 예술이고, 그러다 보니 행위가 나왔습니다. 행위예술, 퍼포먼스 그런 것들인데요. 제 경우 신라 호텔이나 하얏트호텔 등 무대에서 하는 것도 많았지만 생활 안에서 즉흥적으로 하는 퍼포먼스가 많았습니다. 행위를 하기 위한 행위. 생활 안에서 행위는 순간적이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또 시간이 흘렀고 세 번째로 미술가가 되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미술가(美述家). 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술(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화가, 예술가, 미술가 다 같은 말 같지만 저는 의미 부여를 달리했습니다. 그리하며 표현된 내 그림이 아름답기 전에 내 존재가 아름다웠으면 했습니다. 내 존재, 생, 철학, 인생, 느낌이 아름다우면 그림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Q. 얼마 전에 새롭게 이성근 미술관을 개관하셨어요.

A. 미국에서 작가 생활을 5년 정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천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더러 사람을 참 좋아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을 좋아해. 왜 좋아하나 했더니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는 거예요. 토끼는 토끼를 좋아하고 사슴은 사슴을 좋아하듯 말이죠. 사람에겐 신비가 있어요. 내 안의 신비는 또 다른 신비를 찾는데, 신비와 신비의 만남. ‘이 친구에게 이런 신비가 있었구나’ 알게 되었을 때 환희를 느낍니다. 그러니 너무 좋은 겁니다. 이런 사람의 깊이와 신비는 대화를 통해 찾아야 합니다. 말이란 것은 생각에 옷을 입혀 내보낸 것인데 말과 말이 대화를 하며 깊이와 신비, 감성을 알게 되는 것이죠. 예전엔 표면적인 만남 자체로 좋았는데 지금은 깊고, 영적인 만남을 원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이천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파주에 있는 벽초지 수목원에 200평이나 되는 미술관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화가가 개인 미술관 갖는 것은 하나의 꿈이지요, 그렇게 5년여를 지내다 이제 양수리 금난 남한강변에 있는 미술관으로 오게 됐습니다. 예술가는 꿈을 꿔야 꿈같은 예술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또 많은 꿈을 꾸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꿈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A. 저는 제 작품을 구경하고 나를 알아주고, 또 느끼는 사람을 찾습니다. 제 선배 중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을 팔면 자신의 정신세계를 파는 것 같다 하며 소장만 하고 계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 그림 수천 점이 쌓여있는데 제가 볼 때 그 그림이 너무 놀라운데 유통이 안 되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림은 알아주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치는 가치가 안다고. 내 세계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고, 그 그림을 통해 같이 호흡한다는 게 또 하나의 의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술관은 무료 관람이고 오시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가끔 제가 직접 설명하고 차도 마시기도 합니다.

Q. 예술가가 되고 싶은 후배들과 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A. 행복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물질로 행복한 게 아니라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는 한 생명체가 수백 조의 생명체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신이 사람에게 창조의 영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끌어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며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
 또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숨은 작가들을 찾아내 인정해주면 문화 발전에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Q.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다면?

A.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더라도 제 그림이 가령 러시아에 전시됐을 때 많은 사람이 이로 인해 소통하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여러 나라를 돌며 전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채현 기자  redjoker@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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