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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장육영수 여사 순국 42주년 추모 콘서트 ‘백목련 아련하고 생생하게’초연 …생명존중·인류애 뜻 기려야
이채현 기자 | 승인 2016.09.12 09:41|(198호)
지난 8월 15일은 광복 71주년. 일제강점기로부터 우리의 주권을 찾아온 날, 국민 모두가 기뻐해야 하는 그날, 휘몰아치는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국민에 차별없는 사랑을 나누다 아스러진 한 여인이 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다.
그녀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축사 도중 조총련 하수인 문세광의 총알에 맞아 49세 일기로 순국했다.
이경재 위원장을 주축으로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는 42년 만에 다시금 그녀의 죽음을 순국 장소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추모 뮤지컬 콘서트 ‘백목련 아련하고 생생하게’를 재연했다. 이경재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작고한지 꼭 42년이 되던 지난 8월 15일 오후 3시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육영수 여사 추모 공연이 막을 열었다.
이날 초연하는 뮤지컬에는 뮤지컬 ‘마리아마리아’의 강효성이 육영수 여사역을, 배우 진봉진이 육여사의 부친 육종완 역을 맡았다. 또 가수 남일해, 설운도, 국악인 송소희가 출연해 육영숙 여사 생전 그 시대 즐겨 불렀던 가요와 민요를 부르고 성악가 소프라노 임청화와 바리톤 고성현 교수가 목련화, 동심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대 고이 누운 곳에’를 노래했다.
특별출연에는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 실황을 중계방송한 강영숙(MBC 아나운서·예지원 원장)과 KBS 국민장 중계 시 모윤숙의 추모시를 낭송했던 성우 고은정씨가 한센인 시인 한하운의 국민장 추모시를 낭송했다. 뜨거운 여름 연휴에도 불구하고 2회에 걸쳐 2400 여 명의 관객이 함께해 당시를 떠올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성황리에 끝났다.
 
이경재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장

이번 육영수 여사 추모공연의 사실상의 주최자는 다름 아닌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 이경재 위원장이다.
이경재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장은 언론인 시절을 비롯하여 평생 동안 대한민국 헌정사를 생생하게 지켜본 인물이다. 이 위원장은 인천 강화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 대학교 1학년 때 4·19혁명에 참여하기도 한 4·19세대로 기자로 출발, 정치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이때 24년 언론인 생활 중 1980년 5공화국 출범 당시 비판적 성향의 기자로 분류돼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 되었다가 4년 후 월간 신동아 기자로 복직되어 민주화 투쟁과 관련된 각종 다큐를 기고하여 월간지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1992년 김영삼 민자당 총재 공보특보로 발탁되어 이후 국회의원을 4선 연임하고 방송통신위원장까지 역임했다.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와 이번 공연에 대해 이경재 건립위원장을 만나 관련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경재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Q.육영수여사 추모동산건립 취지는 무엇인가요.
 
A. 8월 15일은 모두가 기뻐해야 할 광복절이지만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가슴아픈 날이기도 합니다.
육영수 여사는 42년 전,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진행하시던 중 북한 하수인 김세광의 흉탄에 어이없게 작고하셨습니다. 영부인으로서 공무수행 중 순직했기 때문에 5일간의 국가장으로 모셔졌는데 당시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연도(沿道)에는 150여 만의 시민들이 나와 땅을 치며 통곡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온 국민의 충격과 슬픔은 40여년이 지난지금 아직도 국민 마음속에 살아있지만 안타깝게도 추모동상 하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충북 옥천의 생가라든가,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 도서관, 서울·부산 어린이 회관의 동상과 전라도에 한센 인들이 스스로 세운 추모 동상정도 세워져 있지만 전 국민적 차원에서의 동상은 세워지지 않아 무척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따스한 사회를 원한다면 영부인께서 남기신 교훈을 새기고 기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작년 8·15 광복절행사 전후하여 참석했던 분들이 자연스럽게 육영수 여사의 동상이 세워져야 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제라도 그 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분이 가신 비운의 장소인 장충동 국립극장 경내에 추모 동산을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도 기꺼이 참여, 그렇게 400여 명의 발기인으로 추모동산 건립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것입니다.
 
2016년 8월 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백목련 아련하고 생생하게' 출연진들
Q. 생전 육영수 여사는 어떤 분이셨는지요.
 
A.육영수 여사는 우리 국민 모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어머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렵고 고달프던 시절 난민촌을 찾아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손수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모두가 기피하던 나환자들의 손을 잡아주시며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당시 소록도 섬에 격리되어 있는 나환자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육영수 여사는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자 병원을 세워 치료를 도왔고 나환자들의 자활을 위해 씨암탉과 씨돼지를 보내 주민들을 격려했습니다. 소록도 외에도 전국 63개 나환자촌에 있는 나환자 돕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육 여사는 어린이를 유난히 좋아해 어린이를 위해 부산의 어린이 회관을 비롯, 서울 남산 어린이 회관을 건립했고,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를 만들어 어린들에게 책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여성근로자들과 사회에서 지탄받던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위해 여성회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교포들은 물론 뤼브께 독일 대통령까지 눈물짓게 하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행적은 마더 테레사에 버금간다고 생각합니다.
육영수 여사는 국민의 편에 서서 청와대 안에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도선사 주지셨던 현성 조실스님께 들은 이야깁니다. 한번은 육영수 여사가 절에 폐지를 주으러 온 할머니를 만난 적 있다 합니다. “어디서 오셨냐” 묻더니 새마을 운동이 잘 되고있다는 삼양동에서 왔다는 말씀을 듣고 “그 곳은 닭·돼지를 보내 새마을 운동이 잘 되고 있다 했는데요”라고 대답하자 할머니는 “서울시에서 준 것은 다 잡아먹고 한 마리도 없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육 여사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께 전화해 이런 상황을 보고하며 “신문보도는 잘 된다는데 이렇게 사실과 다르니 탁상행정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고 대통령은 바로 시장에게 전화해 시정조치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 육 여사에게 청와대 내 야당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처럼 선행은 의뢰적인 돌보기 식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 여사는 특별이 재소자의 편재를 읽고 청와대에 불러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는 등 많은 계층의 편지를 읽고 답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소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뮤지컬 '백목련 아련하고 생생하게'에서 육영수 여사 역을 맡은 임청화 교주(사진 왼쪽)
Q. 육영수 여사가 순국한지 42년이나 지났습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지금에서야 이런 추모행사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A. 육영수 여사가 순국한 때는 아직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집권하고 계셨고 그나마도 5년 후 박 대통령 역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기에 경황이 없었습니다. 이후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가 헌정사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이런 이야기를 나눌만한 분위기가 없었습니다.
정치적 안정기가 들어선 후에도 이념적 색깔 등보이지 않는 대결의 연속선상에서 누가 먼저 관련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미뤄두다 보니 시간이 너무 지난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적 논쟁을 떠나 이제 육영수여사 만큼은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Q. 20년 넘게 동아일보 야당출입기자로서, 또 박정희 대통령과 가장 큰 대립각을 세웠던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변인등을 맡았던 분으로서 이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A. 저는 대학시절부터 오랜 시간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이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할 당시 해직까지 됐을 정도로 당시 박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기사도 많이 쓰기도 했었습니다.
 최근 역사의 재평가가 화두에 오르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 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이 일었습니다. 사실 저도 헌정사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이 두 분은 과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헌정 상 과오에도 불구, 한국의 성공신화를 만든 것도 사실입니다.
 긴 역사적, 세계사적 틀에서 ‘공과(功過)를 나눌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절차적 측면에서 과가 많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항일투쟁 상징적인 인물이자 자유민주주의 기틀위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적 발전을 이뤘습니다. 국가적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인 공을 인정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 아브라함 링컨, 조지 워싱턴 대통령 같은 경우도 따지고 보면 과가 많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미국 역사적 입장에서 국부로서 공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택동의 경우 중국인 3천만 명을 학살하는 등 과오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등소평은 그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며 중국을 통일하고, 오늘날 중국의 기반을 만든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택동 덕문에 오늘날 중국이 현재처럼 국민적 통합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역사적 인물은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솔직히 공과 중 과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모두 당시대 과도 적지 않지만 필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동상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육영수 여사부터 그 뜻을 기리는 것이 이런 모든 것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육영수 여사
Q. 추모 기념관이나 동상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하필 동산을 만들고자하는 이유가 있나요.
 
A. 그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처음에는 동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런 부분역시 권위적인 느낌으로 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국민 모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함께 할 수 있는 동산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으나 사람의 형상보다 육영수 여사가 좋아했던 목련꽃 이파리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품들로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자세한 것은 공모전 등을 통해서 구체화 할 생각입니다.
동산은 울타리를 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동산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개방형으로 조각동산을 만든다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건물을 짓거나 땅을 사야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허가라든가 공원을 세우기 위한 큰 절차는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Q. 각계 다양한 명사들이 육영수추모동산건립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고 육영수여사 추모에 정치적인 이슈로 애로 사항은 없었는지요.
 
A. 예. 사실 저는 육영수 여사를 정치적인 것이 아닌 인간 육영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뮤지컬 내용도 그런 맥락입니다. 정치적 색을 빼고 한 인간의 훌륭한 삶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뒀습니다. 가능한 한 기업인, 정치인을 배제하고 정치·문화·예술·사회·봉사단체가 회원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 사단법인으로 하려고 하다가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에 계시니까 기업 등이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기업자금을 투자하면 오히려 박 대통령에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육영수추모동산건립위원회는 중도를 유지하고 오롯이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나 정치로부터 되도록 멀어져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모아서 진정으로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고자 합니다. 물론 기업인이나 정치인도 개인의 입장으로 후원은 가능합니다.
 
Q.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해오름극장에서 육영수 여사 추모 뮤지컬을 열었습니다. 준비 중 애로사항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동원 인원이 일반 음악회의 경우 출연자 몇 분만 모시면 됩니다. 하지만 뮤지컬의 경우 동원 시설이나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예산 등의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업적 뮤지컬을 위해 엄청난 물적·인적 동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연습할 만한 장소 섭외도, 예산 마련도 제대로 되지 않아 작은 골방에서 많은 인원이 연습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남자 배우 한명이 좁은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하다 도저히 못 견디어 갑자기 그만두면서 곤란한 적도 있었습니다.
인건비의 경우 응당 많은 출연료를 받아야 할 많은 분들이 재능기부를 하셨고 나머지 분들도 어떤 대가라기보다 육영수여사를 기리기 위한 열정을 가지고 기꺼이 일해 주셨습니다.
사실 공연이 제대로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공연 일주일 전부터 다행히 후원금 등이 들어오면서 일이 잘 풀렸습니다. 힘든 여건에서 기꺼이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Q. 이번 추모 뮤지컬 콘서트는 2회 거의 만석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관객 반응이 어떠했는지요.

A.이날 2회에 걸쳐 상영하며 여건이 좋지 않아 본 공연장에서 제대로 리허설 할 기회는 단 두 번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연진 모두 너무 열심히 해 주셨습니다.
이번 광복절은 긴 연휴인데다가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됐고 해오름극장 자체도 교통이 그렇게 좋지 않아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행정인원이 부족하여 좌석배정에도 우왕좌왕 하는 부분이 적지 않게 있었음에도 만석에 가까운 인원이 채워졌습니다.
이번 공연의 경우 역시 정치색을 빼고 육영수 여사의 일생을 그리는데 집중하였는데 육 여사 자체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제대로 보지 못해 걱정이 됐었지만 금세 연극에 빠져들어 훌쩍거렸습니다. 자리를 함께 했던 독일인 이참씨도 “많은 내용이 들어있음에도 중요한 것을 짚으면서 쉽게 풀어 어린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날 공연을 보고 육영수추모동산건립위원회의 회원이 부쩍 늘었음은 물론 경남 창원, 부산, 구미 등지에서 앵콜 공연이 쇄도했습니다. 내용 자체가 2회 공연으로 끝내기 안타깝기 때문에 순회공연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미주지역 역시 후원이 제대로 된다면 해외 공연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영수추모동산건립위원회 운영상황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A.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어떤 조직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매스컴 등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운영하다보니 사무실 등은 작고 소박하게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위해 현재 육영수추모동산건립위원회는 부산 여성위원회, 대구 목련회, 경주 여성위원회 등 전국 시·도, 여성 단체, 장애인 협회, 종교단체 등과 함께하는 네트워킹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 내 LA와 뉴욕,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10여개 지부를 발족했으며 유럽과 동남아 등 해외 작지에서도 지부 창립을 준비 중입니다.
현재 1구좌 당 1년에 1만 원 이상을 기부하는 것으로 하여 회원이 된 분들이 약 6천 여명에 달합니다. 돈을 많이 내신다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추모공원의 목련꽃잎을 채운다는 심정으로 국민 뜻을 모으는데 역점을 둘 예정입니다. 많은 분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채현 기자  redjoker@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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