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공병호 경제칼럼
국민을 조삼모사로 휘두를 것인가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 승인 2016.09.08 16:27|(198호)
선선한 가을 날씨는 지난 여름의 무더위를 모두 다 날려버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은 참으로 더웠다. 집에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혹독한 여름이었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아껴 써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누진제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는 가혹한 요금제로 비난받아도 싸다. 이번 달 요금 통지서부터 ‘악’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으로 본다.
어떻게 이런 제도가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을까. 해마다 여름이면 에어컨 때문에 전력 예비율이 위협받는 사항을 예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법도 아니다. 하지만 제도의 이면에는 더 깊은 뜻과 의도 그리고 관성이 숨어 있다. 1960년대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던 시절부터 우리 사회는 한 가지의 뚜렷한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기업에 좋은 것은 나라에 좋은 것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이런 믿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과 제도가 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었다. 역금리 제도라고 해서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싼 적도 길었다. 정책금융이나 수출금융을 통해서 장기 저리로 금리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육성하였다. 기업 육성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분야의 출혈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기업육성책을 통해서 우리는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이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가 선택했던 차별적 기업 육성책은 의미가 있었고 나름의 성과를 크게 거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일단 한번 만들어진 제도는 좀처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은 누군가의 비용 부담을 요구한다. 가장 큰 희생과 비용을 부담했던 그룹은 가계이다. 전기료만 하더라도 산업과 농어민에게 상당한 특혜를 제공한 쪽으로 요금제가 채택되어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그런 특혜를 제공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은 가계가 떠맡는 제도가 현재와 같은 가혹한 누진제이다. 흥미로운 것은 특혜를 보는 쪽은 확실한 이익단체를 갖고 있다. 이들은 각종 정책제언 등을 통해서 정부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따금 지나치게 산업계에 유리한 요금 체제에 대한 비난이 일더라고 금새 사라져 버리게 된다. 하지만 가계들은 익명의 다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전기료를 낮추기 위해서 조직적인 로비 활동을 벌릴 마땅한 단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60년대나 70년대에 만들어진 특정 그룹을 우대하는 정책은 아무런 손질을 보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제도가 전기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솔린이나 석유 등과 같은 에너지 가격도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승용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하다. 엄청난 세금이 먹겨 지기 때문이지만 가계에게 가혹할 부담을 떠넘기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여름이 가고 나면 전기료 누진제 제도도 유야무야해지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 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라다가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뀌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번에도 몇 만원 깎아주는 것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충 얼버무리는 식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은 이런 제도가 오랫동안 존속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가라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당연히 제도건 정책이건 바뀌어야 한다.
이제 한국은 2%대의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가계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있지만 조세나 준조세 성격의 부담은 크게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고속성장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들을 과감하게 정할 시점이 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생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필요한 시점이다. 전기료 누진제의 개선 작업은 우는 아이들에 젖 번 더 준다는 식으로 몇 만원을 깎아주는 선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한 쪽으로 기운 무게중심을 회복시켜서 생활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으로 제도를 수선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바뀌면 정책이나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주거비, 교육비, 전기료, 가스비 등 우리 사회의 곳곳에 알게 모르게 굳게 자리 잡은 기업우대, 가계 홀대 정책을 수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기도 하고 정의로운 일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또 한가지 크게 노출된 문제는 주무부처와 보통 사람들 사이에 놓여 있는 큰 간격이다. 이런 간격이 세종시로 주무부처가 옮겨 가면서 더 커지게 되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원인이 어떠하든지 간에 보통 사람들의 신음과 고함소리가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의 반응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오고 말았다. 대통령의 말씀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압력을 가하거나 감시하는 단체가 없는 상황에서 순조로운 추진을 기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시대에는 생활인들에게 온전한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의 수선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상황은 녹녹치 않다. 400조원을 돌파하는 세수를 어디서 조달하겠는가. 소리 소문 없이 조세와 준조세가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mjknews@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발행인 인사말회사소개정경시론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리버파크 1502~3호  |  대표전화 : 02)782-2121  |  팩스 : 02)782-9898
사업자등록번호: 107-06-75667  |  등록번호 : 서울아00449  |  대표이사: 최재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영
Copyright © 2017 정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