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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경계의 담장
최재영 본지 발행인 | 승인 2016.12.09 17:11|(201호)
마침 조간신문에 퇴임을 앞둔 미국 오바마 대통령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임기 중 마지막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내 미셀과 함께 워싱턴DC ‘참전용사의 마을’을 찾아 퇴역 군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한 장의 사진이다. 손을 잡고 격려해 주는 오바마 대통령의 여유, 이에 식판을 들고 환한 미소로 화답하는 퇴역 군인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지만 왠지 낯설고 부러움마저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임기를 불과 2개월 남겨 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그는 아직도 57%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뒤인 지난 달 9일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50여명의 백악관 직원들을 자신의 집무실 앞 정원으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비롯해 몇 가지 당부를 했다. 8년전 부시 대통령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품격 있게 백악관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릴레이 주자와 같다. 바통을 받아서 최선을 다해 달린 뒤 다음 주자에게 건넬 때는 조금 더 진전을 이뤘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것을 잘 해냈고, 이제 다음 주자에게 잘 넘겨주고 싶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팀이기 때문이다”는 말을 남겼다. 가슴 찡한 감동이다.
 
경계의 담장, 스스로 허물어버렸다
이즈음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코너로 몰리는 상황에 있었다. 두 번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통해 급한 불을 끄려 했지만 진정성 없는 사과로 민심은 더 나빠졌다. 게다가 민심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민심 또한 절망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여파는 대단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1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사실상 국민에 의한 ‘정치적 탄핵’이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4일 초췌한 모습으로 ‘2차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열흘 전 역풍을 불러일으킨 2분짜리 녹화방송 사과문에 대한 부담이 컸던 탓일까. 박 대통령은 약간 울먹이듯 떨리는 목소리로 비교적 긴 내용의 사과문을 감성에 호소하듯 읽어 나갔다. 최순실에 대해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2차 대국민사과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광화문 촛불은 급기야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으며 국정운영마저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100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촛불집회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마치 4.19혁명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IMF 외환위기 당시의 경제 분위기가 동시에 밀려오는 것 같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해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춘 것이 화근인 것처럼 말했다. 마치 박 대통령 자신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선의로 국정을 수행했는데 최순실이 사적으로 국정을 농단한 것처럼 표현했다. 평범한 변명이지만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실세에 대한 의혹과 비판은 그동안 수없이 제기됐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박 대통령은 그런 비판과 지적에 대해 경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을 흔들고 국가를 흔드는 불순한 세력의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가. 심지어 지난해 말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때도 박 대통령은 그 비선들을 엄호하지 않았던가. 실세는 없다며 청와대 진돗개가 실세라는 농담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경계의 ‘담장을 낮췄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실 처음부터 ‘경계’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담장을 낮춘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담장은 무너져 버린 셈이다. 결국 한 몸이었다는 뜻이다. 검찰이 최순실을 기소할 때 박근혜 대통령도 ‘공모관계’라고 밝혔다. 검찰이 밝힌대로 애초부터 그들 사이에는 담장이 없었다는 뜻으로 봐야할 것이다. 담장을 쳐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박 대통령이 내친 것도 그런 연유였다. 큰 비극은 이렇게 탄생했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사유화,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굳이 헌법을 들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대통령 권력도 국민이 잠시 맡겨놓은 ‘위임 권력’에 다름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임기 동안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럼에도 공적 권력을 ‘사유화’ 해 자신이나 특정인을 위해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 자체가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중대한 범죄요 탄핵 사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맡긴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 했다는 비판에서 한 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경계의 담장’ 운운하며 ‘나는 몰랐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을 사유화한 장본인이 바로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비판과 경고, 심지어 가혹할 만큼의 국민적 저항이 있었음에도 박 대통령은 끝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불통의 연속이었다. 박 대통령에 주변에 쓴소리 하는 참모들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 쓴소리 하는 참모들은 처음부터 발탁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예스맨’들로 채워지다 보니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들 국민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비선의 활동은 더 활발해지고 세간에는 온갖 의혹과 음모론만 넘쳤던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절차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지율 5%대 안팎의 대통령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국회 절차를 거쳐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론이 날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이 문제는 헌법적 절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꼭 하나 강조할 대목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권력의 사유화’가 정당화 되거나 그 반민주적 행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4.19 혁명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농단한 부패권력의 말로는 대체로 비참했다. 권력은 유한해도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재영 본지 발행인  mjknews21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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